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동 아이들이 대림시장서 외치다 "다름은 멋진 일이야!"

[현장] 극우세력 선동에 맞서는 힘, "우리 모두 여기 함께" 외친 아이들

"우리! 모두! 여기! 함께야! 워먼 또우 짜이 쭤리!"

"다른 얼굴, 다른 성격, 다른 가족, 다른 고향, 우린! 모두! 달라!"

1일 오후 3시,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다사랑어린이공원에서 남녀노소 목소리가 뒤섞인 합창이 울려 퍼졌다. 대림동 주민과 '컬러 프라이드' 참가자 등 시민 60여 명이 한데 뒤섞여 노래 부르고 춤췄다. 노래를 주도한 건 초등학생 열 명이었다. 다문화 사회 속 어린이를 위한 예술교육 프로그램 컬러 프라이드(Color Pride) 수강생들이다.

3시 공원을 출발한 이들은 인근 대림 중앙시장을 향했다. 참가자 60여 명은 3~4열로 길게 줄을 맞춰 동네를 행진했다. 선두에 선 아이들은 계속 노래를 불렀고, 함께 한 예술강사들은 젬베와 둔둔(북)을 치고 마라카스를 흔들었다.

"다르다는 건 멋진 일이야!"

"함께 할수록 마음도 커지지! 힘내자!"

"우리 모두 작은 나무들, 커다란 숲에서 함께 살지. 큰 나무, 작은 나무, 우리의 뿌리는 이어져 있어"

컬러 프라이드 학생들이 예술강사들의 도움으로 직접 만든 노래 가사다. 모두 대림동에 사는 초등학생들로, 대부분 부모님이 중국 국적인 아이들이다. 동네 이름 대림(大林)에서 '큰 나무' 가사를 따왔고, 자신들을 작은 나무라 지칭했다. 이들은 이날 작은 나무처럼 꾸민 장신구를 옷과 머리에 달고 행진했다.

한창 영업으로 바쁜 시장 상인들은 놀라기도, 인상을 찌푸리기도, 손뼉을 치거나 휴대전화 카메라를 들면서 함께 즐거워하기도 했다.

자동차 수리점 앞에서 이들과 함께 춤을 춘 한 주민은 "북소리가 들려서 나와 봤고, 신이 나서 춤을 췄다"며 "외국 사람 차별하지 말자는 (행진의) 뜻이 좋다"고 <프레시안>에 말했다.

한 양꼬치 집 앞에서 한데 모여 손뼉을 치던 종업원 4명은 "너무 좋다"며 "애들이 신나 하는 것을 보니 더 좋아서 신이 났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막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왔던 중학교 3학년 학생 A 양도 행진하던 강사가 젬베를 두드리자, 리듬에 맞춰 춤을 췄다. A 양은 "(행진하는 친구들과) 우리가 다른 민족,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래서 어떤 이질감도 느끼지 않고 함께 춤을 췄다"고 말했다.

3학년, 6학년 아들, 딸과 함께 나와 행진하던 주민 B 씨는 "서로 이렇게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다"며 "참 어른들이 애들보다 못하다. 애들이 더 편견 없이 잘 지낸다"고 말했다.

▲11월 1일 오후 3시경, 대림동 주민과 '컬러 프라이드' 참가자 등 시민 60여 명이 서울 대림동 대림중앙시장 일대를 행진했다. ⓒ프레시안(손가영)
▲11월 1일 오후 3시경, 대림동 주민과 '컬러 프라이드' 참가자 등 시민 60여 명이 서울 대림동 대림중앙시장 일대를 행진했다. ⓒ프레시안(손가영)

대림동 모인 이주민 예술가들 "극우세력 맞서는 힘"

대림동의 아동·청소년들이 노래를 부르며 함께 동네를 행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림동 컬러 프라이드는 예술강사와 아이들이 만나 무용, 글짓기 등의 예술활동을 나눈 수업으로, 지난 6월부터 10월까지 20회가량 진행됐다. 마지막 수업이 이날 열린 대림동 행진이었다.

이번 행진은 제14회 이주민예술제 프로그램으로도 진행됐다. 이주민예술제도 올해 처음 대림동에서 열렸다. 이날 행진 동선을 짠 이주인권활동가 박동찬 경계인의몫소리 소장은 "극우세력들이 대림동에 몰려 와 온갖 혐오를 선동하고, 특히 이주배경 아동·청소년이 많은 학교 앞에서 노골적인 인종차별 집회까지 한다"며 "이주민예술제가 대림동에서 열린 건 그에 맞서는 우리 시민사회의 움직임"라고 말했다.

예술제 주최 측도 "극우단체는 차별과 혐오의 언어로 대림동을 공격하지만, 대림동은 원래 선주민과 이주민이 어울려 살아온 평화와 연대의 공간이었다"며 "이날 행진은 최근 대림동에 몰아닥친 극우의 혐오 선동을 몰아내는 축제의 발걸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컬러 프라이드를 기획한 '쿨레칸'의 안무가 엠마누엘 사누 씨는 "내 색깔은 내가 선택해! 나는 내가 자랑스러워!"라는 컬러 프라이드의 구호로 프로그램 취지를 설명하며 "자신의 배경에 자부심을 느끼도록,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기획"이라고 밝혔다.

엠마누엘 씨를 포함해 예술강사로 함께 한 이들 일부도 이주민이다. 서아프리카의 나라 부르키나파소에서 온 무용수, 음악가들이다. 엠마누엘 씨는 "다른 성격, 다른 특성은 있겠지만 세상에 '다른 인간'은 없다"며 "우리는 모두 같은 인간이고, 서로가 각자의 특별함을 볼 수 있길 바란다. 그런 사회를 바란다"고 말했다.

자녀를 이 수업에 보낸 학부모 C 씨도 행진에 참여했다. C 씨는 "나도 처음엔 나와 다르게 생긴 강사들을 보고, 그렇게 겉모습만 보고 며칠을 고민했다"며 "그런데 아이가 수업을 듣고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어느 순간 그 생각이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C 씨는 "이런 행진이 처음이라 쑥스러워할 줄 알았는데,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더라"며 "이런 공간이 마지막이라 너무 아쉽다. 계속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11월 1일 오후 3시경, 대림동 주민과 '컬러 프라이드' 참가자 등 시민 60여 명이 서울 대림동 대림중앙시장 일대를 행진했다. ⓒ프레시안(손가영)
▲행진 참가 청소년이 행진 도중 예술강사 엠마누엘 사누 씨와 즉흥 춤을 추는 모습. ⓒ프레시안(손가영)

이주민 참여 예술, 화합·성장의 가능성

참가자들은 40여 분간 대림중앙시장을 지나 대림동 일대를 한 바퀴 돈 후 원점인 공원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컬러프라이드 학생들은 마지막 노래 공연을 올렸다. "우리! 모두! 여기! 함께야! 워먼 또우 짜이 쭤리!" 행진 내내 외쳤던 노래였다.

그동안 행진에 참여한 아이들은 더 불어났다. 30여 명의 아이들이 공원에 모여 마지막 춤을 췄다. 이를 지켜보던 주민과 학부모들도 하나둘씩 모였다. 이들은 원으로 둥글게 모여 춤을 췄고, 한 명씩 중앙으로 나와 예술강사와 마주 보며 춤을 추기도 했다.

참가 학생들은 행사가 종료된 후 강사들과 만나 "20번은 너무 짧아요", "뛰고 놀고 싶어요", "내년에도 하고 싶어요" 등이라 말하며 아쉬워했다.

한국 국적의 D 씨는 행진 참가 소회로 "행진하며 지켜본 주민들의 반응이 정말 다양했는데, 그렇게 다양함이 화합되는 행진의 의미를 다시 한번 느꼈다"며 "매년 이런 행진이 열린다면 점점 서로가 화합해 가는 플랫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일상의 공간이 축제의 공간이 되면서, 이 공간을 즐겁게 생각하게 되는 계기도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려인 등과 오래 작업해 온 독립예술가 장승준 씨는 "혐오의 흐름에 맞서고자 대림동에서 예술제가 열렸지만, 이 생각을 주민들에게 어떻게 예술로 더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이 더 깊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주민의 존재는 다양성을 늘리는 등 한국 예술과 사회를 성장시키는 잠재력임에도, 이주민이 참여하는 작품을 정부 지원사업에 내면 보거나 듣지도 않고 '다문화네요? 그럼 우리 거 아니에요. 다문화 과로 가세요' 이런 거부를 듣기 일쑤"라며 "오늘 행진과 같은 이런 흐름이 더 이어져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컬러프라이드 참여 학생들이 예술강사들과 직접 만든 가사. ⓒ프레시안(손가영)
▲컬러 프라이드 참가자가 입은 나무 옷에 적힌 문구. ⓒ프레시안(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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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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