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조선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 일본으로 향하면서 한국 선박은 왜 통과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일본 사례를 한국 선박과 동일하게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선사 차원에서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 문제 및 미국의 제재 등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30일 박일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일본 유조선과 현재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한국 선박의 상황이 왜 다르냐는 질문에 "각각의 선박과 선사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 선박 상황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라며 "정부는 우리 선박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관련한 외교적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답했다.
박 대변인은 "해협의 안전 상황 등 여러 고려해야 될 사항이 있고 통항 관련된 판단과 결정은 결국 선사에 달려 있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라며 "정부는 통항 문제를 다루어 나가는 모든 과정에서 선사의 판단과 입장을 고려하면서 이란 및 관련국들과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라고 말해 선사에서 통항을 우려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시사했다.
앞서 29일 일본 공영방송 NHK는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X'의 본인 계정에 "페르시아만에 체류 중이던 일본 관련 선박 1척이 29일 호르무즈 해협을 무사히 통과하여 페르시아만 외부로 대피하고 일본을 향해 항해 중인 것으로 확인했다"며 "해당 선박에는 3명의 일본인 선원들이 탑승하고 있다"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이란의 국영 미디어는 정유회사인 '이데미쓰코산'의 자회사가 관리하는 파나마 선적의 대형 유조선 'IDEMITSU MARU'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다고 보도했다"며 "선박 위치 정보를 공개하고 있는 '마린 트래픽'의 데이터에서는, 목적지는 나고야로 되어 있고 5월 중순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방송에 따르면 이번 선박 통과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봉쇄한 이후 일본 기업이 관리하는 선박 중 해협을 통과한 첫 사례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한국 선박도 일본처럼 통과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이 이란에 대사관을 아직 유지하고 있는 몇 안 되는 국가이기도 하고 정병하 외교부장관 특사까지 보내는 등 이란과 외교적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왜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이 나오지 않냐는 지적이다.
실제 이란은 한국 정부의 이러한 외교적 행보를 높이 평가하고 있기도 하다. 이날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에도 우리 공관과 기업들이 끝까지 잔류했던 전례를 이란 측에 전달하기도 했다"라며 "이란 측은 전쟁 발발 이후 최초의 외국 고위급 인사가 이란을 방문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고, 전시 상황에서도 우리 대사관이 계속 잔류를 하고 있는 점 등 우리의 외교적 노력에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정병하 특사의 이란 방문에 대해 "전쟁 상황에서 이동상 안전 등 대이란 소통에 제약이 있고 정세 불확실성도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이란과 접촉면을 늘려서 우리 국민 안전 및 선박 통항 관련 우리의 메시지를 조금 더 직접적으로 전달했다"는 데 의미를 부여했다.
이에 정부와 이란의 외교적 문제보다는 선박을 운영하는 선사가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망설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가 이란에 특사를 보냈던 4월 초순과 현 상황이 다르다는 점이 선박의 호르무즈 해협 통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병하 특사가 이란에 도착한 날짜는 지난 11일이다. 이때만 해도 미국과 이란의 2주간 휴전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가늠해볼 수 있는 시기였다. 하지만 휴전 기한 만료 이후 미-이란 간 협상이 성과를 내지 못하고 미국의 역봉쇄까지 이어지면서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이 높아졌다. 이 때문에 선사들이 안전 문제를 고려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여기에 설사 해협을 통과한다고 해도 미국의 이후 제재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어 선사 차원에서 호르무즈 해협 통과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지는 측면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측은 선박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려면 사전에 이란과 협의 후 지정된 항로를 이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이란 측에 통행료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했고 이란에도 이를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측이 정병하 특사와 만남 과정에서 통행료를 언급했냐는 질문에 이날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통행료 관련해서는 협의한 바 없고 전달받은 바도 없다"리고 답했다.
다만 이란 측은 지정된 항로를 이용해야 하니 이에 대한 안내 비용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정된 항로로 선박이 지나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란 측은 기뢰가 있어서 위험하다는 이유를 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현재 테헤란에서는 여성들이 히잡을 거의 착용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수도인 테헤란 내에서는 히잡 착용 여성들을 보기 힘든데, 이를 두고 이란 정부가 일부 유화책을 병행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이란 정부가 분열돼있다는 관측이 미 언론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가운데, 실제 이란 외교부가 주요 사항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율성은 많지 않으며 협상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도 상부의 의견을 구해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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