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부터 소위 뇌영양제로 알려진 '콜린 알포세레이트'라는 전문의약품의 급여가 대폭 축소되었다. 외래 처방 환자가 부담하는 비율이 30%에서 80%로 환자 부담이 커진 것이다. 크게 올라버린 환자 부담 탓에 의사들은 해당 약물의 처방을 줄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왜냐고? 그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줄곧 외쳐온 입장에서 건강보험의 급여 축소를 반가워하니, 어리둥절하는 분들도 있겠다. 그럴만한 충분하고도 넘치는 이유가 있다.
'치매' 효과 검증 안 된 '치매예방'약
'콜린알포세레이트’라는 약물은 '뇌영양제’, '치매예방약’으로 알려지면서 입소문을 타고 처방받으려는 환자가 크게 늘었다. 해당 약물은 2023년에만 처방액이 무려 5734억 원이었다. 당시 약제비 총액이 23.1조 원 정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처방액이다. 출시한 지 10여 년이 지났으니 아마도 수조 원이 처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해당 약물이 경도인지장애 환자 치료에 급여로 허가받았지만, 실제론 경도인지장애에서 치매로 진행하는 것을 막아주는 효과는 검증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뇌영양제, 치매예방약으로 알려지면서 소위 불티나게 처방이 이루어졌다. 애초부터 효과가 없는 약이 전문의약품으로 등재된 이유조차 불분명한 약물이다.
우리나라는 이 약물이 전문의약품으로 등록되어 의사의 처방에 따라 이뤄지지만, 미국에서는 단지 건강보조식품으로 판매된다. 전문의약품으로써 효과가 증명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판매 시에도 치매를 예방한다는 표기를 못하게 하고 있다.
2020년 건강보험공단은 해당 약물의 급여 재평가에서 급여 제한을 결정했지만, 제약회사는 집행정지 소송을 걸었고, 3심까지 이어졌다. 최종적으로 건보공단이 승소했지만, 제약사는 소송을 통해 5년 동안 추가로 해당 약물을 판매할 수 있었다. 해외에선 건강보조식품에 불과한 약물을 전문의약품으로 애초에 허가해 준 것도 놀랍지만, 건보공단의 급여 재평가에 제약회사의 소송을 받아들여 무려 5년간 집행정지를 허가해 준 법원의 판단도 아쉬움이 큰 대목이다.
효과 검증 안 된 많은 약들이 건보 재정 갉아먹어
더 놀라운 것은 이처럼 효과가 검증되지 않거나 효과가 없다고 판정된 많은 약물들이 전문의약품으로 등재되어 있고, 날개 돋치듯 처방되고 있다는 점이다. 콜린알포세레이트가 막히니 이젠 은행잎 제제로 대안으로 떠오른다는데, 의사로서 말하지만 은행잎 제제가 치매를 예방한다거나 뇌기능을 개선한다는 주장을 할 만한 근거는 없다.
또다른 잘 알려진 약 중 효과가 없다고 판명된 약이 '오메가-3’ 약물이다. 오메가-3 약물은 건강보조 '식품'으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전문의약품으로도 등재되어 있고 중성지방이 높은 환자에서 보험급여로 처방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오메가-3 약물은 해외에서 대규모로 시행한 2차례의 연구에서 심혈관질환의 예방효과를 드러내는데 실패했다. 효과 없는 약이다. 물론 누군가는 오메가 3는 높은 중성지방 수치를 20% 정도 낮춘다고 항변할 수 있겠다. 하지만 중성지방 수치를 20% 낮춘다는 게 현실적으로 의미를 가지지는 않는다. 결론적으로 심혈관질환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효과는 없다는 것이다. 중성지방이야, 탄수화물을 조금 줄이거나 술을 줄이기만 해도 금방 떨어뜨릴 수 있다.
흔히 의약품의 효과는 중간 효과와 최종 효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예로, 어떤 약이 당뇨환자에서 혈당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하자. 그러면 보건당국에서는 당뇨병 치료제로 승인해 준다. 그런데, 나중에 대규모 연구를 해보니, 혈당을 낮추지만, 사망률은 더 높은 결과가 나왔다고 하자. 이런 약을 계속 처방하게 할 것인가? 아니다. 절대로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최종적으로 환자에게 미치는 건강의 결과다. 아무리 혈당 강하라는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죽을 확률을 더 높인다면 그건 약이 아니라 독극물일 뿐이다. 실제로 당뇨병 약제 중 혈당은 낮추지만, 심혈관질환 위험을 높여서 퇴출당한 사례는 적지 않다. 중간 효과는 있지만, 최종 건강 결과를 개선하지 못한다면, 그건 '밀가루 약'일 뿐이다.
여기서 의약품의 효과를 바라볼 때 중요한 것은 최종 결과이다. 환자의 건강에 최종적으로 미치는 결과가 어떠한가가 중요하고, 그런 관점에서 약제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비록 초기 허가에서 중간 효과가 있어서 승인을 했더래도, 최종적인 결과가 효과가 없는 약이라면, 과감하게 급여를 제한해야 한다. 여기에서 절약한 건강보험 재정은 새로운 등장하는 과학적 근거가 검증된 신약들과 희귀질환과 중증질환의 치료제를 신속히 보장하는데 쓰이는 것이 타당하다.
지속가능한 의료 보장과 건보 재정 효율화를 위해
현재 우리 사회는 의료비 지출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고, 향후 건강보험은 재정적자 압박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 그러다 보니,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는데 부담으로 작용한다. 반면, 신의료기술의 발전으로 혁신적 신약들이 개발되고 출시되고 있다. 많은 신약들이 고가라는 이유로 건강보험 등재가 늦어지고 있다. 그만큼 환자의 고통은 지속되는 셈이다.
필자는 아무리 고가 의약품이라도 효과가 검증된 약물들은 신속한 급여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대신 앞의 예처럼 효과도 없는 약들이 여전히 수천억, 수조 원씩 처방되고 있는 현실을 바꾸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물론 간병급여화나 연간 본인부담 백만원 상한제와 같은 큰 건강보험보장성 강화 정책을 추진한다면 추가적인 재원 확보가 필요하다.
건강보험 재정의 비효율적 운용이나 낭비는 의약품 뿐만은 아니다. 불필요한 과잉 진료도 의료비 낭비에 해당한다. 의료의 질보다 양을 보상해 주는 행위별수가제도 낭비를 부추긴다. 실손의료보험과 같은 통제되지 않는 민영보험도 마찬가지다. 모두 개혁과제들이다.
향후 급격한 고령화 추세 속에서 건강보험 재정의 효율화를 위해 필요한 개혁이 무엇인지를, 또한 여전히 간병부담과 의료비 부담이 높은 현실을 개혁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지금 이재명 정부는 고민하고 있을까? 조만간 그 해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참으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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