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베트남 이주노동자가 죽었다. 실수로 죽은 것이 아니다. 정부가 대대로 선포한 단속을 피하다 죽었다. 이재명 정부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행사로 미등록이주민 2차 정부합동단속(9월 29일부터 12월 5일까지)을 공포하면서다. APEC이 열리는 경주지역, 영남권을 더 단속하겠다고 했다. 88올림픽 당시 빈민촌을 철거했던 것과 같은 구시대적 지침이다.
지난 9월 22일 이 대통령이 '깨끗한 국토를 위해 힘을 모아달라'며 "추석 명절과 에이펙 정상회의를 앞두고 새로운 대한민국, 깨끗한 국토에서 가족과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마련된 전 국민 대청소 운동"을 제안한 맥락을 고려하면 더 문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무질서하고 지저분한 물건으로 취급하는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묻고 싶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양산하는 것은 누군가. 정부와 기업이다.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는 고용허가제로 임금체불이나 산재, 괴롭힘으로 사업장을 바꾸려고 해도 사업주가 동의하지 않으면 미등록이 된다. 이주노동자를 노예처럼 부릴 수 있게 하는 고용허가제를 만든 정부와 기업이 미등록이주노동자를 만든 것이다.
체류자격을 복잡하게 해 정해진 일을 하지 않으면 불법이 된다. 게다가 법적으로도 미등록이주노동자는 범죄자가 아님에도 '불법체류'라고 명명하면서 범죄자처럼 취급한다. 그냥 체류 기간이 초과한 사람일 뿐이다.
 
									
조지아주 단속보다 심한 한국의 미등록이주노동자 단속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9월 4일 조지아주에 현대차 공장에서 일하던 한국 노동자들이 비자(체류자격)가 맞지 않다고 300여 명이 수갑을 채워서 구금된 것을 보고 경악했다. 그러나 한국은 토끼몰이하며 단속한다. 영장도 없이 체포해 간다. 이는 트럼프의 야만과 다르지 않다. 아니 더 잔인하다. 9월 16일 울산 산업단지 내 자동자 부품 회사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 약 50명을 수갑을 채워 데려갔던 것을 기억하라.
이번 사건만이 아니라 이주노동자 단속을 피하려다 죽거나 다친 이주노동자가 많다. 올해 1월 인천의 베트남 이주노동자가 사망했고, 2월에는 경기도 화성의 카자흐스탄 이주노동자가 단속을 피하다 추락해 골절을 입고 의식불명 상태가 됐다. 경북 경산에서는 7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베트남 노동자는 척추가 부러졌다. 3월에는 경기도 파주의 에티오피아 이주노동자가 단속을 피해 대형 기계장치 안에 몸을 숨겼다가 기계 작동으로 발목이 절단되었다. 상상만 해도 참담하다.
이번에도 10월 28일 오후 3시경 법무부 단속차량이 단속반은 미란다원칙 고지 없이 공장 안으로 들어와 무조건 이주노동자들을 수갑을 채워갔다. 고인인 된 베트남 이주노동자는 스물다섯 살의 여성이다. 계명문화대학교 글로벌 한국어문화과를 졸업하고 구직 비자(D-10)로 자동차부품생산 업체에 파견돼 일하던 중이었다. D-10 비자는 교수 등 전문직종에만 취업이 가능하고 일반 제조업 사업장에 취직할 수 없다. 노동통제를 위한 체류자격 제한이 그녀를 강제 단속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것이다.
그녀는 죽던 날, 친구에게 출입국 단속반이 큰소리를 치면서 현장을 돌아다니고, 잡혀가는 동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 무서워서 숨쉬기도 힘들다는 카톡을 보냈다고 한다. 그 후 그녀는 시신으로 발견된다. 2층 높이에서 추락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입사한 지 2주 만의 일이다. 잘못된 비자제도와 강제단속의 책임은 법무부에 있다.
APEC이 말하는 번영에 이주노동자는 없다
APEC의 올해 슬로건인 '번영'에 이주노동자는 없다. 아태지역에는 수 많은 이주노동자가 존재함에도 전혀 다루지 않는다. 다시 말해 각국은 이주민 단속을 기본값으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APEC 회원국인 미국의 이주민 단속은 알려졌다시피 매우 심각하다.
지난 6월 23일 미국 연방 대법원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미등록이주민의 제3국 추방을 허용했다. 2025년 6월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이민 관련 행정조치는 국경 통제 및 이민 단속 강화, 난민·이민 제한, 시민권 및 복지 제한, 국가안보 목적의 외국인 입국 통제 등 많다. 그로 인해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이주민 구금 건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결국 반이민 시위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6월 9일 밤 11시 반이민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미국 로스앤젤레스 시내에는 미군 해병대 700명, 캘리포니아주 방위군 4100명이 실전 배치하는 등 내전하듯 대응했다. 이는 트럼프를 규탄하는 노킹스(No Kings) 시위로 확대됐다.
그런데 한국에서 이주민 단속을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는 없다. 물론 이주인권단체를 중심으로 집회를 하기는 하지만 자발적으로 시민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아직도 이주민은 동료 직원으로 동료 이웃으로 보지 않는 정서가 많아 단속으로 숨진 이주노동자가 있어도 사회는 무감하다. 대규모 시위는 꿈도 꾸지 못한다.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단일민족'이라는 인종주의를 펼치며 이주노동자를 타자화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신자유주의 위기로 삶이 팍팍해진 정주민들에게 이주민 탓이라고 화살을 돌리는 이주민 혐오까지 부추겼기 때문이다. 촤근 극우세력들이 혐중 시위를 가능하게 한 기반은 이주노동자를 동등하게 바라보지 않는 정부정책과 기업주의 태도 때문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변해야 한다. 이주노동자들도 사람이고 우리가 타국에 가서 일하면 이주노동자가 된다는 것을 돌아봐야 한다. 무엇보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철저히 자본가적 입장, 기업주의 입장, 국가주의의 입장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번 APEC에서 자본가들을 위해 입국 절차를 간소화하는 'APEC 비즈니스 여행 카드(ABTC)'가 만들어졌다. ABTC 프로그램은 APEC 회원국을 사업 목적으로 자주 방문하는 기업 및 기업 임원, 그리고 이사회 구성원은 쉽게 타국을 드나들 수 있도록 혜택을 제공한다. 정부의 이주 정책이 자본가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노동자에게는 얼마나 팍팍한가를 보여준다. 자본가는 쉽게 국경을 넘지만, 노동자는 어렵다. 이주노동자의 체류자격 통제는 노동권 통제의 수단이다. 그렇게 정부 정책으로 체류자격이 초과된 이주노동자는 단속 대상이 되어 이번과 같은 비극을 당할 수 있는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도 공존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우리는 이주노동자와 함께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노동력이 부족하다고 일꾼으로 쓰다가 조금만 수 틀리면 이주노동자를 물건 버리듯이 쫓아내는 방식, 폭력을 사용하며 단속하고 추방하는 이주노동정책을 바꾸라고 요구해야 한다. 이주민 단속만이 아니라 이주노동에 대한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혐중 시위에 대처하겠다는 말이 반쪽인 이유는 이주노동에 대한 차별정책을 지속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도 이주노동자를 존엄하고 동등한 동료로 대우하고 바라보아야 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다른 나라로 가는 것이 단속의 대상이 되고 죄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삼가 고인의 안식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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