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마약 운반선 격퇴를 명분으로 카리브해에 군사력을 결집하면서 베네수엘라에 대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정보 동맹인 영국이 마약 운반 관련 정보를 더 이상 공유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나타났다.
11일(이하 현지시간) 미 방송 CNN은 상황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영국은 카리브해에서 마약 밀매 혐의 선박에 대한 정보를 더 이상 미국과 공유하지 않고 있다. 이는 영국이 미국의 군사 공격에 연루되기를 원치 않고 해당 공격이 불법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방송은 "영국의 이번 결정은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자 정보 공유 파트너인 미국과 상당한 단절을 의미하며, 미군의 작전 합법성에 대한 회의론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영국은 정보 자산이 배치된 카리브해의 여러 섬들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어, 지난 수년 간 마약을 운반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을 찾아내 미 해안경비대가 이들을 나포할 수 있도록 지원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지난 9월 해안경비대가 아닌 미군이 의심 선박에 대한 폭파 작전을 시작하면서 사망자가 발생하자 영국 입장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영국은 자국이 제공한 정보를 이용해 미국이 표적을 선정하는 데 대한 우려와 함께 미군의 공격이 국제법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하고, 지난달부터 정보 제공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영 양국 정부는 정보 제공 중단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방송은 주미 영국대사관과 백악관이 해당 사항에 대한 답을 하지 않았으며, 국방부 관계자는 "정보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 역시 영국 정부 대변인이 "정보 관련 사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오랜 정책"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CNN은 영국과 함께 카리브해 마약 밀매 용의자 검거에 도움을 줬던 또 다른 미국의 동맹국인 캐나다도 미국의 공격과 거리를 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캐나다는 치명적인 공습을 위한 선박 표적 공격에 자국의 정보가 사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미국에 분명히 했다고 소식통들이 전했다"고 밝혔다.
<가디언>에 따르면 지난 9월 2일 미군의 공격으로 11명이 사망한 이후 지난 9일까지 76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해안경비대가 아닌 미군이 나서서 의심 선박을 공격해 사망자가 발생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는 꾸준히 제기돼 왔다.
CNN에 따르면 지난달 유엔 인권최고대표 폴커 튀르가 미군의 공격이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는데, 이러한 우려는 미군 내부에서도 제기됐다.
방송은 앨빈 홀시 남부사령부 사령관이 지난달 피트 헤그세스 전쟁부장관 및 합동참모본부 의장과 회동에서 이 작전의 합법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뒤, 당초 임기보다 2년 빠른 올해 12월 사임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국방부 법률고문실 소속 국제법 전문 변호사들도 이번 공습의 합법성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며 변호사들을 비롯한 법조계에서도 비슷한 문제점을 지적해왔다고 전했다.
트럼프 정부는 마약 운반이 의심되는 선박에 대해 공격 및 사살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미 의회에 보낸 메모에서 미군이 적대 행위 중인 '적 전투원'으로 간주되는 마약 밀매 용의자들을 합법적으로 사살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들이 미국인들에게 '임박한 위협'이며 미국과 '무력 충돌' 상태에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CNN은 법무부 법률자문국이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비공개 법률 해석서를 발행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마약 카르텔을 '외국 테러 조직'으로 지정했다고 전했다. 백악관은 여러 차례 행정부의 조치가 민간인 공격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된 국제법 영역인 '무력 충돌법(Law of Armed Conflict)'을 "완전히 준수한다"고 반복해서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방송은 "법률 전문가들은 무력 충돌법이 민간 마약 밀매자에게도 적용되며, 특정 집단을 외국 테러 조직으로 지정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치명적 무력 사용이 허가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며 "CNN은 미군의 공격을 받은 여러 척의 선박이 공격 당시 정지해 있었거나 선회 중이었다고 보도했는데, 이는 이들이 봉쇄 및 체포로는 대처할 수 없는 '임박한 위협'을 초래했다는 행정부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가디언> 역시 법률가들은 트럼프 정부의 선박 공격에 대해 "사법 절차 없이 자행된 살인"이며 "국제법 위반"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우나 해서웨이 미국 국제법학회 차기 회장이자 전 미 국방부 법률고문이 이번 공격에 관여한 사람들에게 형사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그들(작전에 투입된 군인)도 자신들이 잘못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명령을 거부하면 불복종이 되고, 따르게 되면 국제법과 국내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벨기에 브뤼셀에 본부를 둔 국제분쟁 전문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에서 미국 프로그램 선임 자문관으로 활동 중인 브라이언 피누케인 전 국무부 법률자문관은 신문에 "영국이 인력이나 혹은 작전에 사용되는 탄약, 무기 부품을 제공하는 형태로 어떤 식으로든 관여하고 있다면, 이는 영국에 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그 작은 선박들에 민간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타고 있다는 결정적 근거는 없다. 따라서 만약 영국이나 다른 나라들이 이런 치명적인 공습을 어떤 방식으로든 지원하고 있다면, 그것은 명백히 우려해야 할 사안"이라며 "베네수엘라에 대한 잠재적 침략 행위를 지원하는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이 그 나라를 침공하거나 공습하는 것은 국제법을 명백히 위반하는 행위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같은 우려에도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 정부의 압박 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방송은 미 해군의 최대 규모의 항공모함인 USS 제럴드 R. 포드호가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해를 관할하는 미국 남부사령부 구역에 편입됐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미 항공모함은 다른 군함과 핵추진 잠수함, 그리고 푸에르토리코에 배치된 항공기들과 함께 배치"됐다며 "이는 1989년 파나마 침공 이후 최대 규모의 미군 병력 배치"라고 짚었다.
이에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미 해군에 대응하기 위해 육해공군 및 미사일 부대, 민간 민병대 등을 대규모로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이 "새로운 전쟁을 조작하고 있다"며 미군의 움직임에 대해 "지난 100년 동안 우리 대륙이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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