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윤의 로컬푸드 이야기] 캐릭터를 입힌다고 '대전의 음식'이 되지 않는다

대전의 테루아(terroir)를 찾아서

요즘 지역마다 캐릭터가 한창이다. 귀여운 마스코트를 만들어 포장지에 그려 넣고 그 모양을 본떠 빵을 굽고 과자를 빚는다.

제주의 감귤 캐릭터 인형처럼 잘 만든 사례는 분명 사랑스럽고 관광객의 지갑도 연다. 대전에도 이런 흐름을 따라 '대전만의 음식'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있다. 반가운 일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캐릭터를 입힌다고 해서 그것이 '대전의 음식'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앞선 글에서 나는 외국인에게 대전의 칼국수와 빵이 '대한민국 대전의 음식'으로 인식된다는 점, 그리고 '밀의 도시 대전'이라는 정체성이 세계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그 음식을 진짜 '대전의 것'으로 만드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나는 그 답이 '테루아(terroir)'에 있다고 본다.

포장지 위의 캐릭터는 따라 할 수 있다

먼저 분명히 하자. 캐릭터와 디자인은 분명 가치가 있다. 음식에 친근한 얼굴을 입히고 사진 찍고 싶게 만들고 기억에 남게 하는 일은 마케팅의 중요한 부분이다. 문제는 그것이 '표면'이라는 데 있다.

캐릭터는 누구나 만들 수 있다. 포장지의 그림도 귀여운 모양의 빵도 옆 도시가 더 큰 예산을 들이면 더 그럴듯하게 따라 할 수 있다.

캐릭터로 차별화한 음식은 더 매력적인 캐릭터가 나오는 순간 빛이 바랜다. 결국 표면의 경쟁은 표면에서 끝난다. 외국인이 '대전에 가야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 느끼게 하는 힘은, 포장지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맛과 이야기의 깊이에서 나온다. 그 깊이를 만드는 것이 바로 테루아다.

테루아, 땅과 기후와 사람이 만드는 맛

테루아는 본래 와인에서 비롯된 말이다. 같은 포도 품종이라도 어느 땅에서, 어떤 기후와 물을 만나, 누구의 손을 거쳤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이 난다는 것. 그래서 와인은 복제할 수 없는 '장소의 산물'이라는 개념이다.

이 테루아야말로 지역 음식이 세계 시장에서 프리미엄을 얻는 가장 강력한 근거가 된다.

우리 음식에도 테루아는 이미 작동하고 있다. 순창고추장의 깊은 맛은 순창의 서리 맞은 고추와 그 지역 지하수가 만드는 고유한 발효 조건에서 나온다.

보성녹차의 부드러운 감칠맛은 안개 많은 해안 기후가 빚는다. 강릉 초당순두부는 바닷물로 간을 맞추는 그 지역이 아니면 불가능한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이들은 캐릭터로 유명해진 것이 아니다. 그 땅이 아니면 낼 수 없는 맛, 곧 테루아로 자기 자리를 지킨다. 다른 도시가 흉내 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대전에 테루아가 있는가

여기서 솔직한 질문이 떠오른다. 대전의 빵과 칼국수를 만드는 밀가루는 거의 수입산이고, 커피 원두 역시 외국에서 온다. 원료가 그 땅에서 나지 않는데 대전에 무슨 테루아가 있단 말인가.

나는 테루아를 두 겹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재료의 테루아'이고 다른 하나는 '과정과 문화의 테루아'다.

재료의 테루아부터 보자. 대전이 밀을 전혀 기르지 못하는 땅은 아니다. 유성 세동 일대는 본래 밀을 길러온 곳이고 대전과 충남권에는 배와 포도 같은 지역 농산물도 자란다.

지역에서 기른 밀과 과일, 그리고 그 땅의 물로 만든 빵과 음식은 그 자체로 재료의 테루아를 갖는다. 끊어진 이 고리를 되살리는 일이 첫걸음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정과 문화의 테루아다. 충청도도 전라도 못지않게 예부터 청국장·된장·간장으로 대표되는 발효 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소박하고 담백한 맛, 오래 묵혀 깊이를 내는 발효의 전통은 이 지역의 식문화 그 자체다. 여기에 '밀의 도시'로서 칼국수와 빵을 빚어온 70년의 손맛과 역사가 더해진다. 어떤 발효종을 쓰고, 어떻게 반죽을 숙성시키며, 어떤 물로 국물을 내는가, 이 축적된 방식이야말로 다른 도시가 하루아침에 복제할 수 없는 대전만의 테루아다.

테루아는 '과학'으로 증명된다

그런데 테루아가 막연한 자랑에 머물지 않으려면 한 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을 과학으로 증명하는 일이다.

지역 음식의 세계화에서 테루아 전략의 핵심은 '땅과 기후와 물이 만드는 맛의 차이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미생물과 향미 성분을 분석해 '이 맛이 왜 이 지역에서만 나는가'를 데이터로 입증할 때 테루아는 비로소 설득력 있는 자산이 된다. 식품을 연구해 온 사람으로서 나는 바로 이 지점이 대전의 결정적 강점이라고 본다.

대전은 과학도시다. 지역의 발효종이 만드는 풍미를 미생물학으로 규명하고, 대전 물과 지역 밀로 구운 빵의 향미를 분석하며, 발아와 발효를 거친 밀의 기능성 성분을 측정하는 일, 이 모든 연구를 해낼 역량이 이 도시에 있다.

'대전의 빵은 이런 발효종과 이런 물, 이런 밀이 만나 이런 향미 성분을 낸다'고 데이터로 말할 수 있을 때, 대전의 음식은 캐릭터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깊이를 갖게 된다. 과학으로 뒷받침된 테루아, 그것이 모방을 허락하지 않는 진짜 해자다.

순서가 중요하다

오해를 막기 위해 다시 강조한다. 나는 캐릭터와 디자인을 버리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순서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먼저 테루아라는 본질을 세우고, 그 위에 이야기와 디자인과 캐릭터를 입힐 때 그것은 비로소 힘을 갖는다. 본질 없는 포장은 모방되지만, 테루아에 뿌리내린 음식은 복제되지 않는다.

대전의 테루아는 이미 곳곳에 흩어져 있다. 세동의 밀, 지역의 물, 대전과 충청의 발효 문화, 70년의 손맛, 그리고 과학도시의 연구 역량. 이 조각들을 찾아 모으고, 과학으로 증명하고, 하나의 이야기로 엮는 일이 남았다. 그것을 어떻게 구체적인 프로젝트로 만들어 세계로 보낼 것인가. 다음 글에서 그 길을 이야기하려 한다.

문상윤

세종충청취재본부 문상윤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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