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식 수사'는 무자비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한국일보> 강철원 기자가 쓴 2020년 2월 4일자 칼럼 '윤석열 스타일은 바뀌지 않는다'는 '윤석열 스타일'에 대한 서초동 일대의 세평을 모아 놓았다.
"그럴듯한 대의명분을 설정한 뒤 결론을 정해 놓고 수사한다",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무지막지하게 수사한다", "목표에만 집착해 절차를 무시하고 인권을 등한시한다", "수사의 고수들이 깨닫는 절제의 미덕을 찾아볼 수 없다", "보스 기질이 넘쳐 자기 식구만 챙긴다", "언론 플레이의 대가이자 무죄 제조기다."
악명높은 특수부 중에서도 윤석열은 단연 톱이었다. 좋은 방향으로 톱은 아니다. '검사로서는 나쁘지 않았다'는 윤석열의 '신화'도 이미 깨진지 오래다. 그가 정권을 잡은 후 '검찰 공화국'이 출범(?)하고 그의 충실한 검찰 조직은 '윤석열의 정적'을 향해 내달 시작했다. 수사는 가지를 뻗고 뻗어 지난 4년여간 376 곳의 압수수색(검찰 주장은 영장 기준으로 36회), 관련 사건만 8개, 주요 혐의만도 수십개, 그리고 재판만 5개를 받고 있다. 부인 김혜경 씨가 받는 혐의까지 하면 더 많다.
그런데 2022년 대선 판도를 갈랐던 핵심 사건의 얼개가 지금 삐그덕거리고 있다. 2022년 대선을 뒤흔들었던 대장동 사건이다.
원래 이 사건은 그저 그런 선거법 위반 사건이었다. 이재명은 2017년 경기도지사에 출마하며 자신의 공식 선거 공보물에 '대장동 개발 사업'을 자신의 '업적'으로 꼽아 자랑했다. 대장동 개발 사업에서 "개발 이익금 5503억 원을 시민 몫으로 환수"했고, 그 중 "920억 원을 대장동 지역 배후 시설 조성비에, 2761억을 공원 조성 사업비로 사용"했으며 "1822억 원은 성남시민들에게 시민 배당 지급 방안을 검토"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당시 검찰이 이 문구를 '허위 사실'로 보고 선거법으로 이재명을 기소했으나, 그는 최종 무죄 판결을 받는다.
이렇게 마무리되는 줄 알았던 이 사건이 다시 '핫 이슈'로 떠오른 건 지난 2022년 대선을 앞두고였다. 대장동 개발로 화천대유 등 개발업자 지분율 7%로, 민간 배당금 4000억 원을 가져간 사실이 한 지역 언론 보도로 알려졌다. '화천대유는 누구 것이냐'는 윤석열 후보의 구호는 대장동 의혹의 핵심으로 떠올랐고, 이재명은 수천억 원을 빼돌린 파렴치범이 돼 있었다.
이 막대한 '이익 저수지'의 뒷배에 이재명이 있다면, 이재명은 2017년 도지사 선거에서 '범죄 수익'이 은닉된 대장동 사업을 자신의 '치적'으로 대놓고 홍보할 정도로 간이 컸던 것일까? 첫번째 든 의문은 이것이었다.
이 물음은 검찰의 벼락같은 수사, 언론의 무차별 경쟁 보도로 인한 대장동 개발업자들의 '복마전' 중계에 묻혔다. 화천대유 실소유주인 김만배 씨와 연관된 국민의힘 곽상도 의원과 검사 출신 박영수 변호사의 '50억 클럽'의 실체가 수면 위로 드러났지만,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수사의 칼날은 윤석열의 경쟁자인 대선주자 이재명을 향해 맹렬히 돌진했다.
이재명을 겨냥한 검찰 공소 사실의 핵심 얼개는 이렇다. 대장동 민간 개발 업자인 남욱이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에게 3억 원을 건넸고, 유동규는 이재명의 측근인 정진상과 김용에게 이를 '이재명 선거 자금'으로 전달했다는 것이다.
즉 이재명이 남욱 등에게 돈을 받는 대가로 개발권을 줬다는 것인데, 최근 남욱은 자신의 진술을 180도 뒤집는다.
남욱은 당초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설립되던 2013년 4월부터 8월까지 유동규 전 기획본부장에게 모두 3억여 원을 건넸다고 진술하며 "당시 유동규가 '높은 분들에게 전달할 돈'이라고 했고, 그들을 '형들'이라고 지칭해 전달 대상이 정진상과 김용으로 알고 있었다"는 취지로 주장했으나, 지난 9월 19일 정진상 전 실장 재판에서는 "(돈을 전달했다는 2013년 시점) 당시엔 전혀 몰랐던 내용이고 2021년도에 수사를 다시 받으면서 검사님들에게 처음 전해 들은 내용"이라고 번복했다.
이뿐이 아니다. 남욱은 지난 5월 "유동규가 개인 철거업자에게 빌린 돈 때문에 곤란한 상황이라고 말을 했고, 돈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주장했고, 지난 8월에는 "당시 유동규가 '형들'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고 말을 바꿨다. 그 와중에 해당 철거업자는 대법원에 제출한 진술서를 통해 "당시 유동규로부터 3억 원을 변제받고 확인서를 써줬다"고 주장했다.
대장동 사건의 핵심 얼개가 무너지고 있는 셈이다. 바뀐 배경 상황은 하나다. 윤석열 정부에서 이재명 정부로 넘어왔다는 점.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면서 왜 대장동 사건 핵심 증인 남욱은 자신의 진술을 완전히 뒤집었을까? 보다 근본적인 의문, 성남시가 손해 봤다는 4895억 원의 어마어마한 돈은 대체 이재명의 어느 주머니에 들어 있는 것일까? 검찰은 이재명이 삼켰어야 할 돈을 찾아낸 적이 없다. 유동규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정진상과 김용의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이 사건은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도 심상치 않다. 핵심 증인들이 말을 바꾸고 있는데다, 검찰의 피의자 회유 정황까지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이화영 전 경기도 부지사가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 방북 등을 대가로 쌍방울 김성태 전 회장과 배 회장 등으로 하여금 불법 대북 송금을 하도록 했다는 혐의로 이화영과 이재명을 기소한 바 있다. 현재 이화영은 이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7년 8개월형이 확정돼 수감 중이다.
하지만 이 사건 역시 핵심 인물들이 말을 뒤집고 있다. 핵심 인물인 배상윤 KH그룹 회장은 자신과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북한과 업무 협약을 맺은 건 사업 이득을 위해 비밀리에 추진한 것이지, 당시 경기도나 이재명과는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더 논란이 된 건 검찰이 그간 부인하던 '이화영 회유 연어 술판 의혹'의 정황이 법무부의 감찰로 새롭게 확인됐다는 점이다. 만약 이게 사실로 드러난다면 이화영 사건도 '재심 사유'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권이 바뀌니 핵심 증인들이 말을 바꾸고 있다. 하지만 정권이 이들의 증언 번복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는 없다. 처벌을 앞두고 있는 이들이 각자 '살 길'을 찾아 각자도생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그 '각자 도생'이 왜 검찰이 불리한 쪽으로 진행되고 있는 걸까? 전 정권의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했을 가능성도 절반은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검찰은 왜 핵심 증인들의 진술이 바뀌었는지 설명해야 한다. 또 그 바뀐 진술이 거짓이라는 걸 입증해야 한다. 검찰 수사가 탄탄했다면, 아무리 정권이 바뀌었다고 한들, 핵심 증인이 죽을 각오를 하고 말을 뒤집겠는가?
경우의 수는 두 가지다. 첫째, 이재명 정부가 이들에게 진술을 바꾸라고 '공작'을 했는지, 둘째, 그게 아니라면 검찰이 '윤석열 스타일'의 무리한 수사로 거대한 대장동 구조물을 짓고 이재명을 범죄자로 엮으려 했던 것인지다. 그 진상은 드러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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