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윤의 로컬푸드 이야기] 잘 키운 가게, 떠나보내라

오래된 골목을 계속 살아 있게 하는 단 하나의 원리, 순환

뜨는 골목에는 공통된 운명이 있다. 작은 가게들이 저마다의 개성으로 동네를 살려 놓으면 이내 임대료가 오르고 큰 자본이 들어오고 어느새 어디서나 본 듯한 거리로 변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발길을 끊는다. 더 이상 그곳에만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살아난 골목이 다시 시드는 이 반복을 우리는 전국의 수많은 '○리단길'에서 이미 보아 왔다. 필자는 질문을 조금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골목을 한 번 살리는 법이 아니라 살아난 골목을 '계속' 살아 있게 하는 법은 무엇인가. 미리 밝혀두자면 도시 정책은 내 전공이 아니다. 다만 식품과 외식산업을 공부하고 대학에서 가르쳐 온 사람으로서 식재료가 메뉴가 되고 가게가 되고 골목이 되는 그 연결을 오래 들여다본 입장에서 한 가지 짚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 뜻밖에도 그 열쇠는 '졸업'에 있다고 본다.

쉬운 답은 오래가지 못한다

골목을 살리자는 이야기가 나오면 흔히 두 가지 손쉬운 답이 등장한다. "지원하면 된다"와 "관(官)이 나서면 된다"이다. 나는 둘 다 그대로 믿기 어렵다.

무상으로 공간을 내주면 당장은 가게가 늘지만 공짜로 주어진 자리는 책임감을 함께 가져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절박함 없이 시작한 사업은 쉽게 흔들리고, 지원이 끊기면 함께 사라진다.

행정이 운영까지 챙기는 관 주도는 또 어떤가. 인테리어와 메뉴와 운영방식을 통일해 버리는 순간, 개성을 살리겠다는 정책이 거꾸로 개성을 죽인다. 좋은 의도가 늘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수많은 청년몰과 전통시장 사업에서 보아 왔다.

문제는 이 두 답이 모두 '한 시점'에 멈춰 있다는 데 있다. 가게를 채워 넣는 데까지만 생각하고, 그다음 그 골목이 어떻게 살아 움직일지는 설계하지 않는다. 골목은 정지 화면이 아니라 흐르는 강물인데 말이다.

공공 공간은 '거처'가 아니라 '둥지'다

그래서 나는 '졸업과 순환'을 이 이야기의 한복판에 놓고 싶다.

만약 공공이 구도심에 작은 공간을 마련해 운영자에게 내준다면, 그곳은 평생의 거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잠시 머무는 둥지여야 한다.

정해진 기간 안에 자기 색을 증명하고 단골을 만든 가게는 받은 지원을 발판 삼아 인근의 일반 상가로 '졸업'해 나간다. 그리고 비워진 그 자리는 다시 다음 운영자에게 돌아간다. 들어오고, 자라고, 떠나고, 또 새로 들어온다. 이 순환이 골목의 생명이다.

이 졸업과 순환에는 두 가지 힘이 있다.

하나는, 한 골목이 몇몇 가게에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색으로 다시 칠해진다는 것이다. 정체된 상권만큼 빠르게 매력을 잃는 것도 없다. 늘 같은 가게, 늘 같은 메뉴는 단골에게도 결국 지루해진다. 순환하는 골목만이 갈 때마다 새로운 발견을 준다.

다른 하나는, 졸업한 가게들이 주변으로 퍼져 나가면서 지원의 효과가 한 블록에 갇히지 않고 구도심 전체로 번진다는 것이다.

공공이 마중물을 한 번 부으면 그 물이 골목을 따라 흘러 더 넓은 동네를 적신다. 작은 공공 공간 하나가 도시의 오래된 거리 전체를 되살리는 마중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 자리를 영원히 지키게 하는 지원은 한 가게를 살리지만 졸업시키는 지원은 골목 전체를 살린다.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물론 '언제 졸업시킬 것인가'는 까다로운 문제다. 너무 이르면 자립하기도 전에 내몰리고 너무 늦으면 순환이 막혀 또 다른 기득권이 된다.

그 시점과 기준을 어떻게 정하느냐가 이 설계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정답은 나도 모른다. 작은 실험으로 시작해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더듬어 찾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원칙만은 분명히 해 두고 싶다. 이 정책의 목표는 '소수를 영원히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개성을 길러내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 사람의 성공을 지키는 정책이 아니라 다음 사람의 도전을 여는 정책. 골목을 한 번 빛나게 하는 정책이 아니라, 계속해서 새로운 빛을 들이는 정책. '졸업'이라는 말 속에는 그런 철학이 담겨 있다.

순환이 돌아가려면

졸업과 순환이라는 바퀴가 헛돌지 않으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

먼저, 지원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 이번에 군산에서 본 매출 연동 임대 방식이 인상 깊었다. 기본 임대료는 낮게 두되, 장사가 잘되면 그만큼 더 내는 구조다. 새로운 방식은 아니지만, 부담을 지는 운영자조차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무상도 고정 부담도 아닌, 번 만큼 책임도 지는 이 구조는 졸업을 향한 자연스러운 동력이 된다.

다음으로, 운영자는 예상 매출이 아니라 그 사람의 철학과 개성, 그리고 정주 의지로 골라야 한다. 그리고 공공은 공간과 최소한의 안전장치만 마련하고, 색을 칠하는 일은 운영자에게 온전히 맡겨야 한다.

동시에 골목이 떠오른 뒤 원래의 가게들이 밀려나지 않도록 임대료 안정과 상생협약 같은 장치를 처음부터 함께 걸어야 한다. 사실 이런 도구들은 도시재생 정책에 이미 존재한다. 다만 늘 성공하지는 못했으니 그 성과와 한계를 냉정히 들여다보고 다시 설계할 일이다.

골목의 진짜 경쟁력

골목의 진짜 경쟁력은 매끈한 시설이나 거대한 자본이 아니라 자기 색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그리고 그 색은 한 번 칠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 칠해질 때 비로소 골목을 살아 있게 한다.

그러니 우리가 마련해야 할 것은 한 사람을 위한 영원한 자리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차례로 도전하고 떠나고 다시 채우는 흐름이다.

과학도시의 세련됨을 자랑하면서도 곳곳에 근대문화유산이 살아 숨 쉬는 대전이, 누구나 한 번쯤 자기 색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골목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그 골목의 불빛은, 떠나는 사람과 들어오는 사람이 함께 켜는 것이다.

※ 본 컬럼은 프레시안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문상윤

세종충청취재본부 문상윤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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