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교육철학,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할 것인가

[대학문제연구소 논평] 교육부의 '성장엔진 연계 지역인재 양성방안' 발표를 보고

교육부가 최근 내놓은 '성장엔진 연계 지역인재 양성방안', 이른바 '앵커(ANCHOR)' 방안은 이름부터 상징적이다. 닻을 내린다는 의미의 '앵커'는 지역에 뿌리내린 인재 양성과 산학협력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표방한다. 그러나 이 명명 자체가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지금까지의 정책이 실제로는 지역에 '닻'을 내리지 못했음을 자인하는 동시에, 앞으로는 강력한 통제를 통해 이를 강제하겠다는 의도다. 문제는 이 '닻'이 지역을 지탱하는 기반이 아니라 오히려 침몰을 가속하는 무게추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번 방안은 기존의 '라이즈(RISE)' 체계를 '앵커'라는 이름으로 재구성하면서, 단순한 재정지원이 아닌 '선택과 집중', 그리고 평가를 통한 구조조정에 방점을 찍는다. 표면상으로는 '나눠먹기식 지원을 배제하고 성과 중심으로 재편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그러나 이 구상은 국가가 설정한 기준에 따라 대학을 선별하고, 그에 미달하는 대학은 퇴출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겉으로는 지역인재 양성을 내세우지만 실질적으로는 지방대 축소와 정리를 제도화하는 정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이번 발표는 이재명 정부의 교육정책이 그 주요 공약이자 국정과제인 '서울대 10개 만들기'의 원뜻과 어긋나는 방향을 취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원래 이 구상은 거점국립대를 중심으로 각 권역의 교육·연구 역량을 강화하여 수도권 집중과 대학 서열체제를 완화하겠다는 취지였다. 즉, 서울대라는 단일 정점을 다핵화함으로써 지역균형 발전의 기반을 만들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이번 앵커 방안은 이를 사실상 폐기하고 오히려 지원대상인 거점국립대들조차 상호경쟁으로 내몰고 있다. 9개 대학 가운데 3개 대를 선정하여 매년 1000억원 내외로 각각 5년간 집중지원할 계획임을 밝힌 것이다.

이미 국립대 교수들 사이에서는 "서울대 10개가 아니라 서울대 4개 만들기로 축소한 것이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선정에서 제외된 나머지 거점국립대들에 각 300억 원 규모의 추가 지원 계획을 밝히고 있지만, 이는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라기보다 불만에 대한 임시처방에 가깝다. 문제의 핵심은 재정 규모가 아니라 정책의 철학과 방향에 있다. 앵커 방안이 지향하는 것은 균형 있는 지원을 통한 각 지역의 교육 및 연구역량 제고가 아니라 지역 간 상호경쟁을 통한 '선별'과 '배제'다.

더 심각한 것은 이 방안이 대학을 국가 산업전략의 하위 부속물로 재편하는 흐름 속에 위치한다는 점이다. 현 정부는 'AI 3대 강국'과 같은 국가 생존전략을 앞세우며 특정 산업 분야에 자원을 집중하고 있다. 앵커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대학은 지식 생산과 비판적 사유의 공간이 아니라 산업에 필요한 인력을 공급하는 기능을 맡은 하부기관으로 규정된다.

이재명 정부의 빈약한 교육철학

이 과정에서 이재명 정부의 교육철학이 얼마나 빈곤한가가 명명백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대학을 사회 전체의 공공적 인프라로 보는 관점 대신, 단기적 성장동력을 위한 투자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태도가 정책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그 결과 대학정책은 왜곡된 대학체제의 공공적 개편은 외면하고 효율성과 성과의 이름으로 대학을 산업 목적에 종속시킨다. 각 지역에 서울대에 버금가는 연구중심대학을 만들겠다는 공약은 그야말로 허사에 불과했던 것인가?

더구나 한국에서 대학문제는 단순한 교육영역만이 아니라 전체사회의 구조적 문제, 나아가서 국가위기와 맺어져 있다. 망국적인 대학입시경쟁의 과열 현상이 보여주다시피, 거기에는 학벌주의와 서열체제, 수도권 집중과 지역소멸, 그리고 사회적 불평등이 응축되어 있다. 위험수위의 저출산추세가 이같은 대학문제와 연동되어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의 가능성이 줄어들고 경쟁의 비용이 과도하게 상승하면서, 청년 세대는 생존에 급급하여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다.

'빛의 혁명'을 통해 집권한 정부의 교육부라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이처럼 왜곡된 대학체제를 바로잡을 근본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러나 앵커 방안은 이 구조를 건드리기는커녕 오히려 기존 서열체제를 전제한 채, 그 내부에서 각자도생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제 거점국립대끼리도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되었지만, 지역의 사립대학들은 한층 더 엄혹한 평가를 거쳐 생존가치를 입증해야 한다. 그 결과는 불을 보든 뻔하다. 이 경쟁을 이겨낸 일부 대학만이 살아남고 나머지 대다수는 단순히 시장에 맡겨지는 수준을 넘어서 '정책적으로' 도태된다.

특히 중소도시 사립대학들에 미칠 영향은 치명적이다. 기존의 라이즈(RISE) 체계가 지자체들의 역내 대학들에 대한 분배에 따라 열악한 대학재정에 일정 부분 도움을 줬다면, 앵커 방안은 그 숨통을 조이는 작용을 할 가능성이 크다. 지역에서 고등교육기관의 역할을 하던 대학들이 잇달아 사라진다면 그것은 단순히 대학 수의 감소만이 아니라 지역소멸을 앞당기고 그 사회의 지적·문화적 기반 자체를 붕괴시킬 것이다. 대학은 교육기관이면서 동시에 지역의 문화, 인구, 경제를 지탱하는 핵심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앵커를 통해 단기적으로는 일부 성공 사례가 만들어질 수 있다. 특정 대학이 산업과 연계되어 성과를 내고, 정부는 이를 정책의 성과로 제시할 것이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보면, 대학 생태계의 다양성과 지속가능성이 파괴되면서 우리 사회는 이보다 훨씬 막대한 비용을 치러야 할 가능성이 높다. 단순한 교육정책의 실패를 넘어 지역 소멸을 가속화함으로써 한국 사회의 위기를 더 심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방안은 '지방대 살리기'를 내세운 공약이 어떻게 '지방대 죽이기'로 전환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는 단순한 정책 실패라기보다 처음부터 잘못 설정된 문제 인식의 결과다. 대학을 국가 경쟁력의 도구로만 바라보는 한 이러한 오류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할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이전 정부의 경험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교육개혁의 회피가 어떻게 정치적 반전으로 이어졌는지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정권 재창출 실패로 이어진 이른바 '조국 사태'의 근원에는 단순한 인사상의 문제를 넘어 교육불평등 현실에 대한 사회적 불만이 자리하고 있다. 사소하게 보이는 대학입시에서의 특혜 이슈가 공정성에 대한 청년 세대의 불신을 자극하고 또 폭발시킨 것이다. 이는 과도한 서열화와 입시 과열풍토로 드러나는 왜곡된 대학체제에 대한 근본적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우리 사회가 어떤 정치적 비용을 치러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과연 현 정부의 교육정책은 이러한 교훈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가? 앵커 방안 발표를 계기로 드러난 지금의 방향은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구조적 문제를 외면한 채 성과와 효율을 앞세운 재편은 단기적 성과를 낼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큰 부작용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특히 불평등과 불공정 이슈에 민감한 2030 세대의 감정구조가 이같은 추세에 어떻게 반응할지 우려되는 지점이 있고 결과적으로 정권의 안정성 자체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위험조차 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이제 껍데기만 남은 구호가 되어가고 있다. 그 안에 담겼던 문제의식, 즉 수도권 집중 완화, 대학서열구조 해체 내지 개혁, 지역균형 발전은 앵커라는 이름 아래 희석되고 있다. 그 자리를 경쟁, 선별, 그리고 이를 통한 강제 구조조정이 대신한다.

정책은 이름이 아니라 내용으로 평가돼야 한다. '앵커'라는 이름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그것이 지역을 가라앉게 만드는 닻이라면 그 결과는 명백하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기존의 틀로는 지방대의 대거 몰락이라는 파국을 피할 수 없다.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대학을 사회 전체의 공공적 기반으로 재인식하고 그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려는 정치적 의지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 사회는 '지방대 위기'를 넘어서 대학의 존재 이유조차 휩쓸어버릴 더 큰 파고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12일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교육부·국가교육위원회·법제처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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