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윤의 로컬푸드 이야기] 믿을 수 있어야 팔린다

과학이 만드는 지역 식품의 신뢰와 프리미엄

앞선 두 글에서 나는 모양 때문에 버려지던 못난이 농산물을 되살리고(①), 발효와 가공으로 지역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끌어올리는 길(②)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과 그것을 제값 받고 파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아무리 정성껏 만들어도 소비자가 그 가치를 믿지 못하면 제값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마지막 글의 주제는 그래서 '신뢰'다.

왜 지역 식품은 제값을 못 받을까

지역의 농가나 작은 가게가 만든 식품을 떠올려 보자. 직접 담근 장, 산지에서 만든 즙과 잼, 동네 방앗간의 가공품. 맛도 좋고 정성도 가득하지만 소비자 앞에서는 종종 '싸구려 향토품' 취급을 받는다. 왜일까.

핵심은 '믿음의 비대칭'에 있다. 만드는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안전하고 좋은지 알지만 사는 사람은 알 길이 없다. 위생적으로 만들었는지 농약이 남아 있지는 않은지 늘 같은 품질인지를 소비자는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정보가 한쪽으로 쏠려 있는 것이다.

이렇게 믿을 근거가 없을 때 소비자가 택하는 가장 안전한 방어책은 단 하나, '싸야 산다'이다. 신뢰가 없으면 프리미엄(품질에 더 얹어 주는 값)도 없다. 그러니 지역 식품이 제값을 받으려면 맛보다 먼저 '믿음'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믿음을 만드는 가장 확실한 도구가 바로 과학이다.

첫째, 안전과 품질을 '과학으로 보증한다'

믿음의 출발점은 안전이다. 먹는 것은 무엇보다 안전해야 하고 그 안전은 말이 아니라 검증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식품안전관리인증(HACCP)처럼 원료부터 제조 과정까지 위해 요소를 관리하는 체계를 갖추고 잔류농약과 성분을 검사해 수치로 보여줄 때 소비자는 비로소 안심하고 지갑을 연다.

여기에 더해 필요한 것이 '품질의 일관성'이다. 지역 식품이 외면받는 흔한 이유 하나는 품질이 들쭉날쭉하다는 점이다. 같은 집 된장도 담글 때마다 맛이 다르면 상품이 되기 어렵다. 어떤 미생물로 어떤 온도에서 얼마나 발효시켜야 늘 같은 맛이 나는지를 과학으로 밝혀 표준화하면 '운 좋으면 맛있는 것'이 '언제 사도 믿을 수 있는 것'으로 바뀐다. 대전이 과학도시라는 사실은 여기서 큰 강점이 된다. 식품을 검사하고 분석하고 표준을 세울 연구 역량이 이 지역에 있기 때문이다.

둘째, '왜 이 지역 것이 특별한가'를 데이터로 증명한다

안전과 일관성이 신뢰의 바닥이라면, 프리미엄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특별함'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특별함도 막연한 자랑이 아니라 데이터로 증명될 때 값이 된다.

좋은 본보기가 와인이다. 프랑스 와인은 '어느 지역, 어느 밭에서 났는가'를 원산지 등급으로 표시하고 그 땅과 기후가 만드는 맛의 차이를 설명하며 높은 값을 받는다. 이탈리아 파르마 햄도 마찬가지다. '원산지가 곧 품질 보증'이 되는 구조다.

우리 지역 식품도 같은 길을 갈 수 있다. 지역의 물과 기후, 발효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고유한 향과 성분을 분석해 '이 맛이 왜 이 지역에서만 나는지'를 숫자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강의에서 강조해 온 '테루아(terroir)의 과학화', 곧 땅이 만든 맛을 과학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이다. 향미 성분을 분석하고 그 차이를 데이터로 제시하면 지역 식품은 '그냥 시골 것'이 아니라 '여기서만 나는 특별한 것'이 된다.

셋째, 제도로 못 박는다-지리적표시제와 인증

과학으로 쌓은 신뢰는 제도로 보호할 때 비로소 단단해진다. 대표적인 장치가 지리적표시제(GI)다. 특정 지역에서 그 지역의 특성을 살려 생산된 식품에만 그 지역 이름을 붙일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하는 제도다.

2002년 보성녹차가 제1호로 등록된 이래 2024년 4월 기준 우리나라에는 105건의 지리적표시가 등록되어 있다(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이렇게 등록된 식품은 다른 곳에서 함부로 그 이름을 쓸 수 없다. 가짜를 막고 진짜의 값을 지켜 주는 방패인 셈이다.

지자체의 품질 인증, 생산자 실명제, 이력 추적 같은 장치도 같은 역할을 한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소비자가 확인할 수 있게 하는 모든 장치가 곧 신뢰의 증서이고 그 증서가 프리미엄의 근거가 된다.

신뢰가 곧 가격이다, 그리고 지역경제다

사실 이것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곁에도 이미 프리미엄으로 당당히 팔리는 지역 식품이 있다. 전남 해남의 해창막걸리는 보통 막걸리가 한 병에 수천 원인 시장에서 품질을 높인 제품을 5만~11만 원에 내놓고 한정판 프리미엄은 한 병에 110만 원을 받기도 한다. 광주 무등산 자락에서 자라는 재래종 수박 '푸랭이'는 한 통에 35만~38만 원에 팔린다. 평범한 막걸리·수박과 이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 지역이 아니면 낼 수 없는 고유한 품질과 이야기 그리고 그것을 소비자가 믿게 만든 신뢰다. 지역 식품의 프리미엄은 막연한 가능성이 아니라 이미 입증된 현실인 것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안전과 품질을 과학으로 보증하고 지역의 특별함을 데이터로 증명하며 그것을 제도로 보호할 때, 지역 식품은 비로소 '싸구려 향토품'의 굴레를 벗고 제값을 받는다. 신뢰가 곧 가격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오른 값은 고스란히 지역 농가와 가공업체, 지역경제로 돌아간다.

대전은 이 일을 해낼 조건을 두루 갖췄다. 식품을 검사하고 분석하고 표준을 세울 과학 역량, 그것을 현장에 이어 줄 대학과 연구기관, 그리고 충청 들녘의 풍부한 재료가 한곳에 있다. 식품학자가 지역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마지막 길이 바로 여기 '믿음을 과학으로 만들어 주는 일'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세 편에 걸친 이야기를 한 줄로 모으면 이렇다. 식품과학은 버려지던 것을 되살려 손실을 줄이고(①), 발효와 가공으로 부가가치를 더하며(②), 신뢰로 값을 매겨 프리미엄을 만든다(③). 손실을 줄이고, 가치를 더하고, 믿음을 입히는 이 세 단계가 맞물릴 때, 우리 지역의 농산물은 더 오래, 더 값지게, 더 믿을 수 있게 팔린다. 그것이 식품학자가 식탁에서 시작해 지역경제로 가닿는 길이다. 좋은 먹거리를 만드는 일만큼이나 그것을 믿게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믿음은 언제나 진심을 담은 과학에서 나온다.

문상윤

세종충청취재본부 문상윤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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