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대리운전기사가 만취 승객에 의해 차에 매달린 채 1.5킬로미터를 끌려가다 사망한 일이 일어난 가운데, 노동계가 특단의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구체적으로는 대리운전기사 작업중지권 보장, 플랫폼기업에 노동자 보호 책임을 지우기 위한 제도 개선 등을 정부에 제안했다.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은 2일 대전광역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리운전노동자가 고객의 폭행으로 목숨을 잃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며 "대리기사 폭행 살인, 더 이상은 안 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앞서 지난달 14일 새벽 대전의 한 도로에서 만취한 30대 운전자 A 씨가 60대 대리운전기사 B씨를 운전석 밖으로 밀어낸 뒤 연석에 부딪칠 때까지 1.5킬로미터 가량 직접 차를 몰고 간 일이 있었다. 그동안 B씨는 안전벨트에 묶여 열린 문 밖으로 상체가 노출된 채 마주 오던 차와 부딪치며 머리 등을 크게 다쳤고 결국 숨졌다.
해당 차량 블랙박스에는 A 씨가 폭행과 욕설을 퍼붓는데도 "잘할게요"라고 말하는 B 씨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 씨를 살인 혐의로 구속해 검찰에 넘겼다.
노조는 2010년 별내 인터체인지에서 차주의 폭행으로 대리운전기사가 사망한 일을 언급하며 "이것은 단순한 개인 간 사건이 아니다. 수많은 대리운전노동자가 매일 같이 폭언과 폭행 위험에 노출돼 일하지만 정부도, 지자체도, 경찰도, 대리운전 플랫폼 기업도 안전에 대한 책임을 방기해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리운전노동자는 호출 한 건, 한 건이 생계다. 호출을 거절하면 페널티가 부과되기에 위험한 손님을 만나도 콜을 취소하기 어렵다. 플랫폼 기업은 수수료만 챙기고, 노동자는 폭력과 위험의 최전선에 홀로 내던져져 있다"고 강조했다.
노조는 "우리는 이번 사건을 예견된 참사로 규정한다"며 "작업중지권도 감정노동자 보호도 작동하지 않는 일터에서 고객의 폭행으로 목숨을 잃는 끔찍한 일이 되풀이되고 있지만 재발방지를 위한 어떤 실질적 제도도, 법적 장치도 없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에 △철저한 진상규명과 엄중처벌 △작업중지권 보장 △심야 노동자 보호를 위한 대책 마련을, 플랫폼 기업에 △안전에 대한 책임 이행과 호출·배차구조 개선을 촉구했다.
대리운전노조, 웹툰작가노조, 라이더유니온 등의 연대체인 플랫폼노동희망찾기도 전날 성명에서 "이 사건을 접한 플랫폼 노동자 모두 공포와 좌절에 말을 잇지 못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고 그래서 사지의 문턱을 넘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탄식했다.
이어 "플랫폼노동자는 모든 권리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되어 있다. 산업안전보건법도, 중대재해법도 작동되지 않는다. 취객을 상대하는데도 감정노동자로 보호되지 않고, 맞아죽을 위험에 처해도 작업을 중지할 권리가 없다. 직장내괴롭힘 조항도 플랫폼노동자만 피해간다"고 구조적 원인을 짚었다.
그러면서 "반대로 플랫폼과 앱은 모든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다. '우리는 중개만 할 뿐'이라는 변명 한 마디에 정부의 감독·처벌은 멈춰선다. 콜은 앱이 뿌렸는데 책임과 욕받이는 플랫폼노동자 몫이다. 폭언·폭행이 발생하면 고객과 분쟁기사라며 불이익·차별을 통해 통제권을 행사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를 향해 단체는 "ILO 190호 '일의 세계에서 폭력과 괴롭힘 근절' 협약의 즉각 비준을 요구한다. '일하는사람법'으로 뜬구름 잡는 이야기 그만하고 실질적·구체적 권리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해당 협약의 내용에 대해서는 "고객·이용자·제3자가 저지르는 폭력과 괴롭힘, 대면·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모욕과 스토킹, 성폭력, 경제적·심리적 괴롭힘까지 포괄해 국가와 기업의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를 비롯한 불안정한 위치에 있는 노동자들을 '특히 보호해야 할 집단'으로 지목하고, 이들의 위험을 평가하고 예방조치를 마련할 것을 요구한다"고 설명했다.
단체는 또 △플랫폼노동 폭력사건 전담 대응체계 구축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에게 작업중지권·감정노동자 보호·직장내괴롭힘 관련 법 조항 적용 등을 정부에 촉구했다. 플랫폼 기업에도 사용자 책임을 다 하고 폭력 예방·피해자 보호 체계를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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