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그 자체보다 그 이름에 걸맞은 실체가 있느냐가 중요하다. 정치에서 개혁, 정의, 자유, 평화 등 얼마나 거창한 담론들이 즐비한가. 그러나 이 메가 이슈들은 실질과 부합할 때 비로소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공자는 <논어>에서 '명부정 즉언불순 언불순 즉사불성(名不正 則言不順 言不順 則事不成)'이라고 했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않고, 말이 순조롭지 않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만큼 이름이 중요하지만 그 이름은 그에 걸맞은 실체가 있을 때 이름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2020년 9월 미래통합당이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바꾼 지 5년 5개월 만에 국민의힘이 다시 간판을 바꿔 달기로 했다. 해방 이후 한국민주당이 보수 정당의 원류로 창당된 이후 명맥을 이은 자유당, 민주공화당, 민주정의당 등은 독재와 쿠데타로 집권한 원죄를 안은 정당들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의 합당으로 거대 정당 민주자유당(민자당)이 탄생했다. 민자당은 군사정권에 저항한 통일민주당을 통합함으로써 보수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면서 민주정의당이 갖는 쿠데타 세력의 흠결을 보완할 수 있었다.
진보 진영 역시 부단한 '헤쳐모여'로 수많은 정당들이 명멸했듯이 한국의 정당들은 진영에 관계없이 이합집산을 반복하면서 당명을 바꾸고 변화를 시도하며 정체성 확립을 모색했다.
1997년 이회창 총재는 당시 김영삼 정권의 집권당인 신한국당을 통합민주당과 합당하여 한나라당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한나라당은 '차떼기' 정당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져 회복 불능의 상태를 거쳤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레임덕 상황에서 2012년 보수 세력은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개정해 그해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했다.
이후 새누리당은 박근혜 탄핵의 후유증을 모면하고자 2016년 국정농단 사태와 탄핵 이후 당을 쇄신한다며 자유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러나 2017년 대선에서 패하고,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대구·경북을 제외한 모든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완패했다. 이후 2020년 2월 다시 미래통합당으로 당명을 바꿨으나 선거에서 연패하면서 2020년 9월 오늘의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변경했다.
국민의힘은 나름 선전했다. 2021년 서울시장·부산시장 재보궐선거에서 승리했고, 2022년 대선에서는 윤석열을 당선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대체로 정당명 변경은 정치세력의 연대나 합당 등 연합정치의 산물로서 이루어진다. 소수세력에 정치적 지분을 할애하고 통합정당 내에서 최소한의 주체성을 확립해 흡수 통합이라는 인식을 주지 않기 위해 이뤄지는 합당의 경우도 있고, 회복 불능의 정당이 지지율 만회를 위해 시도하기도 한다.
연합정치의 결과로서의 당명 개정을 비판적으로만 볼 이유는 없다. 정치에서 이합집산과 연대는 오히려 긍정적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고, 현실정치의 속성에서 자연스런 현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의 존립 근거가 흔들릴 때 시도하는 당명 개정은 스스로 환골탈태한다는 강력한 의지가 표현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내용의 변화는 도외시하고 순간의 위기를 모면코자 임기응변으로 행해질 때 문제가 생긴다. 국민의힘의 이번 당명 변경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내용의 질적 전환이 전제되지 않는 당명 변경은 중도층의 이반을 가속화할 수 있다. 정당의 지지율이 왜 정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지에 대한 진단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의 위기는 당 지도부가 자신의 세력을 착근시키려는 시대착오적 행보이고, 국민 일반의 인식과 역사의식의 부재에서 오는 원천적 문제다.
이러한 진단이 있다면 당의 위기에 대한 처방이 당명 개정일 수는 없다. 지난 7일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계엄 사과는 아무런 반향과 감동을 주지 못했다. 공감은커녕 국민의힘 강성우파 세력의 현주소를 다시 확인시킨 형국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나온 조치가 당명 개정 발표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제1야당에서 계속 벌어지고 있다. 7일 '사과' 이후 정점식 의원의 정책의장 임명, 조광한 전 남양주 시장의 지명직 최고위원 발탁 등에서 사과의 진정성을 발견할 수 없다. 강성 성향의 인사를 윤리위원장으로 임명하고, 극단 유튜버의 입당 등과 지난 7일의 사과는 수미(首尾)가 상관(相關)하지 않는다.
언제까지 국민의힘은 정치를 희화화하고 비상식으로 갈 것인가. 혹여 지방선거 대패 이후에 새로운 판을 짜려는 심모원려가 있는 것인지 범인(凡人)들로서는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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