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친위 쿠데타 이후 1년의 시간
12.3 친위 쿠데타가 발생한 지 오늘로 꼭 1년이 되었다. 그동안 쿠데타 주범 윤석열 전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 의결과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파면되었고, 한남동 관저에서 경호처를 동원해 저항하다 김용현, 이상민, 여인형, 이진우, 노상원 등 이에 동조 가담한 일부 국무위원 및 장성들과 함께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아직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내년 초로 예정된 1심 결과를 통해 초유의 친위 쿠데타에 대한 법적 처벌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윤석열은 지금까지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를 하지 않았고, 여전히 극우 단체들과 일부 정치인들이 그를 옹호하며 헌정 체제를 부정하는 행태를 지속하고 있다. 국민의힘 또한 당시 집권당이었음에도 아직도 제대로 된 반성은커녕 야당이 계엄 사태의 원인을 제공하였다며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 가운데 대다수는 위헌적이고 불법적으로 선포된 계엄령의 해제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고, 심지어 그들 가운데 일부는 법원의 구속영장 집행을 막기 위해 관저 앞 시위에 참여 하고, 탄핵을 지연시키려는 행태를 보여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국민의힘은 '1호 당원'인 윤석열의 출당 조치도 거부하고, 신임 당대표가 윤석열을 면회하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사과를 고심한다면서도, 12.3 내란이 '아무 일도 없었던' 단순한 해프닝에 지나지 않은 것처럼 치부하고, "방법은 잘못이었지만" 야당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며 계엄을 정당화하고, 그 책임을 물으려는 노력을 '내란 몰이'로 왜곡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12·3 내란이 남긴 상흔
이미 1년이 지났지만 '내란은 끝나지 않았다'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여전히 12.3 내란을 옹호하는 극우 세력과 이들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버젓이 길거리와 국회 청문회에서 들려오고 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어처구니없게도 "12.3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이들은 계엄군을 동원해 국회를 무력화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장악했던 12.3쿠데타가 마치 '반체제 세력'인 야당의 '입법 독재'를 막으려는 숭고한 결단인 것처럼 미화한다. 12.3 내란으로 '나도 계몽되었다'라는 이들의 언행은 일제에 의한 강제 병합이 "조선의 유일한 생존 길"이라던 이완용을 비롯해 "내선일체는 조선의 번영을 위한 길", "징병은 조선 청년의 영광", "황국신민으로서 여성도 전쟁에 봉사해야 한다"라던 이들과 과연 차이가 있을까? 5.17 군부 쿠데타를 '구국의 결단'으로 포장했던 전두환을 비롯한 제5공화국의 통치자들과도 차이가 있을까?
12.3 내란은 결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아니다. 윤석열이 일으킨 '내란'은 한국 민주주의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 사건은 코스피 지수의 급락만이 아니라, 5.18 민주화운동 이후 7년 간의 엄혹한 전두환 군부정권의 탄압을 버티며 6월 항쟁으로 민주화를 이루어낸 시민들의 자긍심을 파괴했고, 심한 모멸감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군부를 동원한 쿠데타가 성공적으로 민주주의를 공고화시켰다고 알려진 국가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12.3 내란 이후 이들의 지원을 받은 극우 세력이 주도한 탄핵 반대 시위로 대한민국의 국론이 심각하게 분열되었고, 처절한 정치적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말 그대로 '내란'이 지속되고 있다. 사법부의 권위가 실추되고, 여야 간의 극한 갈등으로 정치가 사라지고 '협치'를 기대하는 것이 요원하게 되었다.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조차 부정당하는 야만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진실 규명, 책임자 처벌, 그리고 사회대개혁
12.3 친위 쿠데타 이후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심판이 대통령 선거를 통해 이루어졌고, 급속히 악화되었던 경제 지표도 정상궤도를 찾았다. 윤석열의 탄핵에 이어 그를 포함한 내란 혐의자들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고 늦어도 내년 초에는 1심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피의자 변호를 넘어 이들이 저지른 범죄를 옹호하며 '내가 윤석열이다'라고 외치는 듯한 변호인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하지만, 내란 재판 과정을 통해 국민들이 이 사건의 진상을 이해하고, 엄정한 사법 처리의 필요성에 공감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움은 남아 있다. 12.3 친위 쿠데타의 진상과 성격 규명, 그리고 책임자 처벌은 앞으로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1심 결과를 두고 정치적 공방도 벌어질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뒷전으로 밀려있는 것이 있다. 대선 과정에서 쏟아져 나온 사회대개혁 요구, 특히 헌법 개정을 비롯한 정치개혁으로 대한민국을 새롭게 재정립해야 한다는 요구는 '내란 청산'에 묻혀 있다. 내란 재판이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며, 정작 12.3 내란을 통해 드러난 한국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재도약 하기 위한 정치개혁이 지체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극우 세력이 발호하고, 내란 재판이 지연되고 윤석열 석방 가능성마저 부상하는 상황에서 사회대개혁을 위한 개헌을 포함한 정치개혁 요구가 시기상조이며, '내란 세력 척결'에 전력을 기울여야 할 상황을 부정하는 것이라며 비판하기도 한다. 물론, 추경호를 비롯해 내란 동조 혐의자들에 대한 구속영장이 연이어 기각되고 재판이 지연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윤석열의 석방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이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탄만 하며 특검 수사와 대법원판결까지 이어질 재판 진행 상황을 지켜만 볼 수는 없다.
사회대개혁을 위한 개헌과 정치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
이제 12.3 내란의 진실 규명, 책임자 처벌을 넘어 사회대개혁과 정치개혁으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 내란 '극복' 혹은 그 '완성'은 이를 유발했던 사회경제적 구조의 개혁과 정치 제도 개선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12.3 내란은 민주주의의 가치와 기본 원리에 무지하고 주술에 빠진 '어떤' 대통령의 일탈 행위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여전히 한국 사회는 반공주의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였으며,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와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로 인해 극우 세력이 발호하고 극단적인 정치적 갈등이 유발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토양과 정치 환경의 변화 없이 또 다른 정치적 위기와 '민주주의 후퇴'의 위험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개헌에 포함될 사회대개혁과 정치개혁 과제는 다양하다.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 계승을 헌법 전문에 포함하는 것은 물론 현행 대통령제의 한계로 지적되어 온 대통령 시행령·사면권·법률안 거부권의 남용 방지, 비례 의석 확대를 통한 승자독식의 선거제도 개혁, 결선투표제 도입과 정당 설립 요건 완화, 행정부에 대한 국회와 사법부의 견제력 강화를 통한 '수평적 책임성'의 제도화, 국민 발안 제도와 국민 소환 제도 도입 등 참여 및 숙의 민주주의 요소 강화, 대법관 수의 증원과 유신헌법에 뿌리를 둔 대법원장의 대법관 임명권 제한 등 사법 개혁, 사회적 차별 해소와 경제적 불평등 완화, 모든 노동자의 기본권 보장 및 강화,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한 분권형 개헌, 민주적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한 대통령 4년 중임제 도입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임성 강화 및 민주시민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 개혁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를 추진하려면,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숙의를 통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개헌안이나 법률 개정안도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고 졸속으로 추진된다면 그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실효성을 발휘하기 어렵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꼼꼼히 사회대개혁 과제를 선별하고 개헌 추진 일정을 마련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년 6.3 동시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이 요란한 공약을 쏟아내겠지만, 국가적 과제를 소홀히 할 수는 없다. 12.3 내란 책임자에 대한 엄정한 사법 처리를 위해 그동안 미루어왔던 개혁을 이재명 정부 집권 기간 내에 이루기 위한 새로운 발걸음을 시작해야 할 때이다. 제도 개혁으로 이어지지 않은 내란 극복은 불가능하며, 실질적인 민주주의 복원도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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