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소 산재사망 막자더니..."4개월 간 정부 제시안 하나도 없었다"

'국무총리에 한 번도 보고 안해…빈손 종료 앞둔 김충현 헙의체

지난 6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재 사망한 고(故) 김충현 씨의 사고 재발 방지 대책을 논의하는 협의체가 이달 말 종료 기한을 앞둔 가운데, 안건 하나도 결정하지 못한 채 끝날지도 모르는 기로에 놓였다. 협의체 내부에선 정부 측 위원들의 미온적인 태도가 논의를 지지부진하게 끌어왔다는 비판이 나온다.

12일 태안화력 故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에 따르면, 고 김충현 사망사고 재발방지 위한 발전산업 고용·안전 협의체는 이달 말 활동 종료 기한을 앞두고 아직 한 건의 안건도 의결하지 못했다. 핵심 의제인 발전소 하청노동자에 대한 직접 고용과 고용 안정성 강화를 두고, 정부 측 위원과 대책위 측 위원의 입장이 좁혀지지 않으면서다.

협의체는 지난 6월 태안화력발전소 2차 하청노동자 고 김충현 씨가 산재 사망한 이후, 구조적 개선책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8월 13일 국무총리실 소속 기구로 출범했다. 이들은 한국전력 산하 5개 발전 공기업을 포함해 자회사, 1·2차 협력업체 등에 대한 대대적인 현장조사를 진행했고, 최근까지 9차례 전체 회의를 진행해 왔다.

핵심 의제 중 하나가 고 김충현 씨가 하청노동자로 있었던 한전KPS의 직접고용 문제다. 한전KPS는 한국전력 자회사로, 한전 산하 발전소들로부터 경상정비를 도급받는 발전소 1차 협력업체다. 한전KPS는 업무 일부를 다시 2차 협력업체에 외주화해 왔다. 고 김충현 씨는 2차 협력업체의 노동자였다. 전국적으로 한전KPS의 2차 하청노동자 규모는 660여 명이다.

태안화력발전소 2차 하청노동자들이 한전KPS의 직접 고용 대상이라는 판단은 여러 차례 나왔다. 지난 8월 서울중앙지법은 한전KPS 2차 하청노동자 24명이 제기한 불법파견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법원은 특히 이들의 일이 '한전KPS 일반직 4직급과 동종·유사 업무'라고 판단했다. 이어 두 달 후 고용노동부도 2차 하청업체의 공정 전체가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근로감독 결과를 발표하며 직접 고용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협의체 일부 위원은 전체 2차 하청노동자 660여 명을 한전KPS가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안을 제출했다. 현장 조사를 진행한 협의체 위원들은 원전 등 석탄화력발전소 외의 2차 하청노동자들에게서도 불법 파견 문제가 똑같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또, 대부분의 고용계약이 올해 말에 끝나고 당장 태안화력1호기도 올해 말 폐쇄되기에, 고용 승계 기한도 내년 2월로 정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대책위에 따르면, 정부 위원들은 '원전에서 일하는' 한전KPS 2차 하청노동자는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직접고용을 하더라도 일반 정규직이 아닌 '별정직'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기한도 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별정직은 일반직보다 처우가 낮고 적용받는 취업규칙도 다른 직제다. 한전KPS는 또 다른 2차 하청노동자들이 2016년 대법원에서 근로자성을 최종 확인받자,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들을 별정직으로 고용하고 있다.

협의체는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따른 석탄화력발전 노동자의 고용 안정성 강화' 방안도 핵심 의제로 논의했으나, 정부 위원들은 대책위 소속 위원들이 제안한 대부분의 내용을 반대했다.

석탄화력발전소는 2036년까지 28기가 단계적으로 폐쇄된다. 이에 일부 위원들은 석탄화력발전소의 또 다른 공정인 '연료환경설비 운전업무' 하청노동자들도 직무 교육을 통해 인력을 재배치하고 발전사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는 2019년 2월 과거 문재인 정부가 정규직 전환을 약속한 사안이기도 했다. 또한 한전KPS와 유사한 민간 1차 협력사 소속 노동자들의 고용도 차례대로 한전KPS가 승계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 위원들은 이에 '고용보장 방안은 추후 논의하자'거나 '민간 기업 등 이해관계자의 수용성과 발전 정비 산업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신중한 검토와 큰 틀의에서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12일 <프레시안>과 통화한 협의체 A 위원은 "'이걸 여기서 정할 수 없다'거나 '교육 훈련하고 전직 지원하면 알아서 될 것'이라는 태도로, 매우 소극적으로 임했다"며 "당장 내년부터 하청업체들은 '여력없다. 구조조정 불가피하다'라고 얘기하고 있는데, 다른 위원들이 아무리 열심히 안을 짜와도 '무슨 소리를 하냐' 식으로 넘기기만 했다"고 비판했다.

협의체의 또 다른 B 위원은 "정부 측은 '(한전KPS 일부 2차 하청노동자들을) 직접고용을 한다'는 것까지만 합의했고, 그 외 부분은 모두 반대했다"며 "더 문제인 건, 지금까지 내용을 만들고 제안하고 논의를 주도한 건 모두 김충현 대책위 관련 위원들이었지, 정부 측은 한 번도 안을 가져온 적이 없었고, 제안된 안에 '안된다', '싫다' 등의 의견만 내는 식이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이 위원은 "심지어 한 정부 위원은 '국무총리에게 내부 진행사항 보고를 한 번도 한 적 없다'는 답까지 했다"며 "정부가 협의체를 '하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한다'고 비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기후에너지환경부 전력산업정책과 관계자는 "훈령상 협의체 회의 내용은 비공개이기에 결과 발표 전 구체적인 얘기를 드릴 순 없으나, 수용할 수 있는 선에서 최적의 합의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 있다"며 "(정부 위원이) 일방적으로 반대한다거나, 아무 의견도 내지 않거나, 대응하지 않는 건 절대 아니다. 의견과 관점의 차이가 있는 것이고, (핵심 의제에) 회사 측 입장도 반영될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태안화력 故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 공공운수노조, 김용균재단 등이 10일 오후 2시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김용균 7주기 추모 결의대회를 열었다. ⓒ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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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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