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가면 버블티? 순두부나 떡볶이 한국 음식의 전부는 아니다

[이웃 나라 타이완] 대만 가면 버블티 한 잔?

대만 거리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게 '인랴오디엔(飲料店)'이라고 불리는 음료 가판점이다. 대만의 음료 문화는 한국과 많이 다르다. 주로 밀크티처럼 차(茶)를 기반으로 한 음료나 망고 쥬스, 아보카도밀크 같은 과일 음료들이 중심이다. 아메리카노 커피를 파는 경우도 있지만 부차적이다. 커피 전문점에 녹차라떼 메뉴가 있는 것과 비슷하다. 통계로 봐도 대만에서 커피 소비량은 일인당 연간 180~200잔으로 한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포장도 다르다. 플라스틱 뚜껑을 사용하는 한국과는 다르게, 대만에선 종이컵을 얇은 필름으로 밀봉해서 준다. '빼이따이(杯袋)'라고 불리는 컵홀더에 차나 과일 음료를 담아 들고 다니는 모습이 대만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담긴 투명 플라스틱 컵을 직접 손으로 든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 종이컵을 편하게 들고 다니는 용도로 사용하는 '빼이따이(杯袋)' 대만 스타벅스에서 테이크아웃하면 일회용 빼이따이를 주기도 한다. ⓒFunPrint

미국에서는 다양한 매체에서 인기 있는 햄버거 체인점 순위를 발표한다. 그만큼 전 국민의 관심을 받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하게 대만에서는 음료 전문 유튜버들이 인랴오디엔 순위를 매긴다. 매년 새로운 브랜드가 생겼다가 사라지고, 갑자기 새로운 메뉴가 나와서 인기를 끌기도 한다. 기호에 따라 순위가 다양하겠지만, 가장 대표적인 브랜드를 몇 개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우스란(50嵐, 50 Lan)'은 대만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인 브랜드다. 단일 브랜드 매장 수 기준으로 대만 최대 규모의 음료 가판점이다. 가격이 저렴한 편이지만 맛과 품질이 잘 관리된다는 평가다. '마구차팡(麻古茶坊, Macu Tea)'은 과일 음료에 강점이 있는 브랜드다. 신선한 생과일을 아낌없이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제철 과일 슬러시나 스무디가 가장 인기 있는 메뉴다. '미케샤(迷客夏, Milksha)'는 자체 목장에서 생산하는 신선한 우유로 차별화한 브랜드다. 고구마나 밤처럼 고소한 맛이 나는 '유토우(芋頭)'라는 식물이 있다. 타로(Taro)라고도 불리는 토란의 일종으로 대만에서 즐겨 먹는다. '미케샤'에서는 '타로 밀크'나 신선한 우유를 사용한 밀크티 종류가 인기 있다.

▲ 대만 인랴오디엔(飲料店)에서 음료를 주문하는 모습. 최근 대만 경제부 발표에 따르면 대만에서는 연간 10억 8천만 잔의 차 음료가 판매된다. ⓒ필자

'커부커(可不可熟成紅茶, Kebuke)'와 '더정(得正, Oolong Tea Project)'은 좋은 찻잎으로 승부하는 브랜드다. 스타벅스가 원두 생산부터 로스팅까지 엄격한 품질 관리로 균일한 커피 맛을 유지하는 것처럼, 두 브랜드는 찻잎부터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차이가 있다면 '커부커'는 100% 발효차인 숙성 홍차(紅茶, black tea)가 중심이고, '더정'은 반발효차인 우롱차(烏龍茶, oolong tea)가 중심이라는 점이다. '커부커'가 한참 최고 인기였는데 최근 '더정'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의외로 한국에 진출해서 알려진 브랜드 '공차(貢茶)'는 대만에서 아주 인기 있는 브랜드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한국에 수많은 유명 식당들이 있지만, 대만에 진출해 가장 잘 알려진 브랜드는 의외로 '북창동순두부'다.

대만은 왜 이렇게 독특한 음료 문화를 갖게 됐을까? 가장 큰 이유는 뿌리 깊은 차(茶) 문화 때문일 것이다. 한국판 삼국지(三國志)는 돗자리 장수 유비가 늙은 어머니를 위해 차(茶)를 사서 돌아가다가 황건적을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중화권에서 차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켜도 문제없는 한국과는 달리, 중국 본토에선 물에 석회질이나 황토가 많다. 냉수를 마시는 건 쉽지 않고 끓여도 잡냄새가 난다. 그러다 보니 차를 일상적으로 마시는 문화가 뿌리 깊다. 지금도 대만 식당에서는 커다란 주전자에 차를 담아 내어주거나 아예 마실 물을 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 대만에서는 다구(茶具)를 갖추고 격식을 차린 다도(茶道) 문화도 발달했다. 사찰 중심으로 다도 문화의 명맥을 이어온 한국이나,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으로 전통문화의 위기를 겪은 중국 본토보다 훨씬 더 대중적이다. 물론 젊은 세대에겐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이에 더해 대만에서는 좋은 차들이 많이 난다. 아열대 기후와 산악 지형이 만난 덕분이다. 안개 많고 습윤한 타이완의 고산지대는 차나무 성장에 최적의 조건이다. 찻잎이 천천히 자라며 깊은 향과 부드러운 맛을 내는 고품질 차가 생산된다. 청나라 말기 타이완 산악 지대에서 생산되는 차가 인기를 끌면서 차 산업이 크게 성장했다. 당시 차를 수출하는 항구로 번성했던 타이베이 다다오청(大稻埕) 지역은 백 년이 넘은 화려한 건물들이 지금껏 남아 있다. 대만에서는 특히 신선한 녹차(綠茶)나 발효를 마친 홍차(紅茶)보다 30~70% 정도 발효된 반(半)발효차인 우롱차(烏龍茶)가 발달했다. '동방미인(東方美人)'이나 '철관음(鐵觀音)'같은 대만의 대표적인 우롱차들은 한국에서도 차를 좀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들어봤을 법한 명차(名茶)다.

▲ 대표적인 대만 우롱차인 철관음(鐵觀音). 은은하고 부드러운 단맛이 나는 반발효차다. ⓒ위키피디아

이런 차 문화의 전통이 현대적인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발전된 게 대만의 음료 문화다. 전통적인 차 문화를 대신해 다양한 테이크아웃 차(茶) 음료를 즐긴다. 음료 가판점들은 점점 다양한 응용 음료를 내놓기 시작했다. 마치 에스프레소를 팔던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 아이스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카푸치노 등 응용 음료가 늘어난 것과 비슷하다. 우유를 첨가한 밀크티를 시작으로, 80년대에는 타피오카 녹말을 구슬처럼 빚어 넣은 버블티가 개발됐다. 이 녹말 구슬을 중국어로는 진주를 뜻하는 '쩐쭈(珍珠)'라고 부르고, 영어로는 버블(bubble)이라고 부른다. 이후 버블 종류가 다양해지고, 흑당, 치즈 등 다양한 토핑으로 변주되기 시작했다. 대만에서는 건강 이슈도 있고 해서 버블티의 인기는 조금 시들한 분위기라고 한다. 커피숍들이 좋은 원두로 경쟁하는 것처럼, 찻잎의 품질로 경쟁하는 게 요즘 대만 음료 가판점 시장의 추세다.

다양하고 맛있는 과일이 풍부한 것도 대만 음료 문화에 큰 영향을 줬다. 전통시장에 가도 철마다 다양한 과일을 팔고 즉석에서 주스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과일 베이스의 음료에도 다양한 변주가 더해져 음료 가게 메뉴의 다른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나도 개인적으로 술을 전혀 마시지 않기 때문에 차나 커피 같은 기호 음료를 더 즐기는 편이다. 대만은 전반적으로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다. 사람들이 만나면 으레 술이 따르는 한국과는 전혀 다르다. 식당에서 반주(飯酒)를 즐기는 사람도 별로 없다. 사람이 사는 곳에는 당연히 술 마실 곳이 있어야 하는 한국과는 달리 대만에서 술집은 좀 더 전문적인 술꾼들을 위한 곳이다. 그러다 보니 대만에 온 한국 관광객들은 술 마실 곳을 찾기가 어렵다.

대만의 음료 문화는 아주 역동적이다. 지금의 순위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음료 가게는 큰 자본 없이도 창업할 수 있는 소규모 점포다. 대형 인기 체인점들 사이에서 새로운 메뉴와 디자인으로 창업한 독립 음료 가판점들이 생겼다가 사라진다. 그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한 가게가 대규모 프랜차이즈로 성장하기도 한다. 마치 대형 기획사와 소규모 기획사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K팝 아이돌 시장을 보는 것 같다.

대만을 방문하는 한국인 관광객들은 어김없이 버블티를 찾는다. 한국인들에게 '대만'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가 버블티다. 순두부나 떡볶이가 한국 음식의 전부가 아닌 것처럼, 버블티가 대만 음료의 전부는 아니다. 대만을 방문하는 동안 새로 유행하는 차(茶) 음료나 제철 과일 음료를 마셔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되리라 믿는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박범준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글쓰는 일을 하며 대전, 무주, 광양, 제주 등 전국을 떠돌았다. 제주도에서 바람도서관이라는 이름의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기도 했다. 2016년 첫 타이완 여행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2024년부터 타이완에 정착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