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권리 짓밟은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 조사, 생명안전기본법 있었다면…

[생명안전기본법 연속기고] ④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와 생명안전기본법

생명안전기본법은 유가족과 시민의 바람입니다.

세월호참사 이후 유가족과 시민들은 생명과 안전이 지켜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싸워왔습니다. 많은 재난참사의 교훈과 경험을 토대로 생명안전기본법이 발의됐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논의 중입니다. 안전권이 보장되고, 피해자의 권리가 보호되며, 안전영향 평가를 통해 위험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하고, 재난이 발생했을 때 독립적인 진상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법입니다. 안전에 대한 국가의 책무, 안전 약자에 대한 특별한 보호와 생명안전종합계획 등에 대해서도 담고 있습니다. 이 법의 통과를 바라며 재난참사 유가족과, 유가족을 지원하는 법률가들이 생명안전기본법에 대한 연속기고를 합니다. -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위한 시민동행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현안들

2024년 12월 29일, 대한민국 항공 역사상 최악의 참사가 발생했다. 태국 방콕에서 무안국제공항으로 향하던 제주항공 2216편이 착륙 과정에서 활주로를 이탈하여 로컬라이저가 설치된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과 충돌했고, 탑승자 181명 중 179명이 사망하는 참극이 벌어진 것이다.

참사의 원인으로는 공항의 조류 관리 미흡, 기체 결함, 정비 과실, 인적 과실, 관제 대응의 부적절성, 활주로 말단의 로컬라이저 둔덕 문제 등 복합적인 요인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참사 발생 후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진상규명은 요원하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등 기존 참사와 양상은 다를지언정, 진상규명 과정에서 드러나는 국가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는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진상규명이 진척되지 않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독립성 문제이다. 공항 시설의 관리·감독 주체인 국토교통부가 조사 대상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국토교통부 소속 기관이다. '감독기관이 피감기관을 조사'하는 구조적 이해 상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독립성 문제로 국토교통부 출신 위원장이 사임하고, 항공정책실장은 업무에서 제외되었다. 조사기관이 피조사기관에 종속된 구조에서는 조사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

둘째, 유가족의 알 권리 침해 문제이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블랙박스 원본 데이터, 관제탑 교신 기록 등 핵심 자료를 공개하지 않은 채 일방적인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12·29 여객기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이 유가족의 정보 접근권을 명시하고 있음에도,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국제민간항공협약 부속서 등을 이유로 정보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셋째, 부실한 조사 역량과 지연된 안전 권고 문제이다. 참사 당시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조사 인력은 9명에 불과했으며, 사고 발생 후 10개월이 지나서야 안전권고가 발령되었다. 그마저도 사고의 직접적 원인으로 지목된 콘크리트 둔덕에 대해 명확한 조치를 권고하지 않고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여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했다.

이 사건 참사에서 생명안전기본법이 필요했던 이유

만약 생명안전기본법이 시행 중이었다면, 이 사건 참사의 진상규명과 피해자 지원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참사 발생일로부터 1년간 아무런 진상이 밝혀지지 못한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첫째, '독립적 조사기구'에서 조사가 이루어진다. 생명안전기본법안 제18조는 국가가 안전사고의 원인과 대응 과정의 적절성을 규명하기 위해 독립적인 조사기구를 설치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 국토교통부 등 이해관계가 얽힌 부처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기구가 조사를 맡았다면, '셀프 조사' 논란은 원천적으로 차단되었을 것이다.

둘째, '피해자의 알 권리와 참여권'이 보장된다. 생명안전기본법안 제5조는 피해자가 예방·대비·대응·복구 전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공청회 일정과 내용에 대해 유가족과 전혀 협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사전 정보 공개 없이 형식적인 공청회를 강행하려 했으며, 유가족 추천 전문가의 질의 시간은 고작 15분에 불과했다. 심지어 사고 잔해 보관소 현장에서 유가족의 사진 촬영조차 금지하는 일이 벌어졌다.

또한 생명안전기본법안 제17조는 피해자가 안전사고에 관한 정보 제공을 요청할 수 있으며,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그 요청에 따라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유가족의 자료 공개 요구를 지속적으로 거부했다. 블랙박스 원본 데이터, 관제탑 교신 기록 등 핵심 자료의 공개는 조사 결과의 신빙성을 담보하기 위해 필수적임에도, 위원회는 비공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생명안전기본법이 시행 중이었다면 피해자의 알 권리와 참여권이 보장되어 전문적이고 공정한 진상규명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셋째, 피해자의 권리가 체계적으로 보장된다. 생명안전기본법안 제5조는 신속하고 적절한 구조를 받을 권리,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 차별받지 않고 혐오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진실에 대한 권리, 책임 있는 주체에 대한 제재를 요구할 권리, 배상 및 보상을 받을 권리, 기억과 추모의 권리, 재발방지대책 수립 과정에 참여할 권리 등을 구체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현재 재난 피해자들은 개별 특별법에 의존해야 하고, 그 특별법마저도 참사가 발생한 후에야 비로소 제정된다. 이 사건 참사도 ‘12·29 여객기 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된 후에야 피해자의 권리가 다소나마 보장되었으나, 해당 특별법에는 '진상규명'에 관한 구체적 규정이 누락되어 있다. 생명안전기본법이 시행 중이었다면, 유가족이 참사 1년이 지난 현재까지 특별법에 '진상규명' 규정을 요구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망설이는 이들에게

이 사건 참사에서도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등에서 발생한 문제가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독립적이지 못한 조사기구, 신뢰받지 못하는 조사 결과 발표, 유가족의 알 권리를 짓밟는 행정의 문제이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이것이 마지막이어야 한다"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참사는 계속되었고,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우리는 특별법을 만들고,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비극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생명안전기본법은 그 근본적인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법이다. 안전권을 기본권으로 선언하고, 피해자의 권리를 체계적으로 보장하며, 독립적인 조사기구를 설치하고, 국가의 책무를 명확히 하는 법이다. 이 법이 있었다면 유가족들은 정보를 얻기 위해 처절하게 싸우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독립적인 조사기구가 국토교통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진실을 규명했을 것이다. 참사 발생일로부터 1년 간 아무런 진상이 밝혀지지 않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법 하나로 모든 재난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법이 없으면 재난 이후의 혼란과 고통은 배가 된다. 피해자들은 권리의 근거를 찾지 못해 헤매게 되고, 조사기구는 독립성을 담보받지 못해 신뢰를 잃게 된다. 생명안전기본법의 제정이야말로 유사한 비극의 재발을 막고 더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더 이상의 망설임으로 생명안전기본법 통과를 지연시켜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7일째인 지난 1월 14일 오전 전남 무안국제공항 사고 현장에서 수습 당국 관계자들이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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