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통령님, 장독대 안의 음식은 이미 구더기가 들끓어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상태입니다"

홍성희 교사노조연맹 사무총장

취임 이후 국무회의와 타운홀 미팅에서 보여준 이재명 대통령의 정책 이해도는 국민들의 묵은 체증을 시원하게 해소했다.

정책 추진의 속도와 강도 또한 놀라울 만큼 날카롭고 신속했다.

그러나 교육현장은 달랐다.

교사들은 수 년째 무너지는 교권과 악성 민원에 시달리며 실질적 대책을 기다려왔지만, ‘대통령은 교육에는 관심이 없다’는 교사들의 목소리가 퍼질 정도로 교육 분야에 대한 언급이나 정책적 체감은 미미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8일 열린 국무회의를 통해 대통령이 교육부 장관에게 교권 문제를 언급하며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주문한 점은 반가웠다.

하지만 이어진 ‘구더기 무서워 장독대 없애면 안 된다’는 발언과 교사의 책임 회피를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며 현장체험학습 활성화를 촉구한 대목은 현장의 고통을 외면한 인식으로 들린다. 이미 상처를 입은 교사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더하는 말이었던 탓이다.

현장의 현실은 명확하다. 2018년 대구에서는 수학여행 중 복통을 호소한 학생을 보호자와 연락 후 휴게소에 내려준 교사가 아동학대 혐의로 벌금 800만 원을 선고받았고, 같은 해 발생한 레일바이크 사고에서는 교사의 보호의무 소홀이 책임으로 명시됐다.

2019년 경북의 초등학교 체험학습 중 발생한 실명 사고에서도 교사와 학교의 책임이 인정됐다. 2022년에는 현장체험학습 중 버스 사고로 학생이 사망하자 인솔 교사에게 금고형이 선고됐다.

이것은 일부 사례에 불과하다. 체험학습 준비 과정에서 이뤄지는 장소 선정과 업체 계약, 예산 수립, 계획서 작성은 모두 교사의 몫이다. 위생과 편의시설 및 식사는 물론, 학생 간 갈등과 버스 내 휴대폰 사용까지 사소한 민원도 교사가 감당하고 있는 형편이다. 버스기사 음주 측정과 차량 점검까지 교사의 책임으로 회자되는 것이 현실이다.

필수 교육과정도 아닌 체험학습을 위해 감당해야 하는 행정과 민원은 그 교육적 의미에 대한 회의만 키운다. 여기에 사고 발생 시 범죄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공포는 교사들에게 넘을 수 없는 장벽이 된 지 오래다.

교사들이 체험학습을 거부하는 이유는 결코 책임 회피가 아니다. 이는 직업을 잃고 범죄자가 되는 현실을 막아달라는 절박한 요구다. 그럼에도 교육당국은 구조 개선 대신 형식적 안전 대책만 반복하며 현장체험학습을 사실상 강요하고 있다.

대통령이 기억하는 체험학습은 이미 사라졌다. 오늘날의 체험학습은 각종 민원과 상업화 속에서 테마파크형, 고비용 수학여행으로 변질된 실정이다. 과연 이것이 교육적으로 필수적인 활동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체험학습 강행의 피해자가 교사만이라는 인식도 사실과 다르다. 안전사고의 위험은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동일하게 존재한다.

과거 학생들에게 추억과 경험을 선물하던 체험학습은 이제 깊은 맛의 씨간장이 아니라, 구더기로 가득 차 폐기해야 할 음식물이 됐다. 학생의 안전과 교사의 면책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완전히 새로운 환경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현장체험학습’이라는 말 자체가 머지않아 추억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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