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베뮤에서 일하면 '하루 9시간, 월 8회 휴무, 310만 원 이상' 일까

[이모저모] 악마는 디테일에…장시간 노동 친화적인 고정 OT 계약과 런베뮤

월 310~만 원, 9시간 근무, 월 8회 휴무.

이러한 채용공고를 보면, 지원자는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도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쉬고 하루에 9시간 일하면 310만 원을 받고, 그 이상 일하면 연장수당을 받으려니 생각할 것이다. 기본 시급은 1만 2000원 수준(월 241시간 근무 기준)일 거라 짐작할 것이다. 앞서 말한 근무시간과 급여는 런던베이글뮤지엄(런베뮤)이 지난 5월 잡코리아에 올린 인천점 홀서비스 경력직 채용공고를 옮겨온 것이다.

런베뮤가 지원자에게 제시한 실제 노동조건은 이를 충족할까. 과로사 의혹을 받는 고 정효원 씨가 지난 5월 도산점에서 인천점으로 근무지를 옮길 때 계약을 갱신하며 작성한 근로계약서를 보면, 근무시간은 "9시간", "월 8회 휴무"로 돼 있다. 월급은 "3,150,000원"이다. 이 계약서는 런배뮤 직원 전체에 적용되는 표준양식에 따른 것으로 파악됐다. 정 씨의 실 근무시간과는 별개로 문서로 약속한 노동조건에만 한정하면, 여기까지는 문제 없어 보인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 정 씨 근로계약서의 임금구성 항목에 적힌 기본급을 시급으로 환산하면 1만 32원으로 최저임금 수준이다. 앞서 말한 1만 2000원과는 꽤 차이가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정 씨에게 제시된 315만 원의 월급에 실 근무 기준 40시간에 대한 연장근로수당, 8시간에 대한 야간근로수당, 22시간에 대한 휴일근로수당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근로계약서를 '고정 OT(over tima)' 계약서라 부른다. 일정 시간의 연장·야간·휴일수당을 미리 고정급에 포함하고, 가산수당은 그 이상의 추가 노동이 발생했을 때만 주는 방식이다. 정 씨 근로계약서상 런베뮤 측은 가산수당을 주지 않고 하루 10시간가량의 노동을 시킬 수 있다. 가산수당은 1만 2000원이 아닌 1만 32원을 기준으로 지급된다.

지원자 입장에서는 '채용공고와 근로계약서 내용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법적 구제는 가능할까. 채용절차법 4조 3항에는 "구인자는 구직자를 채용한 후에 정당한 사유 없이 채용광고에서 제시한 근로조건을 구직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돼 있다. 벌칙은 징역 5년 이하, 벌금 5000만 원 이하다.

다만 런베뮤의 채용공고를 법 위반으로 단정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노무사들의 의견이다. 공고에 시급을 쓴 것은 아니며, 근로계약서에 노동시간은 "9시간"으로 기재했고, 월급도 "315만 원"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고정 OT' 계약이라는 점을 채용공고에 담지 않았을 뿐이다. 편법으로 볼 수는 있어도 불법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채용공고를 본 지원자가 노동조건을 오인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또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고정 OT 계약은 장시간 노동을 유발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 포괄임금제의 변형이다. 미리 정한 것 이상의 연장노동을 하면 가산수당을 지급한다는 점에서 포괄임금제보다는 낫다고 볼 면이 있지만, 미리 월 40시간의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기로 했다며 사용자 입장에서는 그만큼 일을 시키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는 면에서 장시간 노동과 친화적이라는 점에서는 매한가지다.

그렇기에 런베뮤가 이번 일을 계기로 장시간 노동을 근절하고자 한다면, 고정 OT 계약에 대한 재검토도 필요해 보인다. 노동시간 단축을 공언한 정부도 장시간 노동과 친화적인 근로계약을 근절하기 위한 방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한편 런배뮤 측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채용공고에 고정 OT 계약을 명시하지 않아 지원자들이 노동조건을 오해할 수 있지 않겠냐'는 질문에 "면접 과정에서 설명하고 있다"고 했다.

▲ 런던베이글뮤지엄이 지난 5월 잡코리아에 게시한 인천점 경력직 홀서브시 직원 채용공고 중 일부. 잡코리아 캡처.

▲ 고 정효원 씨 유족이 확보한 고인의 근로계약서 중 임금구성 항목 부분. 연장·휴일근로시간 등은 실 약정 근무시간에 1.5배를 곱해 기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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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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