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와 '다른' 재난 대응 시작할 수 있게…생명안전기본법 제정해야

[생명안전기본법 연속기고] ⑤ 생명안전기본법이 필요한 이유

생명안전기본법은 유가족과 시민의 바람입니다.

세월호참사 이후 유가족과 시민들은 생명과 안전이 지켜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싸워왔습니다. 많은 재난참사의 교훈과 경험을 토대로 생명안전기본법이 발의됐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논의 중입니다. 안전권이 보장되고, 피해자의 권리가 보호되며, 안전영향 평가를 통해 위험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하고, 재난이 발생했을 때 독립적인 진상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법입니다. 안전에 대한 국가의 책무, 안전 약자에 대한 특별한 보호와 생명안전종합계획 등에 대해서도 담고 있습니다. 이 법의 통과를 바라며 재난참사 유가족과, 유가족을 지원하는 법률가들이 생명안전기본법에 대한 연속기고를 합니다. -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위한 시민동행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생명안전기본법'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법이 처음 발의된 5년 전에 만들어지지 못한 아쉬움은 남습니다. 이 법이 2020년에 만들어졌다면, 이태원참사 유가족이 특별법을 만들기 위해 폭우 속에서 국회까지 삼보일배를 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아리셀 유가족이 폭우 속에 영정사진을 들고 행진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같은 해 오송참사 유가족이 눈물 속에서 행진을 하는 일도 없었을 텐데,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이 항공철도조사위원회의 공청회를 막기 위해 추운 겨울 노숙농성을 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듭니다. 이제라도 이 법이 잘 만들어지기를 바랍니다.

1. 왜 '생명안전기본법'이 필요한가?

기후위기의 시대입니다. 폭우와 산불, 가뭄, 감염병 등 재난의 징후가 높아집니다. 사회는 복잡해지고 어디에서 어떻게 위험이 발생할지 알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위험을 방지하고, 시민들의 의사를 반영하여 안전에 대한 대비책을 세우며, 지난 참사를 제대로 분석하여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고, 발생한 재난에서는 신속하고 인권적으로 수습하고, 언제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시민들에 대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이 정부가 해야 할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런데 기존의 '재난 및 안전 관리 기본법'(이하 '재난안전법')이나 '재해구호법' 등은 그런 과제를 제대로 담을 수 없습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은 기본법으로 이름붙였지만 그 내용은 재난 발생 때 정부의 역할을 담은 실행법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실행 과정에서 인권적이고 피해자 중심적인 가치를 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이 '기본법'을 제정하자는 것입니다. '생명안전기본법'은 갑자기 만들어진 법이 아닙니다. 2014년 세월호참사 이후 여러 참사에 대한 반성과 교훈을 담아서 피해자들과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국회가 함께 고민하고 논의하여 만든 법입니다.

2. '안전사고' 개념과 '권리 주체'를 넓히는 이유

'생명안전기본법'의 기본이념은 "안전사고의 예방·대비·대응·복구의 과정에서 모든 사람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고 그 기본적 권리를 차별 없이 보장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안전기본법'에서 다루는 '안전사고' 개념은 넓어야 합니다. "사람의 생명. 신체 및 재산에 피해를 주거나 줄 수 있는 사고"라는 개념이 너무 넓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재난안전법' 등, 재난과 안전 관련 법률 혹은 시행령에는 각 법이 대상으로 하는 '안전사고' 등이 구체적으로 담겨있습니다. 기본법으로서 생명안전기본법에서는 '안전사고'의 개념을 좁혀서는 안될 것입니다.

또한 이 법의 권리 주체는 '국민'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국가데이터처는 2024년 이주배경인구가 총인구의 5.2%라고 발표했습니다. 이미 많은 이주민이 한국에서 일하거나 생활하고 있습니다. 아리셀참사는 희생자 23명 중 18명이 중국 국적 노동자였습니다. 10.29이태원참사에서도 26명의 희생자가 외국인이었습니다. 재난과 참사는 국적을 가리지 않습니다. 이주민이라도 피해자의 권리를 동등하게 보장해야 하고, 이주민이 많이 일하는 업종도 안전을 위한 예방에 철저해야 합니다. 생명과 안전에 있어서는 국적을 넘어 '사람'을 권리 주체로 해야 할 것입니다.

3. 왜 피해자의 권리가 필요한가?

'모든 사람이 안전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 권리를 침해당한 사람, 즉 재난참사 피해자에게는 그 피해를 회복할 권리가 주어져야 합니다. 우리사회는 세월호참사 이후 피해자가 온전하게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해왔고, 그것이 '피해자의 권리'로 구체화되었습니다. 피해자의 정의가 생존자나 유가족만이 아니라, 구조에 참여한 사람이나 지역주민, 목격자, 그밖에 피해를 입어 회복이 필요한 사람으로 확대된 것도 그 동안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축적된 경험이 '생명안전기본법'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피해자의 회복을 위해 여러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대다수 시민이 동의하지만, '사고원인조사에 참여할 권리'는 쟁점이 되곤 합니다. 그런데 피해자가 사고원인조사에 참여하게 될 경우 참사의 원인에 대해 계속 질문함으로써 구조적인 원인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고, 조사에 대한 인권적 관점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피해자의 원인조사 참여 방법은 다양할 것입니다. 직접 참여에서부터, 위원이나 조사관 추천, 혹은 조사과제를 제안하는 것, 혹은 회의 참관 등 참여의 수위는 다를 수 있지만 '참여의 권리'는 그 자체로 중요합니다.

4. 왜 '독립적인 조사기구'가 필요한가?

재난참사의 원인찾기는 '수사'에 주로 의존해왔습니다. '수사'는 법 위반 사실을 찾아내 처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이제는 '누구의 책임인지'만이 아니라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조사'가 필요합니다. 피해자들도 참사의 원인을 알고자 애씁니다. 그런데 제대로 원인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거리로 나와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나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만들어지기까지 많은 유가족이 거리에서 싸워야 했습니다. 상설적인 재난 원인 조사 기구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재난안전법' 제 69조에 따라 재난원인조사가 진행되기도 했으나, 2014년부터 2023년까지 '사망자가 5명 이상 발생한 재난' 86건 중 23건만 조사가 진행되었고, 제주항공 무한공항 참사의 경우 국토부 산하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조사에 대해 유가족이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독립 조사기구는 상시 인력이 담보되는 상설기구여야 합니다. 그래서 독립적인 재난참사 진상조사 기구가 필요합니다. 이 재난조사기구 구성원들은 대형화된 복잡 재난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 그리고 인권감수성을 갖춰야 하며, 조사에 대한 전문성도 필요합니다. 일상적인 교육과 훈련, 연구를 통해 조사위원회의 전문성을 갖춰야 합니다. 또한 조사결과에 대한 책임있는 이행이 담보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5. 왜 '안전영향평가'가 필요한가?

안전 규제가 완화되면 그만큼 위험이 커집니다. 노후선박 사용연한 완화 등의 규제 완화가 세월호참사의 한 원인으로 지적되었고, 지역축제 안전관리기준을 완화한 것이 2014년 판교 환풍구참사를 불러왔다는 점이 드러났습니다. 정부가 법령을 제·개정하거나, 사업을 하는데 있어서 이전까지는 안전이 중요한 고려 요소는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법령(법률,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및 조례, 규칙)과 '안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계획 및 사업'이 점검되어야 할 필요성이 높아졌습니다.

정부는 제주항공 무안공항 참사가 있고 나서야 '공항 건설 시 조류충돌 위험 평가'를 하도록 지침을 개정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고가 난 이후에 지침을 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안전영향평가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6. 왜 안전약자에 대한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가?

'생명안전기본법'에는 안전약자에 대한 특별한 보호가 담겨있습니다. 위험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습니다. 산불은 농촌마을에 더 위험하고, 폭우는 반지하방에 사는 이들의 삶을 위협합니다. 장애인과 노인들은 긴급한 상황에서 대피가 어렵고, 감염병 상황에서는 노인들에게 위험이 증폭됩니다. 재난문자는 모두에게 도달하지만 이주민들은 그 문자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안전사고에 취약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정의함으로써 안전약자에 대한 재난 대응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야 합니다.

안전약자에 대한 특별한 보호는 재난의 예방, 대비, 대응, 복구의 전 과정에서 일관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안전약자의 입장에서 볼 때 안전할 수 있어야 사회 전체가 안정해질 수 있습니다. 일상적으로 예방을 위한 시스템도 가동되어야 하겠지만 재난상황에서 안전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일상적 훈련도 해야 할 것입니다.

7. 맺음말

2014년 세월호참사 이후 재난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 사회는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피해자와 유가족은 수사 결과를 불신할 수밖에 없었고, 독립적인 조사를 위해 거리에 나와 싸워야 했습니다. 피해자에 대한 악의적인 모욕이 난무하기도 했고, 진상조사 요구가 정치적인 것으로 치부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더 위험해졌습니다. 물론 예방을 잘한다고 해도 재난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난 참사의 경험으로부터 잘 배워 예방에 힘쓰고 피해자의 회복을 위해 노력한다면 재난을 줄일 수 있고, 그 재난이 참사로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이 재난에 대해 우리 사회가 인권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출발점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기본법을 제정한다고 해서 당장 획기적으로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재난대응을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생명안전기본법'이 신속하게 통과될 수 있도록, 재난 피해자들의 바람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시민들도 힘써 주시기를 요청드립니다.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참사 유가족협의회가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진상규명 촉구 촛불문화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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