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생존자들의 눈에는 윤석열이 '전두환의 재림'으로 보였다

[프레시안 books] 정찬영 <당신의 상처는 사적이지 않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저지른 12·3 비상계엄 이후 '내란성 불면', '내란성 스트레스' 등의 병명을 호소하는 시민들의 증언이 온라인에 쏟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정치 권력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가 낮다지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총칼로 권력을 독점하려는 시도가 벌어지리라고, 쿠데타 세력을 진압하는 데 이렇게 큰 노고가 필요할 것이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계엄을 처음 겪은 시민들의 경험이 '스트레스', '울분', '불면' 등으로 설명된다면, 45년 전 비상계엄을 겪어 본 시민들에게는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트라우마'로 설명된다. 17세 나이에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해 사망한 고등학생이자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인 고(故) 문재학 씨의 어머니 김길자 씨는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이 느닷없이 TV에 나와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떠들잖아요. 날벼락이었어요. 아들의 희생으로 어떻게 만든 민주주의인데, 머리 끝까지 화가 나고 손이 떨렸어요. 대통령이랑 계엄군이 나오는 텔레비전을 나도 모르게 지팡이로 몇 번이나 내려칠 뻔했어요. 장갑차가 도로에 나오고 헬기에서 내린 군인들이 국회 건물로 들어가는 장면을 보다 보니 가슴이 방망이질 쳤어요.

5·18이 다시 일어난 것만 같았어요. 계엄이라고만 하면 그날(5월 27일)이 아침이 생각나요. 오메! 도청 앞에서 사람 다 죽여놓고 즈그가 승리했다고 군홧발 쾅쾅 울리면서 군가 부르던 기억이 떠올라요."

또 다른 5·18 생존자 박유덕 씨도 과거의 경험이 떠오르기는 마찬가지였다. 박 씨의 눈에 윤 전 대통령은 전두환과 겹쳐 보였다.

"뉴스 보면 5·18 때 남편 잡아 가두고 고문하고, 나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고 윽박지르고, 그런 기억이 필름같이 떠올라요. 끝끝내 잘했다고 하는 것이 전두환하고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 잘 모르겠어요. 탄핵이 될까요. 그 사람 잡아다가 가둬만 놔도 마음이 놓일 것 같아요. 관저에 있으면서 끝끝내 조사도 안 받고 버티니 불안해서 죽겠어요. 탄핵이 돼야재. 안 되면 어쩌까요. 국민들이 피 흘릴까 봐 조마조마해요."

5·18 당시 오빠를 찾으러 시내에 나섰다가 귀가하던 버스에 가해진 총격으로 승객 열여덟 명 중 유일하게 생존한 홍금숙 씨도 지지부진한 탄핵 과정에 울분을 터뜨렸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윤석열이 풀려나니 성질 나서 한숨도 못 자겠어요. 적혈구, 백혈구 수치가 낮아서 저 스트레스 받으면 안 된다고 해요. 뉴스를 안 봐야 하는데 안 볼 수가 없어요. 국민들에게 사과 없이 자기 지지자들만 챙기잖아요. 다른 국민들은 뭐예요. 전두환과 다를 바 없어요. 저는 윤석열을 사형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풀어준 검찰은 한통속이죠. 국민들을 갖고 노는 거예요."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서울 한남동 관저 앞에 도착, 차량에서 내려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헌정질서 파괴의 수장이 윤 전 대통령이라면, 선봉장은 극우집회를 이끈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라고 말할 수 있다. 전 목사는 1월 18일 광화문 집회에서 오늘 내로 윤석열 대통령을 찾아와야 한다고 했으며, 시위 행렬이 모인 서부지법 앞에서 판사가 영장을 기각하면 서울구치소에 가서 대통령을 모시고 나와야 한다고 했다. 다음 날인 19일 발생한 서부지법 폭동의 핵심 피의자 중에는 사랑제일교회 특임전도사 두 명이 포함돼 있었다.

평생 누구한테 소리 한 번 지르지 않고 살아온 박유덕 씨는 어느 날 서울 집회에 갔다가 광화문에서 마주친 전 목사에게 생전 처음 악을 질렀다. 전 목사는 수차례 5·18 북한군 개입설 등을 주장하고 기독교를 욕되게 하는 발언을 해 기독교 신자인 박 씨를 분노케 했다.

"목사가 되어 갖고! 니가 하나님이여? 니가 하나님이여?!"

윤석열과 전광훈은 왜 권력 독점을 위해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시민들을 해치는 일에 거리낌 없었을까. 또 극우세력은 왜 이들의 손과 발이 돼 줬을까.

앞서 소개한 5·18 생존자들을 인터뷰했던 <당신의 상처는 사적이지 않다> 저자 정찬영 씨는 '나르시시스트(Narcissist)' 개념을 통해 극우세력을 설명한다. 그가 제안한 나르시시스트 유형 중 하나인 '독선형 나르시시스트'의 특징은 극우세력을 이끈 그들,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유린한 독재자들과 똑 닮았다.

"타인에 대한 배려나 공감은 거의 없고 자신의 주장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자신의 의견이나 계획에 맞지 않는 행동, 상황에 강한 불쾌감을 표현한다. 자신을 특별하고 뛰어난 존재라고 여기고 타인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물론이다. 또한 타인의 어려움이나 고통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려고 든다. 주변 사람들은 이들의 잦은 비난과 무시로 인해 정서적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들은 자신의 주장이 무시되거나 비판을 받으면 보복 행위를 하거나, 관계를 단절할 수 있다."

정 씨는 나르시시스트들이 권력을 쥘 수 있도록 돕는 자들을 '인에이블러(Enabler)'라고 설명한다. 정 씨는 타인과의 경계 설정이 모호하고 자존감이 낮으며, 자기주장이나 거절을 어려워하는 외로움 사람들, 학대 경험이 있거나 애착 트라우마가 있는 이들이 인에이블러가 되기 쉽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매력적이거나 성공한 삶을 사는 듯 보이는 나르시시스트를 곁에 둠으로써 자신도 실제보다 중요한 사람인 것처럼 느낀다. 즉, 서로가 서로의 욕구 충족을 돕는 '공동 의존' 관계가 되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극우세력과 보수 개신교 세력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상황을 '유일신 근본주의와 정치적 극단주의의 결합'으로 설명한다. 유일신 종교는 다른 종교에 비해 흑백논리에 익숙하고 다원성과 상대주의에 취약하다. 이것이 근본주의로 나아가면 유일한 진리와 구원 경로를 자신들이 독점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이런 유일신 근본주의는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절대시하는 경향이 크고, 정치적 극단주의와 결합해 폭력적 행동이나 테러리즘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정 씨는 윤 전 대통령과 같은 정치인 나르시시스트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의 구조적·문화적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인 나르시시스트의 병폐는 단순히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자기애가 과도한 인물을 매혹적으로 만들고 권자에 올리려는 사회적 토양에서 만들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정치인 나르시시스트를 막기 위한 방안으로 △사회안전망과 평등한 기회 등 기본적 복지 보장 △시민 감시 기능 강화 △숙의 민주주의 제도 도입 △건강한 자기애 형성을 도울 멘토 등을 제안했다. 아울러 아동과 청소년, 청년에게 특정 종교 혹은 정치적 입장을 세뇌하듯 심고 극단주의적 행동을 부추기거나 복종을 요구하는 행위를 반드시 감시하고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사회는 과연 윤석열의 재림을 막을 수 있을까. 정 씨는 이렇게 경고한다.

"영적 나르시시스트들과 정치인 나르시시스트들도 지난 일로부터 배우고 생존을 위해 전열을 가다듬을 것이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그들과의 싸움은 영영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나르시시스트를 감별하는 안테나를 세우고 언제나 깨어 있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 어떻게 이들의 위험한 추종자가 돼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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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혁

프레시안 박상혁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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