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을 수 있었다. 살릴 수 있었다. 밝힐 수 있다. 기억하라 12.29."
29일 오전 9시 1년 전 179명의 승객·승무원 등이 사망한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를 기념하는 추모식이 정부·지방자치단체 등의 공동 주최로 전남 무안공항에서 2시간가량 열렸다.
참사 발생 시각인 9시 3분, 광주·전남 전역에 1주기를 추모하는 사이렌이 울려 퍼지며 사전 행사가 시작됐다. 무안공항 내 추모식 참석자들도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1분간 고개 숙여 묵념했다. 이어 기독교, 불교, 천주교, 원불교 등 4대 종단이 차례대로 위령 의식을 올렸다.
이어 시작된 1주기 공식 추모식은 무안공항 2층 대합실에서 약 12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협의회, 국토교통부, 전라남도, 광주광역시, 무안군 등이 공동 주최했다.
유족 내빈석엔 2.18 대구지하철 참사, 4.16 세월호 참사, 6.9 광주학동 건물붕괴 참사, 7.19 공주사대부고 병영체험 참사, 10.29 이태원 참사, 10.30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가습기살균제 참사, 삼풍백화점 참사, 스텔라데이지호 참사, 1999년 씨랜드 화재 참사, 산재 피해자 유족 등 지난 30여 년 간 벌어졌던 사회적 참사 유족들이 함께 자리를 지켰다.
먼저 유족 대표 10명이 무대에 올라 설치된 179명의 위패 아래에 흰 국화를 헌화했다. 이어 정부 측 대표 8명, 국회 측 대표 10명, 광주·전남 지역 대표 9명 등이 차례대로 무대에 올라 국화를 올렸다.
이재명 대통령 "깊은 사죄… 조사 독립성 약속"
이재명 대통령은 녹화 영상으로 유족과 희생자에게 추모 인사를 올리며 사죄했다. 이 대통령은 "어떤 말로도 온전한 위로가 될 수 없음을 알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책무를 가진 대통령으로서, 깊은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고 했다.
이어 "이제는 형식적 약속과 공허한 말이 아닌, 실질적 변화와 행동이 필요하다"며 "정부는 항공철도사고 조사위의 독립성과 전문성 강화를 적극 뒷받침하고, 여객기 참사 원인 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유족 일상 회복을 최우선으로 삼아 심리, 의료, 법률, 생계 등 분야를 아우르는 종합 지원을 빠짐없이, 지속적으로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나아가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희생자 여러분을 기리는 최소한의 도리"라며 "책임져야 할 것은 분명하게 책임지는, 작은 위험일지라도 방치하거나 지나치지 않는, 모두가 안전한 나라를 반드시 만들어가겠다"고 밝히며 허리 숙여 인사했다.
추모식이 진행되는 1시간 내내 대합실 곳곳에선 통곡과 절규 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이 대통령의 영상 종료 후 무대에 오른 김유진 유가족협의회 대표도 발언 도중 새어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해 입술을 여러 번 꽉 깨었다.
그는 "1년 전 전원 사망이라는 자막 아래 우리의 삶은 완전히 무너졌다. 그 순간 우리는 가족을 살려달란 기도를 멈추고 손가락 하나라도 찾게 해달라고, 인간이 드릴 수 있는 가장 작고 낮은 기도를 드려야 했다"고 말하며 가장 크게 흐느꼈다.
김 대표는 "지난 1년의 기록은 참담하다"며 "정부 사과 0건, 자료 공개 0건, 책임자 구속 0건. 179명 희생 참사에 국가는 아직 단 한 번도 제대로 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유족이란 이름이 가슴에 낙인 찍힌 채, 2차 가해와 유언비어 속에서 속절없이 상처 받아야 했다"며 "우린 179분의 시신으로 첫 번째 장례를 치렀고, 179분의 시편(시신 조각)으로 두 번째 장례를, 그리고 지난 1년 동안 고통을 미처 감당해 내지 못한 유족 네 분의 3번째 장례를 치르고 있다. 이 장례 행렬을 반드시 멈춰 세워야 한다"고 밝혔다.
유족들은 책임 부처인 국토교통부 산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가 참사 조사를 하는 것을 것을 두고 "'셀프조사'를 멈추라"며 지난 1년 간 싸워 왔다. 그 결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지난 10일 사고조사위를 국무총리 소속으로 이관하는 항공철도사고조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지난 18일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해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뒀다. 국회 국정조사 특위도 지난 22일에야 구성됐다.
김 대표는 "앞으로 진행될 국정조사가 자료 공개의 시작이 되고, 올바른 조사로 전환되는 분명한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며 "유족이 바라는 건 특별한 대우가 아니다. 은폐 없는 조사, 배제 없는 참여, 예외 없는 책임, 그리고 다시는 이런 참사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국가의 최소한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오늘 이 자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179분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진실이 끝내 밝혀지고 책임이 반드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유족은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어 상영된 추모 영상에서 유족들은 "막을 수 있었고, 살릴 수 있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특히 조류 충돌이나 콘크리트로 건설된 둔덕 등을 가리키며 "만약 그때 제대로 점검하고 계산했다면, 막을 수 있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회 대표로 무대에 올라 유족에게 독립적이고 투명한 사고조사를 약속했다. 우 의장은 "정부와 관계기관에 분명히 요구한다. 국회 진상조사에 필요한 자료가 빠짐없이 제출돼야 한다"며 "자료제출을 미루거나 회피하는 일이 없도록, 국회는 국회의 책임과 권한을 다 하겠다"고 다짐했다.
우 의장은 또 "피해자의 알 권리가 가로막혀선 안 되고, 명예훼손이 방치 돼선 안된다"며 "아직 이 모든 게 부족하지만, 피해자 권리가 제도적, 문화적으로 보호되도록 힘쓰겠다"고 밝혔다. 나아가 "(참사 후) 공항시설 안전기준, 조류대응체계 등이 강화됐으나, 아직 살펴야 할 과제는 많고, 끊임없이 점검받고, 개선돼야 한다"며 "무엇보다 생명·안전은 결단이다. 179명 생명이 억울한 죽음의 희생에 머물지 않도록 국회의 일을 반드시 해나가겠다"고 약속했다.
마지막 추모 공연이 연달아 열리면서, 공항 내 통곡과 절규 소리는 한층 커졌다. 공연은 1년 전 12월 29일의 입국 과정을 재구성했다. 공연자 6명은 179명의 이름이 호명될 때 그들의 항공권을 바닥 위에 차례대로 놓았다. 그러는 동안 무대 화면에선 항공기 기장의 음성과 희생자와 유족의 카카오톡 대화 장면이 흘러나왔다. 희생자의 항공권엔 10개의 약속 중 한 구절이 함께 적혔다.
하나, 모든 사람은 집으로 돌아올 권리가 있습니다.
둘, 이 티켓은 '당연해야 할 것'을 요구하는 우리의 목소리입니다.
셋, 사람의 생명은 안전한 귀가에서 완성됩니다.
넷, 떠난 곳으로, 반드시 다시 돌아올 수 있어야 합니다.
다섯, 누군가의 마지막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진실을 밝히고 변화를 만들 것입니다.
여섯, 1229 티켓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다시는'을 향한 우리의 서명입니다.
일곱, 누군가의 기다림이 영원한 기다림이 되지 않도록.
여덟, 돌아오지 못한 179명을 기억하며, 모든 국민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약속입니다.
아홉, 다시는 누구의 귀가가 멈추지 않도록, 집으로 돌아올 권리는 모두에게.
열, 우리 모두는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올 권리가 있습니다.
10개의 약속이 영상에서 낭독되던 중 곳곳에서 울음소리가 더 거세게 터져 나왔다. 공연자들은 공연 종료 전, 179명 유족의 편지가 든 투명 상자를 김유진 유족 대표에게 건넸다. 이어 가수 이은미 씨가 무대에 올라와 '기억 속으로'와 '헤어지는 중입니다' 노래 두 곡을 추모의 뜻으로 불렀다.
추모식은 김유진 대표가 김민석 국무총리에게 투명 상자를 전달하면서 끝났다. 투명 상자엔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바라는 유족 179명의 염원이 적힌 편지가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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