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영 변호사의 세상읽기]‘공익’이라는 말이면 다 된 걸까

행정에서 ‘공익’이라는 말은 대부분 설명의 출발점이 아니라 결론의 근거로 사용된다. 그 말이 등장하는 순간, 행정은 이미 도달한 결론을 전제한 채 움직이기 시작한다.

왜 그런 결론에 이르렀는지, 어떤 태도와 과정이 작동했는지는 뒷전으로 밀린다. 공익이라는 말로 설명과 검증을 덮어버릴 때, 남는 것은 결론뿐이다.

그러나 문제는 공익이라는 말 그 자체에 있지 않다. 문제는 행정이 그 말을 앞세워 결론을 먼저 세워 두고, 그에 이르는 태도와 과정을 무시하는 방식에 있다.

변호사로서 여러 행정 분쟁을 접하며 반복해서 확인하는 장면 역시 이 구조다. 공익이라는 말로 설명을 대신하고, 과정은 생략되며, 그 결론만이 당연한 선택처럼 제시된다.

공적인 행정의 출발점은 퍼블릭 마인드다.

이는 다수를 위한다는 선언이 아니라, 그 결론이 사회의 어떤 부분에 어떤 부담을 지우는지까지 함께 감당하겠다는 태도다. 특히 상대적으로 목소리가 작을 수밖에 없는 집단이나 지역이 존재하는 사안일수록, 행정은 더욱 많은 설명과 더 분명한 태도를 요구받아야 한다. 공익이라는 말은 바로 그 지점에서 가장 엄격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여기에 思無邪(사무사), 즉 자기 확신을 경계하는 태도가 결합되어야 한다. 공적인 일에서 가장 위험한 상태는, 확신이 검증을 대신하는 순간이다. 진실함과 성실함, 절실함은 공적인 행정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그러나 이 덕목들은 단독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퍼블릭 마인드와 思無邪, 그리고 선후·경중·완급의 판단 속에서 함께 작동할 때에만 의미를 갖는다.

공적 책임을 전제로 한 진실함은 설명을 요구하고, 성실함은 비판을 견디는 방식으로 드러나며, 절실함은 속도가 아니라 숙고의 깊이로 나타난다. 이 요소들이 결론 이후에 덧붙여지는 장식이 아니라, 결론에 이르기까지 작동해야 할 과정일 때 행정은 설득력을 가진다.

행정이 분쟁으로 이어지는 지점은 대부분 이 순서가 거꾸로 된 자리다. 결론이 먼저 정해지고, 그에 맞춰 논리가 배열되며, 절차는 형식으로 남는다. 이때 공익이라는 말은 행정의 책임을 무겁게 만드는 언어가 아니라, 책임을 덮는 언어로 기능한다.

공적인 행정은 퍼블릭 마인드와 思無邪를 바탕으로, 진실함·성실함·절실함이 선후·경중·완급의 판단으로 구현되는 과정이다.

공익이라는 말이 앞설수록, 행정이 무엇을 덮고 있는지부터 묻지 않으면 안 된다. 행정이 공익이라는 말을 앞세워 더 이상의 설명과 책임을 요구받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행동하는 순간, 신뢰는 무너진다.

신뢰는 결론이 아니라,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태도와 과정이 드러날 때 비로소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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