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재 피해자, 끝나지 않는 빈곤과 실직의 도돌이표

[클린룸 안의 사람들] 오퍼레이터 최유선 이야기 ③ 아픈 사람들은 모두 다 집에서 쉬는 게 아니에요

반올림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지키기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입니다.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의 산재를 신청하면서 기록의 필요성을 절감해 생애사 기록을 시작했습니다. 아픔과 고통뿐 아니라 개인의 꿈과 행복에 대해 묻는 인터뷰를 했고, 재해경위서, 진술서가 아닌 삶을 담은 글을 적었습니다. 올 한 해 2월부터 한 명씩 총 11명의 삶을 구술기록으로 전해드립니다.

마비가 있어도 일은 했어요

병이 있다고 해서 내내 와병 생활을 하며 쉬었던 것은 아니다.

저는 아픈 거를 얘기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첫째 한 가지가요. 환자 취급을 해서 싫어요. "너 괜찮아? 아픈데 이렇게 무리해도 되겠어? 아픈데 그걸 왜 해. 아프면 쉬어야지." 근데 아픈 사람들은 모두 다 집에서 쉬는 게 아니에요. 그건 더 힘들어서 못 해요. 생활 패턴은 똑같이 하지만 무리하지 않게만 하면, 내가 너무 과욕을 부려서 무리를 하면 다치니까. 그렇다고 내 생활 패턴을 모두 다 포기할 수는 없어요. 패턴들을 유지해 가면서 살아야지 아프다고 모든 걸 내려놓고 살 수는 없거든요. 근데 사람들은 거기까지는 생각을 안 해요. 왜냐하면 내가 아픈 사람이 아니니까. 본인들의 입장이 아니잖아요.

일은, 그냥 몸이 특별하게 마비가 있어도요. 일은 했던 것 같아요. 팔이 조금 힘이 부족하면, 오른팔이 못 하면 왼팔로 하면 되니까.

유선은 아픈 와중에도 계속 일을 했다. 돈도 벌어야 하고, 아프다고 집에서 쉬기만 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다만 선택의 폭은 좁았다. 경력 단절 후 재취업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더군다나 아파서 뛰쳐나오게 된 반도체 회사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새로운 분야에서 일을 시작해야 했다.

여성가족부에서 발표한 '2022년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경력 단절 이후 사무직‧전문가, 전일제 일자리는 감소했고, 판매‧서비스직, 시간제 일자리는 증가했다. 경력 단절 여성이 얻을 수 있는 일자리는 임금이 낮고 고용이 불안정한 일자리로 제한되는 것이다. 경력 단절 후 첫 일자리 월급(214만 3천 원)은 경력 단절 이전(253만 7천 원)의 84.5% 수준이었다. 특히 연령이 높아질수록, 경력 단절 기간이 길수록 경력 단절로 인한 임금 손실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유선 역시 중년 여성이 접근하기 쉬운 호텔, 식당 등 서비스직 일자리로 가게 됐다. 몸이 아프기 때문에 한층 더 어려운 것도 있다.

제가 식당 같은 데 이렇게 가 보면, 호텔 같은 데 가다 보면 식음팀이라고 해서 설거지도 하고 서빙도 보고 이래요. 서빙은 괜찮아요. 근데 주방 같은 데 식기류 다루는 데는 화학 재료를 많이 써요. 세척 같은 데. 그러면 조금 고민이 되기는 해요. 왜냐하면 내가 안 그래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 몸이 안 좋은데 그거를 접해야 되는, 근데 또 거기서 일하면서 갑자기 "나 이거 만지면 안 돼요." 그러고 나갈 수는 없잖아요. 그런 부분들이 솔직히 없지 않아 있어요. 그래서 직업 선택도 애매한 부분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알게 됐을 때는 또 안 가죠.

아무래도 몸이 아프니까 중간에 일을 하다가 못 나갈 수가 있잖아요. 아플 수도 있으니까 장기적으로 일할 기회가 와도, 예를 들어서 "정직원을 하세요." 그러면 정직원을 거부를 하는 거죠. 알바 며칠만 하고 경과를 봐서 괜찮으면 또 늘리고, 그런 것들이 항상 머릿속에 짜여 있어요. 안 그러면 상대편이 피해를 보는 거. 그러니까 "정직원을 하시면 좋을 텐데 왜 자꾸 알바만 하세요?" 이렇게 물어볼 때가 있어요.왜냐하면 저 같은 경우는 병원도 자주 다녀야 돼요. 요즘은 거의 한 달에 한 번, 두 번, 많게는 세 번까지도 나오긴 해요. 그러면은 회사에서 그렇게 빠지는 거 좋아하는 데 아무도 없거든요. 그러다 보면 알바하면서 피해 안 주는 데로, 피해도 안 주고 또 쉬는 데도 일요일만 쉬면 못 가잖아요, 병원. 그러니까 평일날도 쉬고, 내가 양해를 구하면 쉴 수 있는 날 쉬는 데로. 그러니까 폭이 좁은 거예요.

병가와 연차 사용이 자유로운 곳이었다면 유선이 병원 진료 때문에 정직원을 포기해야만 했을까? 아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자발적 퇴사는 회사로부터의 해고와 모호한 경계에 있다. 병원에 다녀야 해서 이루어지는 '자발적 퇴사'는 소득을 지속할 수 있는 제도에서의 배제로 이어지기에 많은 경우 빈곤으로 귀결된다. 아파서 일을 그만두고 난 후에는 실직으로 인한 소득 감소분을 벌기 위해 안정적이지 않은 노동을 또다시 선택하는 빈곤화 과정이 발생한다.

작고 소박한 제주도 생활

유선 부부는 때때로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안정적인 수입이 없으니 조금씩 더 가난해졌다. 유선의 남편은 당시 공황장애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제주도로 오게 됐다.

솔직히 지금 여기 제주 와서는 여유롭게 사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서울에서 살 때보다 여기 사는 게 더 가난한 것 같아요. 더 힘든 것 같아요. 이게 여유는 둘째 치고, 직장 생활이나 뭔가가 평탄하게 계속 유지가 돼야 되는데 둘 다 아파버리면 다 쉬어버려야 되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모아 둔 돈이 있고 이런 것도 아니고. 저희가 처음에 계획했을 때 한 달에 한 200에서 300만 벌면 그냥 먹고 사는 데 큰 지장 없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을 했었는데 그거 벌겠다고 투자했던 금액들 다 까먹고 없지.

지금 산 지는 한 3, 4년. 왔다 갔다 한 지는 10년 넘었죠. 그냥 바닷가가 좋고, 솔직히 실질적으로 직장 다니잖아요. 바닷가 있는지도 몰라요. 일만 왔다 갔다 하고 바닷가가 있는지 오름이 있는지 한라산 바로 앞에 있는데도 잘. 근데 다 비슷한 것 같아요. 가끔 이제 숨 한 번씩 돌릴 때 차에 타서 막 소리 지르고 "나 제주도에 산다!" 그럴 때 한 번씩 제주도에 사는 것 같아요. 솔직히 어떻게 보면 집, 회사, 집, 회사 이렇게 다녀서.

웃으실지도 모르겠지만 낚시하거나 바닷가 이렇게 바라볼 때 (행복해요). 저녁에 배에 보면 이렇게 등이 있잖아요. 그 집어등이 이렇게 바닷가를 딱 비치잖아요. 그럼 안에서 어마어마한 물고기들이 다 푸른색을 띠고 이렇게 다 물 위로도 안 떠오르고 물 아래로도 안 가라앉아요. 무지개 색깔처럼 딱 이렇게 떠 있을 때가 있어요. 그거 보면서 행복하다는 걸 느끼거든요. 물고기를 잡고 안 잡고를 떠나서.

당시 지귀도가 보이는 바닷가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 도중 유선은 창밖을 바라보며 저기가 지귀도라고, 낚시를 많이 하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바닷가를 바라볼 때 행복하다는 유선에게 그 순간이 잠시간의 휴식이 됐을까? 그날도 유선은 어김없이 식당 일을 하러 발걸음을 옮겼지만 그 순간이 제주도에 살고 있음을 실감하는 또 하나의 순간으로 남았으면 했다.

▲반도체 공장 지도 Ⓒ박정원

해피엔딩이 아닌 이야기

유선은 반도체 공장에서 일을 하고 아팠던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어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다른 피해자들을 마주하는 것이 어렵다. '반도체'라는 단어가 아픔과 강하게 결합됐고, TV에서 산업 재해 관련한 얘기만 나와도 마음이 힘들어 피하고 만다.

전 지금도 아파요. 아프다는 말이, 마음이 아파요. 그러니까 그분들을 만나면 공유가 돼서 더 좋아야 되는데 아픈 거야 더. 그러니까 그게 잘 안 돼요. 만나서 활동도 하고 할 수가 있는데 저도 지금 나은 상태가 아니고. 그래서 솔직히 조금 피하는 게 있어요. 내가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유선이 다 나았다면 기승전결을 거쳐 갈등이 해소되는 해피엔딩의 이야기를 풀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뻔하지만 감동적인 질병 극복 서사 중 하나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선의 이야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몸에는 때때로 마비가 찾아오고, 비싼 약값은 걱정되고, 병원을 오가며 식당 일도 해야 한다. 그러니 이것은 아름답지 않은 찜찜한 결말의 이야기이다. 결코 이야기로 소비되고 끝날 수는 없는 삶이다.

만일에 제가 나았어요. 그럼 이제 스토리 전개가 되겠죠. 이렇게 해서 결국에는 나았어. 어디 갔더니 이렇게 해서 나았어. 스토리 전개가 있는데 아직도 ing라, 진행 중이라, 스토리가 해피엔딩이 아니라….

※ 글은 아래 자료를 참조했습니다.

- 김미영·김항수, 『골골한 청년들』, 오월의봄, 2022, 142쪽.

- 이승윤·김기태, 「아픈 노동자는 왜 가난해지는가?,『한국사회정책, 24권 4호, 2017, 113∼1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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