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미-이란 전쟁 틈타 한국에 손짓…"호르무즈 의존 줄이고 북극항로로 오세요"

[세미나] 주한러시아대사 "러시아,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러시아 자원 거부한 국가들, 에너지 안보 및 경제기반 훼손"

미국의 이란 침공으로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이 어려워지면서 에너지 수급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 측은 북극항로를 이용한 자국의 에너지 자원 도입 방안을 한국에 제안했다.

13일 (사)유라시아21과 (사)한국북극항로협회, 더불어민주당 윤준병·박정·이재강 의원 및 조국혁신당 김준형 의원이 국회의원회관에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위기와 한-러 북극항로 협력'을 주제로 공동 개최한 정책 세미나에 참석한 게오르기 지노비에프 주한 러시아 대사는 북극해를 통한 운송망이 기존 경로에 비해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면서, 이재명 정부도 이를 국가 발전 우선순위 목표에 상정해 뒀다는 점을 언급했다.

지노비에프 대사는 미국과 이란 전쟁이 "글로벌 물류 구조와 세계 에너지 시장의 취약성을 여실히 보여줬다"면서 "이러한 여건하에서도 러시아는 에너지 분야의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계속 남아 있고, 계약상 자신의 의무를 명확히 이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석유·가스 기업들은 내수 시장에 자원을 공급할 뿐만 아니라, 석유 및 천연가스 가공 산업을 발전시키며 새로운 판매 및 결제 채널을 구축할 수 있었다"라며 "러시아의 에너지 자원을 이용하는 국가들은 상당한 이득을 보고 있지만, 반면에 이를 거부한 국가들(EU를 의미한다)은 자국의 에너지 안보와 경제 전반의 기반을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노비에프 대사는 러시아가 "국내 가스 산업의 수출 잠재력을 확대하기 위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며 "파이프라인 천연가스(PNG)뿐만 아니라 러시아 북극 지역의 유전에서 생산되어, 특히 북극항로(NSR)를 통한 수송에 중점을 두고 있는 액화천연가스(LNG) 공급을 의미하기도 한다"라고 소개했다.

북극항로를 통해 지속가능한 에너지 공급을 추진하겠다는 설명인데, 특히 그는 북극항로가 수에즈 운하나 홍해의 바브엘만데브 해협 등 기존 경로보다 아시아에서 유럽까지의 거리를 약 40% 단축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노비에프 대사는 "이 노선에 대한 체계적인 작업은 이미 북극해 항로의 실질적인 이점을 확인한 중국 및 인도의 파트너들과 함께 진행되고 있다"라며 지난 2025년 중국 닝보항에서 영국 펠릭스토우항으로 향하는 국제 환적 컨테이너 선박이 북극 항로를 통해 처음으로 운항됐는데, 소요시간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것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그는 "전문가들의 평가에 따르면, 부산에서 로테르담까지 소요되는 운항 시간은 현재 35~40일이 아니라 약 18~20일이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 13일 (사)유라시아21과 (사)한국북극항로협회가 국회의원회관에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위기와 한-러 북극항로 협력'을 주제로 개최한 정책 세미나에 참석한 게오르기 지노비에프 주한 러시아 대사(왼쪽)가 발언하고 있다. ⓒ프레시안

이날 세미나에서 발표를 맡은 몽구쉬 바직 주한 러시아 대사관 참사관은 "러시아 석유·가스 기업들은 석유 및 천연가스 가공 산업을 발전시키면서 새로운 판매 채널과 결제 채널을 구축해냈다"라며 "과거 수출이 EU라는 단일 소비자에 묶여 있었다면, 지금은 공급 지역이 훨씬 다변화됐고 특히 북극항로를 통한 운송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전했다.

몽구쉬 참사관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 이후 유럽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 제재를 위해 자원 수입을 거부했지만, 러시아는 새로운 판매처를 확보하고 있다면서 오히려 이러한 제재로 인해 유럽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서방 집단' 엘리트들의 공격적 정책으로 인해 기존의 세계 에너지 구조가 인위적으로 훼손되고 있다. 이들은 자국의 이익에 반하여 러시아산 에너지 자원의 사용을 거부하고 있다"라며 "그 결과 이들 국가에서는 경제 성장률 둔화, 산업 생산 감소, 생산비 상승, 유럽 상품의 경쟁력 저하가 나타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몽구쉬 참사관은 "EU 집행위원회조차 러시아와의 에너지 협력 중단이 유럽 주요 제조업체들의 경쟁력 유지에 장애가 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라며 "러시아산 에너지 자원에서 벗어나겠다는 정책은 에너지 가격 상승을 초래하면서 EU 국가들에서 인플레이션 악순환을 불러왔다"고 평가했다.

그는 "에너지 분야에서는 20-30년 동안 장기적이고 투명한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러시아와 장기적으로 계약을 체결하면 수십년 동안 천연가스와 석유를 받을 수 있다"라며 "러시아는 북극항로 80%를 관리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우리가 경제안보를 보장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몽구쉬 참사관은 "러시아는 신뢰할 수 있고 지속 가능하며 현대적인 에너지원에 대한 보편적이고 비차별적인 접근 보장을 중시한다"며 "이러한 측면에서 러시아는 책임 있는 협력을 지지하며, 상호 이익에 기반한 건설적 대화를 계속해 나갈 의지가 있다"라고 밝혔다.

이성규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에너지 공급망 위기'라는 제목의 발표를 통해 "중동전쟁이 오래 지속되는 상황에서 중동 석유, 가스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 제재가 한시적으로 풀린 러시아 물량을 앞다투어 구입하고 있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전쟁이 끝나도 중동 물량이 정상적으로 수송되기 위해서는 4, 5주 소요되고 폭격으로 파괴된 시설들이 복구되어 가동되기까지는 2년 정도 필요한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라며 "더구나 잉여 공급능력을 갖고 있는 중동 국가들의 신규 증산 투자 계획도 몇 년 지체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부족한 물량을 댈 수 있는 곳이 미국 또는 러시아인데 특히 단기 부족 분량 충족에 러시아가 일정 정도 기여가 가능하다"라며 "제재만 해제되면 한국 입장에서는 (러시아로부터 수입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중동 의존도를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성우 KMI(한국해양수산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호르무즈 사태와 북극항로 가능성'이라는 발표를 통해 대러시아 수출품목 제재를 해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유로 1159개 러시아 수출품목에 대해 단독으로 제재하고 있는데, 그 결과 북극항로의 90%를 차지하는 러시아 연안 활용이 불가능해졌고 에너지 수입처 다변화에 한계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이 이같은 '경직된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 제재 해제를 통해 최적의 국익 교환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예를 들어 러시아 내륙의 거점에서 자원을 적재하고 이를 북극항로를 통해 운송하는 식의 흐름을 마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러시아 측이 북극 항로의 외국 선박 및 군함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어 북극항로에 대한 활용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세미나에 토론자로 참석한 정선미 외교부 경제안보외교센터 선임전문관은 2022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 연 방 내해 영해 접속수역에 관한 연방법'을 연속적으로 개정하면서 이러한 흐름을 만들었다고 전 했다.

정 선임연구원은 개정안에 따라 외국 선박이 북극항로 내 러시아 내수 진입을 희망할 경우 최 소 90일 전 허가를 신청하도록 하고 통항 가능한 외국 군함 수를 제한하는 등의 규정을 만들 었다면서 북극항로를 러시아의 주권·안보 공간으로 재정의하려는 흐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개정안은 미국·EU가 북극항로를 유엔 해양법협약상 국제 수역으로 보는 입장과 정면 으로 충돌하고 있다"라며 북극항로가 단순한 물류 경로를 넘어 새로운 전략적 초크포인트 (Choke Point, 병목 지점)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한국은 북극항로 협력을 단순한 경제 협력 차원이 아니라, 러시아의 법 제도 변화와 지정학적 리스크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경 제안보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고 조언했다.

정 선임연구원은 "한국의 북극항로 전략은 러시아의 전략적 통제 가능성과 국제 제재 환경을 충분히 고려해 지나친 낙관론, 또는 러시아에 대한 의존 확대가 아닌 호르무즈 해협 등 기존 병목 리스크를 보완하는 다중 경로 전략의 일부로 설계되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 지난 2013년 10월 22일 한국 선사로는 처음으로 북극항로 시범운항을 한 현대글로비스가 35일간의 항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왔다. 해양수산부와 현대글로비스는 이날 오후 전남 광양항 사포부두에서 입항 기념행사를 열었다. ⓒ연합뉴스

한편 더불어민주당 윤준병 의원은 이날 축사에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위기 속에서 북극항로를 둘러싼 기대와 우려를 점검하고, 대한민국과 러시아 양국이 상호 협력을 통해 국가 에너지 안보 전략을 모색하는 소중한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박정 의원은 "언젠가 남북 철도와 유라시아 물류망이 다시 이어지는 날, 북극항로와 철도·에너지 협력이 함께 연결되는 새로운 북방경제 시대도 충분히 가능하다"라며 이번 세미나가 북방경제의 새로운 가능성 모색 계기가 되길 기대했다.

김준형 의원은 "우리나라도 해양·조선·물류 분야의 경쟁력을 토대로 북극항로 시대를 대비할 때"라며 글로벌 공급망 위기 상황 속 대안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남북관계 및 국제적 사안들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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