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달러 지폐 속 그 노인이 한국사회에 던지는 고언

[인물로 본 세계사] 벤자민 프랭클린에게 배우는 '사익 추구형 권력자' 청소법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대머리를 꼽으라면 단연 이 사람이다. 자본주의의 정점이라 불리는 미국 100달러 지폐의 얼굴마담이자, 평생 대통령 한번 안 해보고도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는 거창한 칭호를 얻은 인물. 바로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돈 좀 만진다는 이들이나 정치를 한다는 이들에게 이 영감의 초상화를 보여주면 십중팔구 "아, 돈 많이 벌라는 부적 고맙소"라며 침을 흘릴지도 모른다. 근면과 절약을 강조하며 부의 축적을 정당화한 인물로 널리 알려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 영감의 진면목을 절반도 모르는 무식의 소치다. 만약 프랭클린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치판을 본다면, 아마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번개 치는 날 피뢰침 대신 철제 지팡이를 그들의 손에 쥐여 주었을 것이다.

집안일보다 세상일에 미쳤던 18세기 만능 일꾼

프랭클린은 애초에 금수저가 아니었다. 비누와 양초를 만들던 가난한 집안의 17남매 중 15번째로 태어나 정규교육은 고작 2년밖에 받지 못했다. 인쇄소 시보로 시작해 제 손으로 뼈를 깎는 노력을 다해 자수성가한, 그야말로 옛날식 성공신화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이 영감의 진짜 기질은 돈벌이가 아니라 '호기심'과 '오지랖'에 있었다. 그는 돈이 좀 모이기 시작하자 서른 중반에 인쇄소 경영을 동업자에게 넘기고 온갖 기기묘묘한 일에 뛰어들었다.

하늘에서 번개가 치는 날, 비단 연에 열쇠를 매달아 날렸던 목숨 건 실험은 유명하다. 번개가 신의 분노가 아니라 그저 과학현상인 전기일 뿐이라는 것을 증명해 낸 것이다. 덕분에 교회의 높은 첨탑이 신의 심판을 받아 무너지는 일을 막아줄 피뢰침을 발명했다. 뿐인가. 돋보기와 멀리 보는 안경을 합친 다초점 안경을 만들었고, 땔감을 적게 먹으면서도 방을 따뜻하게 데우는 효율적인 난로를 개발하기도 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영감이 이 모든 발명품의 특허를 단 하나도 신청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타인의 발명품으로부터 큰 편익을 누리고 있으니, 우리 역시 자신의 발명품을 통해 타인에게 봉사하는 것이 당연하며, 이는 대가 없이 기꺼이 행해져야 한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힌 말인가. 오늘날 제 기술 하나만 생기면 특허장벽을 쌓아 올리고 독점적 이익을 누리려 눈에 불을 켜는 거대 기업가들과, 공공의 지식을 사적이익으로 치환하려는 자들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말이다.

사익을 공공의 그릇에 담아낸 진짜 정치인

그의 오지랖은 과학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제도로 뻗어 나갔다. 미국최초의 공공도서관을 세웠고, 자원봉사 화재진압대를 조직했으며, 필라델피아 아카데미(지금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를 설립했다. 정부가 세금을 걷어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정치가 작동하지 않자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어 직접 만들어버린 것이다.

정치인으로서의 프랭클린은 더욱 노련했다. 영국총독과 의회가 미국식민지 주민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물리려 하자, 그는 특유의 글로 언론을 주도하며 저항의 불씨를 지폈다. 미국 독립 선언서 작정 과정에서 토마스 제퍼슨(1743~1826)이 쓴 초안의 문구를 다듬으며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사실이 신성불가침하다"는 종교적 표현을 "자명하다"는 이성적 표현으로 바꾼 이도 프랭클린이다.

영국과의 전쟁 중에는 늙은 몸을 이끌고 프랑스로 건너가 외교관 역할을 수행했다. 당시 프랑스 귀족사회의 가식적인 문화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는 가발도 쓰지 않고 소박한 담비털 모자를 쓴 채 나타났다. 프랑스인들은 이 자연주의적인 '신대륙의 현자'에게 열광했고, 이는 결국 프랑스의 군사적·재정적 지원을 이끌어내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칼과 총보다 무서운 외교전술이었다.

오늘 대한민국, "염치와 실용은 어디로 갔는가"

이제 눈을 돌려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자. 프랭클린이 평생을 바쳐 싸웠던 대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부당한 권력을 휘두르는 군주였고, 다른 하나는 공공의 이익보다 사적 탐욕에 눈이 먼 이기주의자들이었다. 현재 우리사회는 어떤가. 오직 '내가 맞고 너는 틀리다'는 독선만 가득하지 않은가.

프랭클린은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자존심은 아침 식사를 풍성하게 만들고, 점심 식사를 경멸스럽게 만들며, 저녁 식사를 비참하게 만든다."

명분과 체면, 그리고 자신들의 권력욕이라는 자존심에 취해 국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한국의 정치인들에게 이보다 더 정곡을 찌르는 지적이 어디 있겠는가. 민생을 돌보지 않는 정치는 한낱 겉멋 든 가발에 불과하다는 것을, 가발을 벗어 던지고 실리를 챙겼던 이 18세기 노정객은 온몸으로 웅변하고 있다.

특히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음모에 대해 프랭클린은 아주 확실한 해결책을 남겼다. 그는 미국 헌법제정 회의에서 최고 권력자에 대한 '탄핵' 제도를 반드시 명문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일부대표들이 "탄핵은 행정부의 독립성을 해친다"며 반대하자, 프랭클린은 이렇게 반박했다.

"탄핵제도가 없다면, 국민들이 부패한 권력자를 축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암살'뿐입니다. 탄핵은 권력자에게도 좋은 일입니다. 목숨을 잃는 대신 합법적으로 재판을 받고 쫓겨날 기회를 주는 것이니까요.”

이 얼마나 간담이 서늘하면서도 명쾌한 지적인가. 박정희처럼 술자리에서 총에 맞아 즉사하는 것 보다는 윤석열처럼 감옥에서 여유 있게 여생을 보내는 것이 더욱 민주적이고 평화적이라는 말이다.

권력이 국민의 통제를 벗어나 사적이익을 추구할 때, 법 제도를 통해 이를 평화적으로 심판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기본임을 그는 꿰뚫어 보았다. 누구든지 권력을 사적으로 오용하거나 거부권을 남발하며 민의를 거스르는 권력자들이 있다면, 프랭클린의 이 무시무시한 지적을 뼈에 새겨야 할 것이다.

각자도생의 시대, '공공의 선'을 다시 묻다

또 하나 우리가 프랭클린에게서 뼈저리게 배워야 할 점은 '연대'의 정신이다. 그는 미국 독립전쟁 초기, 분열된 식민지 주들을 향해 토막 난 뱀 그림과 함께 "합치지 않으면 죽는다(Join, or Die)"라는 문구를 신문에 실었다.

지금의 우리사회는 그야말로 토막 난 뱀의 형국이다. 세대갈등, 남녀갈등, 지역갈등,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까지.

프랭클린은 부를 쌓는 것을 긍정했지만, 그것이 공공의 의무를 저버리는 도구가 되는 순간 사정없이 비판했다. 그는 사회적 지위와 재산은 사회가 부여한 특권이므로, 반드시 사회로 환원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소방대를 만들고 도서관을 세운 것은 모두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이웃이 잘살아야 한다"는 지극히 실용적인 연대의 감각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부의 대물림과 양극화가 극에 달한 지금, 대기업과 기득권층의 사익추구만을 대변하는 정책은 결국 공동체 전체를 파멸로 이끌 뿐이다.

하늘의 번개를 잡듯, 시대의 불의를 잡으라

벤자민 프랭클린은 완벽한 성인이 아니었다. 그 역시 젊은 시절에는 실수를 저질렀고, 노예제 문제에 대해서도 뒤늦게야 반성하고 해방운동에 동참하는 등 인간적인 한계를 지닌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오류를 인정할 줄 아는 유연함이 있었고, 무엇보다 평생 동안 권위주의의 독소를 제거하는 데 앞장섰다.

오늘날 언론과 지식인들이 해야 할 일도 바로 이것이다. 권력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민초들의 삶 속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실용적 대안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하늘에서 치는 번개가 무서워 신의 노여움이라며 벌벌 떨고만 있던 시대는 가고, 피뢰침을 세워 그 에너지를 땅으로 흘려보낸 프랭클린의 과학정신이 있었다. 이제 우리도 정치적 무능과 불의라는 번개가 공동체를 내리칠 때, 원망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강력한 연대와 과감한 비판이라는 제도적 피뢰침을 단단히 움켜쥐어야 한다. 100달러 지폐 속에서 인자하게 웃고 있는 그가 오늘 우리 민초들에게 윙크를 건네며 속삭이는 듯하다.

"이보게 동무들, 번개가 무서우면 피뢰침을 세우고, 정치가 썩었으면 갈아치우게나. 그게 내가 전기를 발견하고 헌법을 만든 진짜 이유라네."

▲벤자민 프랭클린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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