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탑승 시위' 전장연 활동가, 징역형 집행유예 선고…"인권의식 뒤떨어진 판결"

전장연 "장애인이 10년 동안 거리에 나오게 만든 국가는 그동안 뭘 했느냐" 투쟁 의지 계속

장애인 권익 향상을 촉구하며 여의도와 시청역 일대에서 시위를 벌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활동가들이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활동가들은 이번 판결에 부당함을 호소하며 앞으로도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제35형사부(판사 백대현 성지원 김의기)는 29일 전차교통방해, 업무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문 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0만 원을 선고했다. 한 씨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20만 원을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문 씨에게 징역 3년과 벌금 20만 원을, 한 씨에게는 징역 2년과 벌금 20만 원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전장연 집회 과정에서 사전에 신고된 경로가 아닌 차선을 점거하거나 휠체어를 타고 이동했는데, 이런 행위는 원활한 교통을 현저히 곤란하게 하는 행위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인명 사고 등을 불러올 수 있는 위험성도 매우 컸다"고 판단했다.

이어 "시위 과정에서 휠체어를 스크린도어와 열차 출입문 사이에 위치시키거나 휠체어에서 내리는 등 열차 출입문을 닫지 못하게 해 출발을 지연시켰다"라며 "평일 출근 시간대에 서울 도심에 위치한 승강장에서 이뤄지는 출근길 시민들의 정시 출근을 어렵게 했고 후속 열차의 연쇄적인 운행 지연을 야기해 열차의 정시 운행을 막는 것을 초래했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 같은 시위 방식에 대해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이라는 집회 시위 목적만을 고려한 나머지 공공의 이익 및 법질서를 지나치게 경시한 것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피고인은 이러한 집회 과정에서 적법하게 직무를 집행하는 공무원들을 전동휠체어로 충돌하거나 머리채를 잡는 등의 방식으로 폭행했다"라며 "이러한 공무집행 방해한 행위는 정당한 국가 공권력 행사를 방해하는 것뿐 아니라 공권력에 대한 경시 풍조를 조장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죄질이 상당히 불량하다"고 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공동대표가 21일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제62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를 벌이던 중 이를 저지하던 서울교통공사 관계자와 충돌하며 열차 입구에 넘어져 있다. 전장연이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에 나서는 것은 지난해 4월 8일 이후 1년여 만이다. ⓒ연합뉴스

재판부는 피고인 측이 주장한 위법성 조각 사유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피고인 측은 △전동휠체어를 도로 등에서 멈춰 세운 것은 사회통념을 위반하지 않는 수준이었다는 점 △보안관과의 물리적 충돌은 정당한 방어권 행사였다는 점 △전동휠체어가 특수공무집행방해죄가 규정하는 '위험한 물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 등을 근거로 무죄를 주장한 바 있다.

다만 재판부는 문 씨가 하반신 마비 중증 장애인으로서 장기간 장애인 권리 향상을 위한 활동을 했다는 점, 이번 사건은 사익이 아닌 장애인 권익 향상을 위한 단체 행동을 하는 과정에서 벌어졌다는 점, 우리 사회가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제도가 존재하고 실질적인 권리 보장을 위해 제도 개선 및 장애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점 등을 정상 참작했다.

피고인들과 전장연 측은 선고 결과를 두고 "한창 뒤떨어진 재판부의 인권 의식을 보여준 당황스러운 판결"이라고 성토했다. 문 씨는 "장애인이 10년 동안 거리에 나오게 만든 국가는 그동안 뭘 했느냐. 국가와 사회야말로 우리를 방조하지 않았느냐"라며 "살아보겠다고 나온 사람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것에 굴하지 않겠다. 보란 듯이 열심히 나가서 싸우겠다"라고 했다.

피고인 법률대리를 맡은 이수연 변호사(법조공익모임 나우)도 "전장연의 열차 운행 지연 행위를 궤도 손괴에 달하는 전차교통방해죄에 해당한다고 본다면 어떤 방식으로 평화적 시위를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휠체어를 위험한 물건으로 판단한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심장이 아프고 너무 화가 나는 판결이지만 잘 준비해서 항소하겠다"고 했다.

앞서 문 씨와 한 씨는 2022년 4월 장애인 권리 예산 반영을 촉구하며 여의도 도로를 점거하고 시청역에서 지하철 승하차 시위를 벌였다는 이유 등으로 검찰에 기소됐다. 문 씨는 2023년 지하철 승강장 시위 과정에서 전동휠체어로 경찰을 들이받아 넘어지게 하고 손을 물어뜯는 등 공무집행을 방해한 일 등도 함께 기소됐다.

▲전장연 활동가 문애린 씨가 29일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이날 재판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프레시안(박상혁)

전장연 활동가 18명은 2021년을 기점으로 총 30개 사건에 대한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활동가들은 처벌을 감수하고서라도 장애인 권익 향상 운동을 계속하겠다고 말한다. 다음은 문 씨가 재판 전 서울중앙지법 앞 기자회견에서 발언한 내용이다.

"지금까지 활동들이 후회스럽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투쟁을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에게는 투쟁을 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저는 활동하기 전에는 거의 20년 가까이 집구석에서 단 한 번도 집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집구석에 있을 때는 늘 언제나 바깥 세상을 향해 존경을 해 왔습니다.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다니고, 가족들과 자유롭게 외출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언젠가 나도 그런 날이 오기를 꿈꿔 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전동 휠체어를 타면서 바깥에 나오게 됐습니다. 동경하던 꿈꾸던 바깥에 나왔지만 여전히 저는 갈 수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이동할 수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사람들과 만나도 자유롭게 갈 수 있던 곳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배우고 싶어도 갈 수 있는 학교와 일을 하고 싶어도 저를 받아주는 일할 공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또 20년 동안 거리에서 싸웠습니다.외쳤습니다. 정말로 간절하게 장애인들도 이 땅에서 함께 아주 보통의 날을 보낼 수 있도록 기본적인 권리들을 제도들을 만들어 달라고 외쳤습니다.투쟁을 하면서 저는 또 다른 세상을 꿈을 꿔봅니다.

더 이상 저 같은 장애인들이 또는 저와 함께하는 비장애 활동가들이 거리에서 싸우지 않고 투쟁하지 않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날들을 꿈꿔 봅니다."

박상혁

프레시안 박상혁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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