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오래 들여다보다 보면, 결국 사람과 지역에 가닿게 된다. 좋은 먹거리는 좋은 가게에서 나오고, 좋은 가게들이 모이면 골목이 살아나며, 살아난 골목은 한 도시의 표정이 된다. 그동안 이 칼럼에서 나는 주로 식재료와 식탁의 이야기를 해 왔다. 이번 세 편에서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음식이 모이는 '골목'으로 시선을 옮겨 보려 한다. 음식과 술이 어떻게 쇠락한 구도심에 다시 불을 켜는지, 그 불빛을 누가 만들고 또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를 현장에서 시작해 함께 생각해 보고 싶다.
일제강점기의 건물과 골목이 그대로 남은 군산의 근대역사문화거리는 밤 9시만 되면 거짓말처럼 깜깜해진다. 가로등 사이로 인적이 끊기고 오래된 적산가옥들은 어둠 속에 잠긴다. 쇠락한 구도심의 전형적인 밤 풍경이다.
그런데 딱 한 블록이 달랐다. 바와 식당이 모여 있는 그 골목만큼은 사람으로 넘쳐났다. 한두 시간 웨이팅은 예사였다. 어두운 도시 한가운데 작은 불빛들이 모여 만든 섬 하나가 환하게 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 풍경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무엇이 이 골목만 살아 있게 하는가.
'군산은 bar다' — 청년들이 만든 색
그 골목에는 개성 있는 청년들이 저마다의 색으로 장사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군산은 bar다'라는 재치 있는 이름을 내걸었고 작은 와인바와 식당들이 그 안에서 각자의 취향과 철학을 펼치고 있었다. 어느 집도 서로를 닮지 않았다. 그것이 이 골목의 힘이었다.
한 와인바 사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30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4년 전 군산에 왔다가 그대로 눌러앉았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답이 간결했다. 와인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아서. 거창한 사업 계획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따라 한 도시에 정착한 청년. 그의 가게에는 그 좋아함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고 그래서 손님들은 그 공간을 좋아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사람들이 굳이 어두운 구도심까지 찾아오는 이유는 화려한 시설 때문이 아니다. 어디서나 똑같은 인테리어와 메뉴라면 굳이 거기까지 갈 이유가 없다. '그 사람이 만든, 그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기꺼이 한 시간을 기다린다. 골목을 살리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고 시설이 아니라 개성이다.
음식 앞에서 잠시, 모두가 친구가 된다
그날 밤 내가 본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따로 있었다. 그 골목에는 군산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한데 섞여 있었다. 그런데 누구도 서먹해하지 않았다. 옆 테이블과 자연스럽게 맛집 정보를 나누고 다음에 가볼 만한 곳을 추천하고 나이와 직업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좋아하는 음식'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잠시나마 친구가 되었다.
음식과 술이 가진 힘이 그렇다. 낯선 사람들 사이의 벽을 허물고 짧은 시간 안에 사람을 잇는다. 좋은 골목은 단지 무언가를 파는 곳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광장이 된다. 군산의 그 한 블록은 작은 가게들이 모여 만든 도시의 거실 같았다.
이런 골목이 거저 생긴 것은 아니다. 군산은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의 근대문화도시 조성사업을 시작으로 원도심의 근대 건축과 거리를 정비해 왔고, 청년마을 사업 등을 통해 젊은 창업자들이 모여들 토대를 만들었다.
쇠락하던 항구도시의 구도심이 '시간여행마을'로 불리며 사람을 불러 모으기까지는 공간을 살리려는 공공의 노력과 자기 색을 펼친 청년들의 도전이 함께 있었다.
그리고, 대전을 떠올렸다
환하게 빛나던 그 골목을 나오며 나는 자연스럽게 내가 사는 대전을 떠올렸다. 대전에도 오래된 구도심이 있다. 우리에게도 이런 골목이 있는가. 군산처럼, 어두운 도시 한가운데 작은 불빛들이 모여 만든 환한 섬이 우리에게도 있는가.
그날 밤 한 와인바에서 받은 질문 하나가그 생각을 더 깊게 만들었다. 다음 글에서 그 이야기를 이어가려 한다.
*다음 글 ② 대전엔 왜 '소개할 바'가 없을까 — 소제동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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