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천장' 뚫었더니…혐오·위협으로 밀려나는 여성 정치인들

수년간 유럽서 여성 정치인 퇴진, 온라인서 폭력 겪으며 자기 검열 및 정치 포기

유리천장을 뚫고 정계 고위직에 오른 여성들이 혐오, 위협 등 온라인 공격으로 인해 자리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3일(이하 현지시간) 독일 도이체벨레(DW) 방송은 이러한 현상이 유럽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다며 지난 10월 취임 5달 만에 중도당 대표직을 내려 놓기로 한 안나카린 하트의 사례를 들었다. 하트는 사임을 발표하며 "당대표가 된 뒤 상상 이상으로 심각한 혐오와 위협"이 쏟아졌고 "항상 뒤를 돌아봐야 할 것 같은 느낌에 시달렸으며 집에서도 완전히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3년 전 이 당의 대표였던 애니 뢰프도 행사에서 연설 중 피살 위기를 겪고 당 지도부를 떠났다.

DW는 독일에선 지난해 공개적으로 트랜스젠더 여성임을 밝힌 녹색당의 테사 간저러 의원과 연방의회 부의장을 맡았던 기독민주당 여성 정치인 이본 마그바스가 노골적 비방과 적개심에 직면한 끝에 불출마를 선언했다고 짚었다. 2023년엔 네덜란드 재무장관이었던 시그리드 카그가 위협으로 인해 남편과 아이들까지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며 정계를 떠날 것을 선언했다.

1일 영국 일간 <가디언>은 관련해 스웨덴 성평등청의 라인 셀 분석·후속조치 부문장이 최근 수년간 정치적 극단화로 인해 심해진 증오와 위협으로 인해 많은 여성들이 정치 참여를 "두 번 생각"하게 되고 "스스로를 검열하고 공직에서 떠나는 결과"가 초래됐다고 분석했다고 전했다.

셀은 특히 젊은 여성들이 "엄청난 취약함"을 느끼게 되며 이는 업무 및 정상적 생활 수행에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역 정치에서 사임하는 젊은 여성이 늘고 있다며 이러한 현상이 "민주주의에 매우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디언>은 스웨덴국립범죄예방위원회의 2025년 정치인 안전 조사에 따르면 여성 선출직 공직자의 26.3%가 지난해 직위로 인해 위협과 괴롭힘을 당했다고 설명했다. 남성의 경우 해당 수치는 23.6%였다. 이로 인해 취약함을 느끼는 데 대한 성별 격차는 더 컸는데, 여성의 32.7%가 그러한 감정을 느낀다고 답한 반면 남성은 24%에 그쳤다.

스웨덴 언론인 마틴 겔린은 지난달 <가디언> 기고를 통해 "여성들은 제약을 받지 않는 증오 단체들, 온라인 트롤, 극우 극단주의에 의해 공적 생활에서 쫓겨나고 있다"며 이는 전세계적인 현상으로 지난 20년간 미국 정치를 취재하며 온라인 폭력이 얼마나 빨리 물리적 폭력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 낸시 펠로시 미 전 하원의장 공격 등을 통해 직접 목격했다고 설명했다.

다른 연구에서도 여성 정치인이 남성 정치인보다 온라인 공격을 당한 비율이 높고 특히 여성들이 큰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성폭력 위협을 당하는 탓에 정치를 아예 그만둘 생각을 하는 비중이 남성보다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지난해 독일 인권단체 헤이트에이드와 독일 뮌헨공대(TUM)가 정치인 등 정치적 활동이 활발한 연구 대상자 약 1100명에게 물은 결과 58%가 위협, 차별 발언, 위협, 증오 메시지 등 적대적인 온라인 공격을 경험했다고 밝혔고 여성(63%)이 남성(53%)보다 더 많은 폭력을 경험했다.

특히 온라인 공격 대상이 된 여성의 3분의 2가 성차별, 여성혐오 등 성별 기반 폭력을 마주했다. 남성의 3%만이 강간 위협을 받은 데 반해 거의 25%의 여성이 강간 위협을 당했다. 온라인 공격 대상이 된 남성의 경우 구타 혹은 살해 위협(51%) 등 다른 물리적 공격 위협을 더 많이 받았다. 43% 여성도 구타·살해 위협에 노출됐다.

해당 연구에 따르면 온라인 폭력을 경험한 남성 및 여성의 3분의 1이 실제 물리적 공격을 경험해 온라인에서의 공격이 실제 공격으로 이어질 가능성 또한 엿보였다. 온라인 공격을 경험하지 않은 집단의 경우 물리적 공격을 경험한 비중이 여성 14%, 남성 10%로 좀 더 낮았다.

연구는 온라인 폭력을 당한 이들의 절반 이상이 소통 방식을 바꿨는데 특히 여성의 경우 정치 활동을 완전히 그만두는 것을 고려하는 비중이 남성보다 높았다고 지적했다. 연구에 따르면 온라인 폭력을 경험한 여성 66%와 남성 53%가 소셜미디어 활동을 줄이고 어조와 내용을 수정했다. 여성 49%와 남성 30%가 온라인 폭력에 크게 노출될 수 있는 직위를 거절하는 것을 고려했고, 여성 22%와 남성 10%는 정치 활동을 완전히 접는 것까지 고려했다.

연구 책임자인 뮌헨공대 글로벌보건학 교수 야니나 슈타이너트는 "여성과 남성이 비슷한 수준의 증오에 직면한다 해도 정치적으로 활발한 여성은 특히 스트레스가 심할 수 있는 성적 학대에 더 많이 노출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여성이 이미 의회나 정당에서 과소대표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 활동을 완전히 접거나 공개 소통을 수정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재계에서도 여성 최고경영자(CEO)들이 남성 CEO보다 행동주의 투자자들의 공격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3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 경제조사단체 컨퍼런스보드 보고서에 따르면 2018~2025년 미 증시 시총 상위 3000개 기업을 포함하는 러셀3000 기업 CEO 중 여성은 6.3%에 불과했지만 같은 기간 15.7%의 행동주의 투자자 활동이 여성 CEO가 있는 회사를 표적으로 삼았다고 보도했다. 이 활동엔 CEO 교체 요구가 포함된다.

보고서 저자 중 하나인 마테오 토넬로는 성별 고정관념에 의거해 여성 CEO가 남성 CEO보다 "더 높은 기준"을 적용 받아 실패할 경우 남성보다 더 엄격한 판단의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신문은 이에 더해 조직이 위기에 처했을 때 비로소 여성에 최고위직에 돌아오는 '유리절벽(glass cliff)' 현상 탓에 일부 여성 CEO는 이미 어려움에 처한 회사를 물려 받았을 수 있어 표적이 되는 경우가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스마트폰 화면에 소셜미디어(SNS) 앱이 표시돼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김효진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