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KTX 통합…코레일이 "철도 독점" 했다고 말하던 국토부

[달리는 기차에서 본 세상] 철도 성장을 가로막은 대못을 뽑아내다

지난 12월 8일 국토교통부는 고속철도 통합을 발표했다. 이로써 한국철도의 성장을 가로막았던 대못 하나가 뽑히게 되었다. 2012년 이명박 정권의 수서발 고속철도 민영화 추진과 2013년 박근혜 정권의 SR 추진 과정부터 철도경쟁체제의 문제를 비판해 온 필자로서는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이다.

2013년 수서고속철도 설립과 2016년 SR 개통 당시 언론마다 앞다투어 장식했던 헤드라인이 씁쓸하게 떠오른다. "드디어 110년 철도 독점 깨진다" 국토부의 보도자료를 그대로 옮긴 기사들은 독점의 단 열매를 빨아먹으며 무능과 무사안일에 빠진 코레일 단일 체제에서 경쟁체제로 도약해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열리게 되었다며 환영했다.

한국철도의 110년은 철도청이나 코레일이 독점에 안주하며 기생했던 시간이 아니었다. 식민지와 분단, 전쟁과 가난의 시절을 관통하며 민초들의 발이 되어 달린 시간이었다. 도로교통의 발달로 철도 수송분담률이 떨어지고 수익이 악화된 것은 한국철도만이 아니라 세계철도가 공통적으로 겪었던 문제였다.

고속철도의 등장으로 철도의 재발견이 이루어지고 기후 위기로 철도의 환경적, 생태적 효율성이 높아지면서 철도 르네상스가 열리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철도의 사회적, 산업적 특성을 고려하여 새로운 발전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부상했다. 그러나 국토부를 장악했던 신자유주의 키드들은 민영화와 경쟁체제를 한국철도가 도달해야 할 이상향으로 설정했다.

경쟁체제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독점"이라는 사회적 악평을 한국철도의 머리 위에 굴레 씌었다. 당연히 독점 운영기관 코레일에 대한 악마화도 진행되었다. 철도가 산업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자연독점성, 네트워크 기반 시스템에서 통합적 운영이 가져오는 효울성 같은 것들은 무시되었다.

철도에서 자행된 경쟁체제는 진짜 경쟁도 아니었다. 경쟁을 이루는 기본원리인 선택을 통한 배제라는 경제행위가 작동할 수 없는 구조였다. 부산이나 목포에서 서울 서부 지역으로 이동하는 이용자가 수서행 열차를 타는 일은 없으며 서울 강남 강동구 지역으로 이동하는 승객이 서울역행을 이용할 일도 없다. SR은 서울과 수도권 동남부지역을 수용하는 또 하나의 독점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경쟁체제를 신봉한 이들은 간접 경쟁 효과니 하는 궁색한 논리로 고속철도 분리체제를 옹호했다.

▲정부가 고속철도인 KTX와 SRT의 단계적 통합을 내년 말까지 추진한다. 내년 3월부터는 서울역에 SRT를, 수서역에 KTX를 투입하는 KTX·SRT 교차 운행을 시작한다. 하반기부터는 KTX와 SRT를 구분하지 않고 열차를 연결해 운행하며 통합 편성·운영에 나선다. 계획대로 통합이 이뤄질 경우 코레일과 SR은 2013년 12월 분리된 이후 약 13년 만에, 고속철도는 SRT가 2016년 12월 운행을 시작한 이래 10년 만에 합쳐지게 된다. 8일 서울 강남구 수서역 SRT 승강장에 열차가 정차해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경쟁체제로 인해 국민들이 얻은 이익은 무엇일까?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질 않는다. 회사 분리로 인해 열차 이용 앱을 코레일과 SR따로 깔아야 한다. SR고속열차와 코레일 일반 열차는 환승 할인도 안된다. SR개통 후 9년 가까이 포항, 여수, 진주, 순천 등 지역에서는 수서로 가는 고속열차를 이용할 수 없었다. 고속철도와 일반철도의 효과적인 연계와 교차보조의 길도 대폭 줄었다. 네트워크 산업을 인위적으로 쪼갤 때 발생하는 가장 나쁜 현상을 구현한 것이었다.

고속철도 통합 소식이 알려지자 일부 언론에서는 통합을 비판하면서 SR이 고품질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경쟁체제를 도입할 당시 국토부는 고속철도 서비스가 경쟁을 통해 획기적으로 나아질 것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이들이 주장하는 좋은 서비스는 무엇이었을까? SR 개통 초기에는 전 좌석 모바일 기기 충전단자 설치가, 현재에는 중소기업과 연계한 굿즈 판매와 수서역에 로봇 카페를 열어 새벽과 심야에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한다는 것 등으로 SR이 독자적으로 개발했다는 서비스는 수십 가지가 넘는다. 2004년 달리기 시작한 KTX 초기 도입 차량에는 모바일용 충전단자가 없었다. 20년전 스마트기기가 일반화되기 전에 도입한 차량이었기 때문이었다. 현재는 모든 KTX차량에 충전단자가 설치되어 있는데 사회적 요구에 따른 것으로 특화된 서비스 제공이라고 볼 수 없다. 그 외에 SR이 개발했다는 획기적 서비스들은 승객들의 열차 이용에 본질적인 기여를 했을까?

철도 서비스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안전하고 편리한 이용이다. 이런 면에서 한국철도는 낙제점을 면할 수 없다. 고속열차나 일반열차 할 것 없이 좌석표를 구할 수 없어 승객들이 통로석을 가득 채우는 현실이다. 짐짝처럼 서서 이동하는 승객에게 제공되는 고품질 서비스란 무엇일까? 충분한 좌석 공급 없이 외치는 서비스는 공허할 수밖에 없다. 고속철도 통합을 통해 하루 1만6000석의 좌석 공급을 늘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달이면 48만 석이 넘고 1년이면 580만에 달하는 좌석이다. 연간 580만 명을 통로석에 밀어넣거나 탑승을 못하게 하면서 얻는 서비스 효과란 도대체 무엇인가?

입만 열면 국민 편익을 말했던 국토부였다. 수백만 명의 승객들에게 고통을 감수하게 하면서 얻는 경쟁체제의 정책적 효과나 이득이 무엇이었는가? 철도의 성장을 통해 국민 편익을 확대하는 일이 철도 주무 부처에게 주어진 역할이다. 그러나 그동안의 철도 정책은 국민 우선이 아닌 관료 중심의 그들만의 리그 속에 펼쳐진 탁상행정이었다. 이제라도 철도의 올바른 성장과 발전을 위한 정상 궤도로 올라온 것은 천만다행이다. 고속철도 통합은 국민 철도를 위한 첫 단추일 뿐이다. 산적한 철도산업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그 기준은 바로 국민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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