AI 시대의 복지정책,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까?

[복지국가SOCIETY] 기회를 현실로 만들 정책과제

정부가 지난주에 '3대 메가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 3대 분야에 정부는 1500조 원을 투자하겠다면서 AI강국으로 한반도를 전환하겠다고 했다. 삼성과 SK가 투자하겠다는 4755조 원을 생각하면 그 숫자에 압도당할 만하다. 국토를 새롭게 할 엄청난 규모의 프로젝트가 얼마만큼 실행될 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사회의 대변화를 촉발하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AI시대에 복지는 어떻게 변할까? 저부담, 저복지로 인해 세계 최고의 자살율 국가, 세계 최저의 출생율을 기록하는 이 국가에서 여전히 AI강국은 남의 일처럼 느껴진다. AI가 만들어갈 거대한 프로젝트도 필요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사람들과 함께 가는 AI복지도 중요하다.

현장에서 시작한 AI복지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산자락이 집을 에워싼 조용한 마을. 도로에 버스는 하루 네 번 다닌다. 77세 이복순 씨는 눈을 뜨자마자 거실 스피커에 말을 건넨다. "복순 씨, 오늘 혈압약 챙겼어요?" 기기가 먼저 물어온다. 짧은 대화가 10킬로미터 떨어진 생활지원사 박 씨의 태블릿에 기록된다. 경기도가 2024년 6월 전국 최초로 조성한 'AI 시니어 돌봄타운'의 일상이다.

이복순 씨는 3년 전까지 수급자인지도 몰랐다. '복지는 더 어려운 사람이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2년 치 의료보험 청구 공백 데이터가 신호를 보내 시스템이 먼저 찾아온 뒤에야 연결이 됐다. 생활지원사 박지현 씨(34)는 말한다. "예전엔 가서야 알았어요. 이젠 가기 전에 미리 알고 가니까, 대화가 달라요." AI가 데이터를 정리하는 덕분에 박 씨는 서류가 아닌 사람에게 집중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 AI 복지·돌봄 TF는 2025년 12월 'AI 스마트홈 돌봄 시범사업'을 발표했다. IoT 센서가 안전을 모니터링하고 AI 스피커가 인지훈련과 정서 지원을 담당하며, 생활지원사의 전문 판단이 결합되는 구조다. 분당서울대병원은 2025년 9월 '노쇠 예방 AI 기반 돌봄 서비스' 연구 주관기관으로 선정됐다. 약 복용·운동·영양을 통합 관리하는 멀티모달 AI 모델로 의료와 복지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다.

현실과 겉도는 AI복지

AI 돌봄타운이 성공 사례라면, 같은 날 서울 노원구 복지관 키오스크 앞에서 20분째 발을 구르던 70대 어르신은 실패 사례다. 스마트폰 인증 한 단계가 벽이 됐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 조사에 따르면 취약계층의 AI 활용 경험률은 전체 국민 평균(51%)의 절반 수준인 30%에 그친다. AI 복지 서비스가 아무리 정교해도 접근하지 못하는 이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서비스다. 기술 도입 속도가 디지털 격차 해소 속도를 앞지르면, AI 복지는 오히려 새로운 사각지대를 만든다.

서울시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처럼 행정 데이터를 결합해 위기가구를 탐지하는 방식은 효과적이지만, 과거 데이터에 내재된 편향을 그대로 학습할 위험이 있다. 특정 지역·가족 형태·소득 구간을 '저위험'으로 분류하면 바로 그곳에서 사각지대가 생긴다. 결정 과정이 블랙박스라면, 이의를 제기할 방법도 없다.

AI 도입이 '예산 절감 도구'로 왜곡될 때 가장 큰 피해는 돌봄 현장에서 난다. 2025년 한국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가운데 돌봄 인력은 이미 만성 부족 상태다. 기술이 인력을 대체하는 순간, AI는 복지의 구원자가 아니라 공백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기회를 현실로 만들 정책과제들

2026년 1월 시행된 AI기본법은 '사회적 포용'을 명시했지만, 복지 서비스 디지털화 시 오프라인 대안 병행 의무 조항은 없다. AI기본법 시행령 또는 사회보장급여법 개정을 통해 '복지 서비스 디지털화 시 오프라인 대안 의무 유지'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 취약계층 대상 AI 리터러시 교육을 사회서비스 급여 항목으로 편입하고, 디지털 도우미 인력 배치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위기가구 발굴·수급 자격 심사 등 고영향 복지 AI 알고리즘에 대해 연 1회 공개 감사를 의무화하고, 처분 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알고리즘 불복 절차'를 행정 심판 체계에 포함해야 한다. 이미 유럽연합(EU) AI법(2024)은 고위험 AI에 대해 이와 유사한 투명성·인간 감독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셋째, AI 도입으로 절감된 복지 행정 비용은 인력 감축이 아닌 돌봄 서비스 질 향상에 재투자해야 한다. 예산 절감분의 일정 비율을 돌봄 인력 처우 개선 및 AI 협업 역량 교육에 의무 적립하는 조항이 필요하다.

넷째, 분당서울대병원 사례가 보여주듯 AI의 진가는 의료와 복지 데이터가 연계될 때 발휘된다. 현재 의료정보(건강보험공단), 복지 급여(복지로), 돌봄 서비스(지자체) 데이터는 사일로(silo)로 분리되어 있다. 개인정보보호법 테두리 안에서 가명정보 연계를 허용하는 복지-의료 통합 데이터 플랫폼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다섯째, 경기도 포천 AI 시니어 돌봄타운은 기기 설치·교육·사후 관리를 통합 제공하는 우수 모델이다. 보건복지부가 이 모델의 성과를 평가하고 표준 지침을 마련해 전국 지자체 사회서비스원에 보급해야 한다. 정부의 AI 행동계획(2026)이 '포용적 AI 복지 시스템 구축'을 명시한 만큼, 구체적 예산과 타임라인이 뒤따라야 한다.

시민과 함께 만드는 AI시대

'3대 메가 프로젝트'를 발표한 정부의 의지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 사회는 세계 어떤 나라보다도 빨리 AI시대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인류가 아직 가보지 못한 길이기에 위험과 가능성이 함께 존재한다. 이 위험한 길에서는 시민들과 함께 가는 전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민들과 함께 갈 때만 위험은 분산시킬 수 있으며, 효과는 배로 늘릴 수 있다.

AI시대를 위한 시민의회를 추진해보자. AI에 대한 사회각층의 인식은 천차만별이며, AI가 가져올 사회적 문제도 상상하기 쉽지 않다. 이미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공유하면서, 앞으로 생길 변화도 함께 예측해가면서 AI시대를 맞이해야 한다. AI시대를 위한 3대 메가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사회적 부를 어떻게 배분해 나갈지도 시민적 토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야 한다.

윤석열이라는 위기를 잘 넘긴 대한민국의 이제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제3세계에서 제1세계로 거의 유일하게 진입한 나라답게 AI시대를 성공적으로 맞이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면 다시 위기가 찾아오는 것은 순식간이다. AI시대에는 시민들의 집단지성을 모아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이재명 정부의 현능(賢能)한 복지정책, 사회정책을 기대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서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에서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의 설명을 들으며 AI반도체 관련 전시물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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