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년 만에 검찰청이 폐지된다. 검찰개혁이라는 오랜 과제를 두고 문재인 정권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박탈), 윤석열 정권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귀)을 거쳐 이재명 정권은 검찰청 폐지라는 결론을 도출한 것이다. 지난겨울 윤석열의 계엄으로 시작된 내란 사태와 그로 인한 대통령 구속이라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법원과 검찰은 사태 해결은커녕 각각 윤석열 구속 취소와 즉시항고 포기를 선택했었다.
결국 윤석열 퇴진을 외친 광장의 힘으로 파면 결정을 끌어내며 사태는 일단락되었지만,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사회를 바꿔야 한다는 사회대개혁이란 과제가 남았다. 검찰개혁도 사회대개혁 과제 중 하나로 지목되며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어느 때보다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민주당과 이재명 정부가 검찰이란 명칭 자체를 폐기하는 결정이 가능했던 배경이다.
기존 형사사법체계에서 강력한 중심축 역할을 해오던 검찰을 해체하는 정책을 추진했다면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한 후속 대책이 중요하다. 하지만 민주당과 이재명 정부는 강력한 개혁 의지에 비해 검찰청 해체 이후의 정책적 방향성을 확인시켜주지 못하는 듯하다. 검찰청을 폐지하고 검찰 권력을 축소하기만 하면 우리는 윤석열과 윤석열들 없는 사회에 당도할 수 있을까?
검찰 통제, 민주주의 사회의 일반적 과제
검찰개혁의 목표가 처음부터 검찰권력 축소는 아니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범죄 수사와 기소는 경찰과 검찰의 독점적 권한이다. 이런 강력한 권한을 가진 경찰과 검찰이 정치권력과 친화적이기 쉽다는 사실도 새삼스럽지 않다. 기소권과 수사권을 적절하게 분배하여 정의로운 형사사법체계를 구축하는 일이 민주주의 사회의 일반적인 과제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국도 1990년대부터 검찰개혁이 사회적 과제로 등장했다. 군과 정보기관이 수사 및 기소 권한을 남용하던 군부독재 정권이 민주주의 요구로 종식된 이후에야, 민주적 형사사법체계 구축이라는 과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다.
당시 검찰개혁 요구는 부패 검찰 방지와 공안부 규제에 있었다. 봐주기 수사, 고위직 비리, 공안부의 사건 조작과 무리한 기소 등으로 검찰이 정치권력에 유리하게 작동하는 데 반해 시민과 노동자를 탄압하는 현실을 바로잡자는 것이었다.
정치권은 이를 부패방지의 하위 과제로 다루며 공수처 설치, 특검제 도입, 공안부 축소 등의 대안을 제시했지만, 실제 개혁 의지는 부족했다. 민주당에서 최초로 정권을 잡은 김대중 대통령 역시 부패 검사 사건을 묵과한다는 비판을 받던 검찰총장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며 더욱 정치권에 가깝게 끌어들였다. 정당들은 야당인 시절에만 검찰개혁을 주장할 뿐 실질적 개혁 조치는 미비했다.
검사 개인이 아니라 검찰 조직을 바꾸는 시도
2003년, 대통령이 된 노무현은 이 흐름을 바꿔내고자 했다. 검찰이 정치권력의 도구가 되는 구조 자체를 바꿔내고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자 했다. 검찰개혁을 검사 개인의 비리나 권한 남용의 문제로 여겨온 접근 방식 자체를 달리한 것이다. 법무부 장관을 검찰 출신으로 임명해온 관행을 깨고 비검사 출신을 임명해 검찰 조직과 정치권력 사이의 거리를 두고, 검찰총장 중심의 상명하복 구조를 깨뜨리고자 검사동일체 원칙 조항을 삭제했다. 지금까지 쟁점이 되는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 논의도 이때 시작되었다. 공수처 설치도 고위직 비위 예방만이 아니라 검찰의 수사권, 기소권을 분산해야 한다는 정치적 의미를 더욱 강조했다. 노무현 정부의 검찰개혁은 검찰이라는 조직이 지닌 구조적 문제를 살피도록 만드는 분기점이 되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의 개혁 방침에 대한 검찰의 반발은 거셌다. 임기 내내 정부와 검찰 간의 힘겨루기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더니 대통령 퇴임 이후에도 검찰은 노무현에 대한 정치자금 수사를 이어갔다. 표적 수사, 피의사실공표 등 검찰 수사 방식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수사는 계속되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이 들려오고 난 뒤에야 중단되었다.
그간 검찰이 시민과 노동자를 향해 수사권이라는 칼을 휘둘러오던 방식을 전 대통령에게 똑같이 휘두르는 장면이 매일 같이 생중계되었다. 이는 시민의 권리를 침해하던 검찰의 권한이 어디까지 남용될 수 있는지 사회적으로 확인시킨 사건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검찰개혁의 방향은 여기서부터 왜곡되기 시작했다.
해체 이전에 '어떻게'가 필요하다
"정치적 중립을 보장해주면 검찰이 저절로 민주화될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이었다. 검찰은 한국 사회에서 이미 기득권 세력 중 가장 강력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 오월의봄(2011)
검찰개혁이 민주주의 일반의 과제라는 측면에서 이 과제는 정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살피며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이어가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정치 권력의 책임을 망각하고 스스로를 피해자로 위치 지었다. 검찰개혁을 통해 검찰의 권한과 역할에 대한 조정자인 정치권력으로서 역할은 사라지고, 민주당을 공격하는 강력한 기득권 세력인 검찰의 권한을 빼앗는 것이 정답이라는 식이었다. 여기에 검찰 권력을 정권의 칼로 활용하던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행보까지 겹치며 검찰개혁에 대한 이견을 검찰개혁에 대한 반대이자 반민주주의적 의견으로 규정했다. 민주적인 형사사법체계를 어떻게 구축할지는 사라지고 민주당의 개혁방안에 찬성인가 반대인가라는 진영논리만 남은 것이다.
검찰개혁을 둘러싼 정치권의 지리멸렬한 반목은 2017년, 문재인 대통령 당선으로 민주당 정부가 다시 들어서면서 더욱 격화했다. 문재인 정부는 검찰개혁이라는 과제를 밀어 올리며 검수완박을 중심으로 권력구조 개편안을 내고, 공수처를 설치했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검찰개혁이라는 정쟁은 끝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검찰개혁을 한참 밀어붙이던 2021년, 한겨레 신문사에서 시행한 새해 여론조사에 따르면 검찰개혁의 취지에 공감하는 응답이 59.1%에 였지만, 그 절차와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부정적 평가가 더 많은 70.8%에 이르렀다. 과반의 여론이 공감하는 의제임에도 검찰 권한을 쪼개고 나누기만 하면 개혁이 완성되는 것처럼 밀어붙인 결과였다. 결국 민주당의 검찰개혁은 윤석열 당선과 함께 검수원복되었고, 검찰을 비롯한 형사사법체계의 권한을 민주적으로 재조직해야 해야 하는 과제는 그대로 남게 된 것이다.
내란이라는 민주주의 위기를 통과하며 검찰개혁이 다시 사회대개혁의 과제로 등장했다. 하지만 여전히 민주당의 검찰개혁안과 이재명 정부의 조직개편안을 통해 제기된 쟁점은 검찰 권력 해체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검찰의 수사권을 떼어내 만드는 중수청(중대범죄수사청)을 어느 부처 산하로 둘 것인지, 기소를 전담하는 공소청이 신설되면 보완수사권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 조직 개편에 따라 제기되는 질문에 민주당은 이미 답을 정해두었다. 검찰의 권력 약화 그 자체가 정답이라는 것이다. 정치검찰 출신 윤석열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도, 그가 계엄을 하고 내란을 일으킨 것도 검찰에 수사권이나 기소권과 같은 권한이 독점되어 있고, 그저 정치검찰의 권한이 막강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검찰 권력 해체가 아닌 방향은 정치검찰을 허용하는 방식이고 개혁을 거꾸로 돌리는 일이라는 식의 입장만 내세우며 정쟁을 또다시 만들고 있다. 이렇게 정치권력이 나서서 사회를 구성하는 제도와 시스템을 불신하게 만들수록 그 정치와 제도에 대한 불신을 먹이 삼는 극우세력이 도약하는 발판만을 제공할 뿐이다. 개혁의 목표는 더 많은 민주주의의 실현에 있지 그 제도와 기구 자체를 허무는 행위에 있지 않다.
정치가 보여줘야 할 검찰개혁의 방향
검찰청을 해체하고 중수청·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 개편안이 통과되었어도 1년의 유예기간 동안 국무총리실 산하 TF에서 검찰개혁의 구체적인 방안을 준비하는 시간이 남아있다. 그 시간 동안 정치가 검찰개혁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방향을 보여줘야 한다. 시민들은 이미 지난 겨울을 지나 보내며 개혁의 방향에 대한 힌트도 제시했다.
내란을 잠재우고, 불평등한 세상을 바꾸자는 외침으로 내란을 잠재웠던 그 겨울 광장에서 말이다. 윤석열 석방에는 앞장서면서 건설현장을 바꾸기 위해 투쟁에 나선 건설노동자를 기소하고, 전세 사기에 대한 수사는 소홀히 하며, 성소수자 군인을 처벌하려 들고, 여성이 교제폭력의 피해를 호소해도 불기소하는 검찰 권력을 바꾸자는 요구를 기억해야 한다. 검찰개혁은 바로 이 요구들에 대한 응답이어야 한다.
윤석열뿐만 아니라 윤석열들 없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선 불평등한 사회의 조건을 바꿔내고 민주주의를 실천하겠다는 정치의 전망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검찰개혁을 하겠다면서 정부기구 조직도만 들여다보며 권한을 나누는 것으로 개혁의 방향은 도출되지 않는다.
또한, 검찰개혁은 검찰의 권한만이 아니라 형사사법체계 전체를 손 보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문재인 정권에서 이루어진 검찰개혁으로 검경 간 수사권 조정이 이루어지면서 경찰의 수사개시권과 종결권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검찰과 경찰 간의 권한 분배를 이권 경쟁처럼 구도를 형성해 범죄 수사와 기소 사이에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협력적 관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실정이다. 지난 9월 5일 <'검찰개혁'(안)에 대한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의견>에 따르면 "공소유지를 하기 위해서 필요한 증거가 있음에도, 수사단계에서 누락되어 심증은 형성되었으나 증거 부족으로 무죄가 선고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고 언급한다. 검경 간의 협력을 통해 메워야 하는 수사단계의 허점을 그대로 노출해 그 피해를 성폭력 피해자가 받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검경 간의 핑퐁수사와 수사지연 등의 문제가 커지고 있다는 점은 현장을 대응하는 단위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개혁 조치에 따른 현장의 문제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고, 그 평가에 기반하여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구축해가는 과정으로
검찰청 폐지로 민주주의가 자동으로 나아가는 건 아니다. 간판을 떼어냈다고 과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가 민주주의 실현의 의지를 분명히 하지 않는다면 중수청을 행안부에 배치하고 보완수사권 없는 공소청이 출범하더라도 그 기관들이 다시 정치권력을 위해만 복무할 것이라는 우려는 피하기 어렵다.
핵심은 권한이 누구에게 있든, 그것이 시민을 위해 정의롭게 작동한다는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는 일이다. 검찰개혁이 사회대개혁의 일부인 이유다. 앞으로 1년, 검찰 권력 해체라는 단일 기준이 아니라,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정치적 방향 속에서 수사권과 기소권의 작동 방식을 재설계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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