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올림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지키기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입니다.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의 산재를 신청하면서 기록의 필요성을 절감해 생애사 기록을 시작했습니다. 아픔과 고통뿐 아니라 개인의 꿈과 행복에 대해 묻는 인터뷰를 했고, 재해경위서, 진술서가 아닌 삶을 담은 글을 적었습니다. 올 한 해 2월부터 한 명씩 총 11명의 삶을 구술기록으로 전해드립니다.
상처로 남은 병원에서의 시간
한결은 2017년 30살의 나이에 백혈병을 진단받았다. 아이엠에스(IMS)에서 일 한 지 2년 반 정도가 흐른 뒤였다. 감기 기운이 있어 병원에 갔다가 피 검사를 권유받았고 백혈병을 발견하였다. 진단과 동시에 의사들은 희망이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충격에 빠지는 것도 잠시 병원에서의 경험은 힘든 투병을 함께 해나가야 할 보호자를 주눅들게 했다.
(의사가) 아침에 상담 좀 하자고 7시까지 오래요. 갔더만은 의자에 같이 앉아가지고 이렇게 조곤조곤 얘기를 해줘야 되는데, 복도에 세워놓고 큰 소리 탕탕 치면서 알아듣지 못하는 전문 용어 막 떠들고 그러니까 우리는 모르잖아요. 전문 용어 뭔 얘기를 하는지도 모르겠고. 조금의 희망이라도 주고 그래야 되는데 그런 것도 없이 해버리니까 마음만 아프고 왜 만났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경험은 한결 아버지가 의사라는 집단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과 반감을 갖게 할 정도였다. 권위적인 태도의 의료인으로부터 환자나 보호자가 소외감을 느끼는 일은 종종 발생한다. 지식과 권력의 불균등함 속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위축이 의료인의 태도로 말미암아 더 커지는 것이다. 그는 그 이후에 다른 일로 병원에 갈 때도 의사들의 말을 믿고 따르기 힘들었다고 말한다.
격리된 병동에 있는 한결과 소통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한결의 부모님은 멀리서라도 한결을 지켜보기 위해 거의 매일 병원에 갔다.
거기는 이제 완전히 격리해야 돼요. 유리로 칸막이 해가지고 마이크로 얘기하고 그런 식이죠. 격리가 돼 버리니까 보호자 한 명만 잠깐 들어가고 그럼 나는 밖에서 (기다리고). 얘기할 수가 없어요. "잘 지내냐. 치료 잘 해라. 간다" 이 정도밖에 얘기할 수 없는데 "어떠냐" 마이크로 얘기하면 괜찮은 것 같다고 하기도 하고. 자기는 힘들지만은 그래도 희망이라는 게 있잖아요.
일도 1년 동안 못 했죠. 안 했어요. 못했어요. 할 수가 없었죠. 돈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거의 매일마다 갔으니까 병원에는.
한결의 가족은 한결이 1년 동안 서서히 나빠지는 과정을 지켜봤다. 그럼에도 골수이식을 하면 호전이 되고 완치가 될 거라는 희망을 가졌더랬다. 그러나 골수이식 후 몇 개월 뒤 상태는 점점 악화됐다. 괴사처럼 다리 종아리의 색깔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부모님은 하나뿐인 아들 한결을 잃었다.
후회와 상상
서먹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서 한 걸음 나아가려고 하던 때에 한결이 떠났다. 중국 시안으로 2박 3일간 여행을 가서 붙어 있으며 시간을 보낸 것은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한결 아버지는 이때 찍은 사진을 지우지 못하고 10년째 가지고 있다. "같이 있었으면 여행을 많이 다니고 있을 텐데 그게 마지막이었다"라는 말은 미처 알 수 없게 되어버린 미래의 부자관계에 대해 상상만을 남겼다.
한결의 부모님은 잘 알지 못했다. 한결의 일에 어떤 위험 요소가 있고 이것이 어떻게 병하고 연결이 될 수 있는지. 한결에게 들은 것은 일이 많아 힘들다는 토로가 다였다.
인원이 자꾸만 이직을 하니까 혼자서 업무 처리를 해야 되니까 힘들어졌다고, 그만둬야 되겠다고 자기도 많이 그랬어요. 그래서 "조금 더 기다려라" 내가 몇 번 얘기를 했죠. 그때 그만뒀어야 되는 건데. 그러면 백혈병이 안 왔을지도 모르는데 참.
직업병 피해자 유가족들은 비슷한 후회를 안고 살아간다. 힘들다고 말할 때 그만두게 했어야 한다고. 그러나 '안 힘든 일이 어디 있겠느냐'는, 사회 전반에 스며 있는 인식은 그 고민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기회를 지워버린다. 우리는 모두 참고 견디는 데 익숙해지도록 훈련받아 왔다. 지금의 청년 세대, 부모 세대 모두 마찬가지다. 그렇게 해야만 생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견딤으로써 잃게 되는 것들이 무엇인지 아무도 충분히 알려주지 않는다. 견딤으로써 가장 중요한 생존을 놓치게 될 수 있다는 사실, 그것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비극이다.
이 단계에서 미래를 예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 일이 단지 체력적으로 힘들기만 한 일이아니라 위험한 일이었다는 사실을, 당사자도 가족도 알지 못한 상황에서 어떻게 그만두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또 어떻게 선뜻 그만두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그러므로 유가족이 한평생 짊어지고 살아가는 죄책감은, 그 위험을 제때 밝혀내고 알리지 못한 사회, 위험을 방치한 채 누군가가 그 일을 계속 수행하도록 내버려 둔 사회가 함께 나눠 가져야 할 책임이다. 이 글은, 유가족 개인에게만 지워져 있던 그 무거운 책임을 사회로 되돌려 놓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마음을) 다스릴 방법이 없죠. 그냥 살아가는 수밖에 없지 먹먹하게. 사진도 아직까지 걸어놓고. 우리는 해외 갔다고 생각하고 액자에다가 그냥 가지고 있어요. 액자에 걸어 놨어요. 방에다가. 벌써 8년차가 돼가잖아요. 엊그제 같아요. 엊그제 같아. 사진 보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그 문 열고 들어올 것 같아. 아직까지도.
한결의 아버지는 아들을 잃은 후 먹먹하게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 먹먹함은 아마도 평생 가시지 않겠지만 죄책감과 후회만큼은 부디 덜어내길 바라는 마음이다. 한결의 죽음을 산재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왔어도 반올림이 인과관계 규명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거듭 다짐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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