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배송 논쟁은 한국사회에 야간노동의 위험성을 환기했다. 공개적으로 새벽배송 금지에 반대한다고 밝힌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도 "야간근무하는 분들이 생체리듬에 따른 위험이 있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못했다.
야간노동과 관련 새벽에 일하는 사람의 심혈관질환 위험이 약 10% 높다는 상관관계를 담은 연구, 10년 이상 고정 야간근무 여성의 유방암 발병확률이 40~56% 높다는 연구 등이 전문가들에 의해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의 야간노동 규제는 근로기준법상 가산수당 지급과 임산부·청소년 야간노동 금지, 산업안전보건법상 특수건강진단 실시 수준이다. 이 수준의 규제를 시행하는 국가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중에는 미국과 일본 정도다.
야간노동을 당연하게 여기는 토양에서 새벽배송은 물론 각종 24시간 서비스가 자라났다. 이 점이 다시 야간노동에 따른 건강 위험 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에 야간노동의 위험성을 먼저 인식하고 이를 예외적 상황으로 설정해 규제를 시행해 온 해외 각국의 야간노동 법제를 살폈다.
EU 기준은 노동시간 상한 설정, 주간근무 전환권 등 부여
국제기준에 비춰볼 때 야간노동 규제의 최소 기준은 노동시간 상한 설정과 주간근무 전환권 보장 등 보호조치 마련이다.
'EU(유럽연합) 노동시간 지침'은 "자정부터 오전 5시를 포함한 연속 7시간 이상 노동"을 야간노동시간으로 규정하고, 해당 시간대에 "하루 3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을 야간노동자로 정의한다. 야간노동자에 대해 EU 회원국은 "정상 근무시간이 24시간 동안 평균 8시간을 초과하지" 않게 해야 한다. "특별한 위험, 신체적·정신적 부담 수반 작업"을 하는 경우 하루 8시간 야간노동 초과 금지는 평균이 아닌 절대 기준이다. 야간노동자에 대해 무상 건강검진권, 건강상 이유 발생 시 주간근무 전환권 보장 등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점도 담겨있다.
이 지침은 27개 회원국에 제시된 최소 기준으로 각국이 입법 조치를 해야 실효성이 갖는다. 2023년 작성된 유럽위원회의 '노동시간 지침 이행 보고서'를 보면, 회원국 대부분이 지침을 이행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ILO(국제노동기구) 171호 야간노동 협약상 야간노동은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를 포함해 7시간 연속적으로 수행되는 모든 작업"을 뜻한다. 야간노동자는 "상당시간 야간노동을 해야 하는 업무에 고용된 사람"이다. 비준국은 'EU 노동시간 지침'에 담긴 주간근무 전환권, 무상 건강검진권 외에 응급처치 시설 및 이송체계 마련, 임신·출산 전후 여성 노동자 보호, 적절한 사회서비스 제공 등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나아가 'ILO 야간근무 권고안'에는 야간노동 초과근무를 금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8시간 노동상한 설정과 비슷한 내용인 셈이다.
현재 ILO 171호 협약을 비준한 국가는 벨기에, 브라질, 체코, 포르투갈 등 17개국이다. 한국은 아직 이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다.
'원칙적 금지, 제한적 허용' 원칙 적용하는 국가도
국제기준에서 한발 나아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국가도 있다. EU 노동시간 지침이 제시한 노동시간 상한 등 기준에 더해 야간노동을 '원칙적 금지, 예외적 허용' 원칙 하에 운영하는 국가들이다.
대표적으로 스웨덴은 "자정과 오전 5시 사이의 시간"을 야간근무로 정의하고 원칙적으로 해당 시간대 근무를 금지한다. 단 "대중의 필요 또는 기타 특별한 상황"이 있으면 야간근무를 허용한다. 예시는 가공산업, 의료, 대중교통, 택시 서비스, 식당의 특정 직군 등이다. 다른 작업에서 야간근무를 시키려면 단체협약을 통한 동의 혹은 작업환경기관의 면제 부여 조치가 필요하다.
노르웨이는 "오후 9시부터 오전 6시까지"를 야간근무로 정의하고 "야간근무는 업무 특성상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법에 명시했다. "필요한 경우"의 예시는 설비·제품 특성상 작업 중단이 불가능한 경우, 경찰, 소방, 언론, 통신, 야간 청소, 숙박시설 야간 응대 등이다. 야간노동 부과 전 사용자가 노동자 대표와 협의해야 한다는 조항도 있다.
프랑스도 "빠르면 오후 9시에서 늦으면 오전 7시"를 야간근무로 정의하고 해당 시간의 근무는 "경제활동이나 필수 공공서비스의 지속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근거로 정당화돼야 하다"고 규정한다.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 야간근무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은 단체협약으로 정할 수 있게 했다. 협약이 없다면 근로감독관의 승인이 필요하다.
이밖에 핀란드도 야간근무를 예외적 상황으로 보고, 가능한 업무를 법에 따로 명시하고 있다.
야간노동 규제 논의, 걸음마 뗀 한국, 어떻게 해야 할까
야간노동 규제 논의가 막 시작된 한국사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박귀천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EU 노동시간 지침이나 프랑스 노동법전 등은 야간노동자를 따로 규정하고 있고, 야간노동을 예외적인 경우로 본다"며 "한국은 법적으로 야간노동시간만 규정하고 있고, 사회적으로 야간노동을 당연하게 보는 경향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러다 보니 야간노동에는 수당만 주면 되는 걸로 돼 있다"며 "먼저 지속적 야간노동 등을 담아 야간노동자 정의 규정을 만들고 위험에 따른 보호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칙적 금지, 예외적 허용' 원칙 하 야간노동 법제 운용과 관련해서는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주장을 주목해볼 만 하다. 그는 2020년 '소비사회와 야간노동 - 법적검토'에서 야간노동을 '공공서비스형', '기술적 필요형', '이윤추구 극대화형'으로 분류하고 새벽배송, 당일배송 등을 포함한 이윤추구 극대화형 야간노동은 "최대한 제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번 새벽배송 논쟁에서 교훈을 얻어 노동안전 연구에 대한 국가적 역량을 확충하고, 사전 예방 원칙에 따른 야간노동 규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강태선 서울사이버대 안전관리학과장은 "야간노동 일반의 위험성에 대한 해외연구는 있지만, 한국에서 새벽배송이 시작된 지 15년이 넘었는데 이에 대한 장기 코호트(cohort) 연구가 없다"며 "노동문제를 다루는 독립적인 국책연구기관이 있어 그런 연구를 했다면, 지금 새벽배송에 대한 논란의 상당부분은 해소됐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그는 "후향적 연구를 통해서라도 새벽배송의 위험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한다. 단 그래도 1년 이상은 걸릴 것"이라며 "화학물질 분야에서는 사전 예방주의 원칙에 따라 위험성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물질의 사용을 규제하고 이를 사용하려는 기업에 안전성 입증을 요구한다. 야간노동에도 이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다만 택배기사는 대부분 특수고용노동자라 이들의 노동자성을 확대하지 않는 한, 현재 논란인 새벽배송기사 보호를 근로기준법 등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단기 방안을 묻는 말에 양승엽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국회에 상정된 '일하는 사람 보호법안'에 야간노동 관련 규제를 담을 수 있을 것"이라며 "물류법적으로 배송 금지 관점에서 접근할 수도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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