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반도체 클린룸에서 일했다. 4년 째 항암 중이다"

[클린룸 안의 사람들] 오퍼레이터 유하나 이야기 ①오빠부대에서 문제사원, 다시 삼성 관리자로

반올림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을 지키기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입니다.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의 산재를 신청하면서 기록의 필요성을 절감해 생애사 기록을 시작했습니다. 아픔과 고통뿐 아니라 개인의 꿈과 행복에 대해 묻는 인터뷰를 했고, 재해경위서, 진술서가 아닌 삶을 담은 글을 적었습니다. 올 한 해 매월 한 명씩 총 12명의 삶을 구술기록으로 전해드립니다.

2025년 12월 23일 병점역 인근에서 유하나를 만났다. 하나는 이틀 뒤인 크리스마스,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입원을 한다고 했다.

이번 연도에 마지막 (항암). 따지고 보면 지금 거의 4년이니까 12번씩 한 45회? 40차 좀 넘었던 것 같아요. 생명의 연장선이기는 하지만 '그냥 한 달에 한 번씩 영양제 맞으러 간다.' 좋게 긍정적인 거 생각하고, '또 삶을 부여받았구나' 이렇게 생각해서. 받고 오면은 막 기진맥진하는데 그러고 나서 또 갈 때 되면 '괜찮나. 또 전이된 건 아닐까' 좀 그런 걱정에. 근데 항암하고 오면 '또 살았네.'

연예인 쫓아다니던 사서함 삐삐 시절

연예인을 엄청 좋아했어요. 제가 친구들이랑. 그때 아마 신성우, 서태지와 아이들 때였을 걸요. 중학교 때가. 그리고 제 기억에는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내한 공연하고 김원준. 그리고 그때 한창 틴틴파이브라고 그 개그맨들이 앨범 내가지고 했던 그 세대예요. 신동엽, 최양락, 이봉원. 그분들이 청소년들 불러다가 주말에 대결시켜가지고 춤 잘 추면 뽑는 오디션 같은 걸 해가지고 저희가 만날 카세트 테이프 같은 거 막 들고 다니면서 춤추고 그랬던 기억이 있고. 제가 가요 톱텐, 인기가요 50 뭐 이런 거 아니면 관제엽서에 라디오에 이런 걸 보내고. 음악 듣는 걸 되게 좋아했던 것 같아요. 라디오 공개 방송 좋아하고. 그게 이제 중3 때 절정이었고 고등학교 입학해서도 이어졌어요.

어떤 연예인이 공개홀 한다 그러면 그때는 우편 사서함이라고 전화로 스케줄을 이렇게 메시지에 남겨놔요. 사서함 삐삐 시절이라서 그 사서함 번호를 누르면 스케줄을 적고 따라다니는 거지. 그리고 그때 당시에 잡지책이나 노래 가사 책집에 연예인들 집 주소가 다 적혀져 있었어요. 그럼 거기에다가 편지를 주거나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인형을 보내든가. 근데 무슨 몇 월 호에 김원준 오빠가 집을 이사했어. 침대 머리맡에 쌓아져 있는 인형 중에 하나가 내 게 있는 거야. 표시가 나는. 그 잡지를 사기도 했었고 그랬던 것 같아요.

TV 방송국에 몇 월 며칠 공개홀에서 티켓 준다, 배부한다 그러면 MBC는 경비실이 있어요. 거기에서 쭉 줄을 서요. 그리고 KBS도 마찬가지로 거기에 이렇게 쌓아놔요. 그럼 이제 줄 서서 다 배급을 받고. 그리고 박수 부대 같은 거 만약에 간다 하면 선착순 이렇게 해가지고 거기도 줄 서서 들어가. 그러고 앉아서 1시간 반 정도 박수를 쳐요. 그러면 봉투 7천 원씩 줘. 그 돈으로 햄버거를 사 먹는다든지 하고. 시간이 좀 어정쩡해, 그럼 MBC 거기 식당 가서 쿠폰, 식권 사다가 밥 먹고. 기자나 뭐 이런 사람들이 인터뷰 한다고 기다리고 있으면 교복 입은 우리들한테 "무용단 있어. 너네도 해봐." "우리는 그런 거 안 해요." 괜히 튕기고 그랬던 기억이 있고.

▲포토 설비를 바라보는 현재의 유하나. ⓒ박정원

흘러 흘러 삼성으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도 입시할 때 내신 성적을 보잖아요. 그래서 그 점수대로 이렇게 가잖아. 고등학교를. 근데 인문계 갈 점수가 안 되는 거야. 공부를 너무 안 해가지고. 그러니까 공부를 했으면 어느 정도 30등, 40등이라도 했을 건데 공부를 너무 안 한 거야. 노느라고 바빠가지고. 진짜 학원도 안 다녔거든요. 엄마한테 학원 보내달라는 소리도 안 할 정도로 노는 게 너무 좋았어.

고등학교 때 2학년 때까지 그렇게 생활을 했고, 고3 때는 취업 면접을 봐야 되는데 그동안 공부한 게 없어가지고. 이제 공부를 쬐끔 하기 시작해요. 쬐끔 하기 시작하는데 운이 좋게 방배동에 있는 무슨 무역회사에 취직을 했고, 3개월 수습만 하고 다시 학교에 복귀를 해서 그냥 졸업을 하죠. 그리고 졸업하면서 친구 한 명이 이제 제도 샤프라고 해야 되나. 그때는 마이크로라고 해가지고 만년필이랑 이런 거 되게 유명한 문구 회사였거든요. 거기에서 1년 한 3개월인가 일했는데 퇴직금 없이 잘렸어요. 부도 나가지고.

삼성에 들어간 계기가 그때 당시에 IMF 시기였어요. 97년도가 IMF 사태 딱 터지는 그때인데 사원 추천이라는 게 있어요. 그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 지인의 딸이라든가 아니면 친척 동생이라든지 뭐 이렇게 해서 그 이력서 안에 추천인이라는 게 있어요. 그러면 어떤 부서에 인사과장 누구누구누구. 난 모르지. 왜냐하면 친구 따라 강남 갔으니까. 그래서 추천인에 그렇게 써줘서, 안 그랬으면은 실력으로는 이력서조차 쓸 수 없을 정도의 성적이었으니까. 공부를 안 했고. 근데 운이 좋게 사원 추천 제도에 그 해에 뽑힌 거예요. 그리고 IMF 때라서 많이 뽑았어. 인원을 2주에 200명씩 막 뽑았어요. 99년도까지 계속 뽑았던 것 같아.

문제의 신입사원 : 난 좋지. 일 안하니까

그때 21살 때 입사했을 때는 들어갔는데 되게 생소해. 영어도 겁나 많아. 시작부터 로딩, 언로딩 쓸 때도 스펠링으로 다 써야 돼. 배우는 게 그리고 회사가 재미없는 거야. 만날 낮에 놀러 다니는데 야간 근무하면 얼마나 졸겠어? 맨날 자는 거야. 얘가. 언니들이, 선배 언니들이 "쟤 뭐야. 다 전라도 이런 데서 왔는데 서울애라고 하는데 쟤는 뭔데 일도 안 하고 만날 졸아" 문제아였던 거야. 그 언니들은 용납이 안 되는 거야. 일을 해야 되는데 애가 졸고 있어. 앉아서 공부하라고 그러면 자고 있고, 일 시키면 실수하고. 말도 안 되게 실수를 하니까 만날 혼나는 거야. 막 그때 당시에는 복도에 서 있어. 만날 "너 오늘 하루 종일 일하지 마." 난 좋지. 일 안 하니까. 욕은 욕대로 먹고.

딴 데로 이제 유배를 당했지. 근데 그 언니는 너무 유한 거야. 그 언니는 책상에 앉으면 되게 느긋한 언니였고 마음의 여유가 있는 언니였어. 책자로 뭘 해. "언니 뭐해요?" 이러면 수화를 배우는 거야. 그래 갖고 "수화를 왜 배워요?" "그냥... 그냥, 그냥."

그러면서 "하나야. 너 나랑 같이 놀러 갈래?" 이렇게 해가지고 "어디에요?" 그랬더니 정동진을 가고 싶대. 그때 정동진이 이정재 무슨 드라마가 있었던 것 같아요. 둘이 갔어. 그 언니랑 둘이 전철 타고, 새벽에 눈 맞으면서. 그 기억이 아직도 있고, 그래서 거기서 한 유배 생활을 몇 년 했죠. 세정 설비 있는 데서 몇 년을 했지, 포토 설비에 있다가. 거기서부터 한 1년, 2년을 방황을 했죠. 근데 거기 가가지고 일을 너무 잘하는 거야. 이 언니가 너무 느긋하니까 내가 일을 안 할 수가 없는 거야. 막 튀어나오니까 그러면 다 담아. 땀 삐질삐질 흘리면서 해.

그때 이제 각성이 되고 제정신 차렸을 때는 일 욕심이 많았고. 그리고 책임감 있게 어쨌든 실적 그게 우선이니까. 그러다 보니까 고과도 6개월에 한 번씩 상반기, 하반기 평가를 한단 말이에요. 동료들의 시기를 받기 시작하지. 계속 받으니까. 그러니까 신입사원 때 망나니일 때 빼고는 계속 받았던 것 같아요. A든 B든 다 받았던 것 같고. 승격하는 그 해에는 딱딱딱딱 다 승격을 했다, 누락되지 않고 한 번도. 그래서 이제 과장까지 단 케이스인 거죠.

▲유하나와 동료 사원들. ⓒ반올림

아무런 준비 없는 퇴직, 그리고 6년 뒤 진단

아무것도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그냥 딱 그만뒀거든요. 그때 사람들 다 퇴직을 시킬 때여가지고 그래서 현타가 오는 거야. '내가 뭐라고 퇴사를 시키는 상담, 관리자라고 퇴사를 하는 상담만 하냐. 그건 아닌 것 같다. 나도 그만둬야 되겠다. 아픈 아이 키우면서 내가 뭐라고 왜 퇴직을 시켜야 되냐.' 나도 회사 생활을 하고 싶은데 막 현타가 오는 거야. 갑자기 그만두고 싶은 그게 딱 생기면서 진짜 그냥 그만뒀어요.

한 번도 기숙사나 집에서 청소라는 걸 해 본 적이 없는 거야. 설거지도. 회사, 집, 회사, 집, 자고 회사. 그것만. 결혼해서도 육아는 친정 엄마가 해줬으니까 그걸 반복하다 보니까 막상 퇴사를 하고 난 다음에 집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면 그냥 하면 되는데 아닌 거야.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은 거지. 그래서 한식을 배우게 됐던 거고, 양식도 배우게 됐고, 정리 정돈, 집 청소하는 방법도 배우고 했는데 배우다가 지친 거지.

계속 허리가 아프고 변비도 있고 근데 대수롭지 않은 평상시에 그냥 그런 걸로 생각했고, 주변인들이 병원 한번 가봐라고 했지만 어느 과에 뭐로 치료를 받아라라고 구체적이지 않고 "언니 아프면 병원 가" 이거였는데 그래도 병원 다 다녔지. 내과도 가고, 정형외과도 가고, 산부인과도 가고, 응급실도 가보고, 건강검진도 하고 했는데 다 발견을 못 했어.

근데 그 해에 '자궁경부암 6개월 됐으니까 진료를 받으세요'라는 문자를 받았고 산부인과를 갔는데 6개월 전에 받았는데 혹이 없었는데 혹이 생긴 거야. 야구공만한 그런 크기의. 그래서 좀 이상하다 해가지고 또 딱 이 시즌, 그래서 그럼 방학이 1월 3일이니까 그때 수술 날짜를 잡고 일주일 안에 수술 바로 해달라고 했어요. 근데 수술해서 제왕절개를 해서 한번 쨌는데 좀 안 좋았던 거지 상황이. 그래서 조직 검사를 했더니 난소암의 그게 아니었던 거예요. 다른 쪽에서 전이된 암 조직이었던 거예요. 이미 대장에서 난소로.

항암을 했는데 항암 딱 12번 끝나고, 3개월 차에 다시 검진하는데 항암을 계속 쭉 유지를 해야 될 것 같대. 알겠다고. 그래서 했는데 표적으로, 표적 항암으로 바꿉시다. 이렇게 해가지고 표적 항암으로 지금까지 계속 받고 있는 거죠. 방학 때마다 한 달씩 쉬고.

짧게 보았지만 하나의 성격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명랑함이었다. 공부는 뒤로 하고 심장의 소리를 따라 덕질을 하던 때부터 회사에 들어가 선배 언니들한테 혼나도 그다지 주눅들지 않고 '뭐 어때' 하고 넘기던 순간들. 퇴사와 홀로서기 역시 무겁고 슬프게가 아니라 명쾌하게 결정을 내리고, 심지어 암 진단을 받았을 때도 초긍정의 마인드로 울지도 않고 할 일을 찾았던 하나는 누구보다 재밌고 유쾌하게 살았고 할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다.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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