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앞둔 한 학생이 물었다. "저는 졸업하면 어디에서 일 할 수 있나요?" 식품을 공부한 학생이 정작 식품으로 일할 자리를 묻는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대전과 충청권에는 식품학·식품공학·식품영양학·조리학을 가르치는 대학이 상당수 있고, 해마다 적지 않은 졸업생이 배출된다. 그런데 이들이 전공을 살려 일할 자리는 정작 이 지역에 많지 않다.
잘 키운 인재들이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다른 지역으로 떠난다. 빵과 커피로 시작한 이 시리즈를 닫으며, 나는 결국 이 질문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대전의 음식은 무엇으로 '미래'가 될 것인가.
과학의 도시인데, 먹거리 과학은 없다
대전은 스스로를 '과학의 도시'라 부른다. 대덕연구단지와 정부출연연구기관, 카이스트와 여러 대학이 모인 연구개발의 메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그 많은 과학 인프라 속에서, 정작 '먹거리 과학'에 대한 논의는 놀라울 만큼 빈약하다.
반도체와 바이오, 우주와 국방은 이야기하면서 인간이 매일 먹는 음식을 과학과 산업으로 키우자는 목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이것은 단지 대전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식품을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이기도 하다. 음식은 '문화'이거나 '산업'일 뿐, '첨단 산업'으로는 좀처럼 대접받지 못했다. 그러나 세계는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먹거리는 사라지지 않는 산업, 그리고 가장 큰 산업
먼저 분명히 해 둘 사실이 있다. 먹거리 산업은 불변한다. 경기는 오르내리고 유행하는 기술은 바뀌지만 인간이 먹는 한 식품 수요는 사라지지 않는다. 불황에 가장 강한 산업, 인류가 존재하는 한 끝나지 않을 산업이 바로 먹거리다.
게다가 그 규모는 압도적이다. 세계 식품시장은 2024년 기준 약 9조 달러에 이른다. 흔히 첨단의 상징으로 꼽는 반도체 시장(약 6천억 달러대)의 열 배가 넘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산업이다.
국내만 해도 외식산업이 연 110조 원을 넘고, 식품 제조와 식자재 유통을 더하면 수백조 원에 이른다. 이 거대하고 영속적인 산업을 '장사' 정도로 여기는 것은 발밑에 있는 금광을 못 보는 일과 같다.
세계는 이미 '식품을 과학으로' 풀고 있다
더 중요한 변화는 이 거대한 산업이 빠르게 '과학'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실리콘밸리는 IT의 본산일 뿐 아니라 이제 '푸드의 실리콘밸리'로도 불린다.
임파서블푸드와 비욘드미트가 식물성 고기를 퍼펙트데이가 정밀발효로 동물 없이 진짜 유단백질을 만들어낸다.
대체단백 분야에만 2020년 이후 100억 달러가 넘는 벤처 자금이 몰렸다. 유럽과 이스라엘에서도 과학자와 식품학자가 한 팀을 이루어 발효와 미생물 기술로 기존에 없던 식품을 빚어내고 있다.
아직 수익성을 입증해 가는 단계이지만, 방향만큼은 분명하다. 이제 새로운 식품은 주방이 아니라 실험실과 주방이 만나는 자리에서 태어난다.
핵심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다. '식품을 과학의 언어로 다루는 역량', 그리고 '과학자와 식품학자가 협업하는 생태계'가 미래 먹거리 산업의 승부처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바로 이 대목에서, 대전만큼 유리한 조건을 갖춘 도시도 드물다.
대전은 이 일을 하기에 가장 좋은 도시다
생각해 보라. 미래 먹거리 산업에 필요한 세 가지가 무엇인가. 첫째는 과학 연구 역량, 둘째는 식품을 다룰 인재, 셋째는 그것을 입힐 음식 자산이다. 대전은 이 셋을 모두 가졌다.
대덕의 연구 인프라와 출연연·대학의 과학 역량이 첫째를 채운다. 식품학·식품영양·조리학을 가르치는 여러 대학과 외식산업대학원이 둘째, 곧 인재를 길러낸다.
그리고 칼국수와 빵으로 쌓아온 밀의 문화, 빵과 커피의 도시라는 브랜드가 셋째, 과학을 입힐 풍부한 음식 자산이 된다.
과학·인재·음식이라는 세 자원을 한 도시 안에 갖춘 곳, 그것이 대전이다. 그런데도 이 셋을 잇는 '먹거리 과학'의 판이 깔려 있지 않다. 자원은 흩어져 있고 인재는 떠난다.
앞선 글들에서 이야기한 빵과 커피, 그리고 밀은 바로 이 판을 깔 씨앗이다.
밀을 발아시켜 GABA 같은 생리활성물질을 높인 기능성 원료를 만들고 발효로 새로운 풍미를 빚어내며 커피와 차의 향미를 분석해 고급화하는 일, 이 모든 것이 곧 푸드테크의 입구다.
대전의 배와 포도 같은 지역 농산물을 과학적으로 가공해 새로운 제품으로 바꾸는 일도 마찬가지다. 빵과 커피라는 친숙한 얼굴 뒤에 식품과학 산업이라는 거대한 미래가 숨어 있는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대전은 '먹거리 과학'을 도시의 의제로 끌어올려야 한다.
과학자와 식품학자, 조리인과 농업인이 한자리에서 협업하는 산학연 거점이 필요하다. 지역 대학의 식품 연구 역량과 출연연의 과학을 식품 현장에 연결하고, 지역 밀과 배·포도 같은 농산물을 기능성·발효 식품으로 전환하는 연구를 그곳에서 수행하는 것이다.
이런 거점은 '식품을 과학으로 논하는' 학술의 장인 심포지엄과 경연, 박람회와 함께 굴러갈 때 더 단단해진다.
커피 박람회가 바리스타·로스팅·커핑 대회와 학술대회로 다양한 사람을 불러 모으듯, 먹거리 과학의 마당도 연구자와 창업자, 학생과 시민을 함께 끌어안을 수 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의 목적은 분명하다. 떠나는 청년을 붙드는 일이다. 그리고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 먹거리 산업이 품을 수 있는 청년은 결코 식품을 전공한 이들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먹거리는 과학이자 동시에 경영이고 마케팅이며, 디자인이고 문화이고 예술이다. 새로운 식품 하나가 세상에 나오려면 그것을 연구하는 사람만큼이나 브랜드를 짓고 이야기를 입히고 공간을 디자인하고 문화로 풀어내는 사람이 필요하다.
식품을 공부한 청년은 물론, 식품에 경영을, 마케팅을, 디자인을, 문화와 예술을 접목하고 싶은 모든 청년에게 먹거리 산업은 무대가 될 수 있다.
대전의 젊은이들이 저마다의 재능을 들고 대전에서 기능성 식품을, 발효 제품을, 새로운 먹거리 브랜드를 만들고 일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과학도시 대전'은 먹거리라는 가장 큰 산업에서 자기 미래를 갖게 된다.
다시, 그 학생의 질문 앞에서
세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래갈 산업이 먹거리다. 그 산업이 지금 과학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과학 인프라와 식품 인재, 그리고 빵과 커피라는 음식 자산을 모두 가진 대전이 이 흐름에서 비켜서 있다는 것은 식품을 연구하고 가르쳐 온 사람으로서 가장 안타까운 대목이다.
음식은 가장 일상적인 것이지만, 그렇기에 가장 큰 산업이고 가장 확실한 미래다. 언젠가 그 학생이 다시 "어디서 일하느냐"고 물을 때, "바로 여기, 대전에서"라고 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
빵과 커피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끝내 닿아야 할 곳은, 우리 지역 젊은이들의 미래 먹거리다. 그 변화는 언제나, 우리의 식탁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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