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극과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경험 사이의 놀랄만한 공통점

[최재천의 책갈피] 키스 존스톤의 <즉흥연기>

후배들과 함께하는 토론 모임이 하나 있다. 빅데이터 분석기업인 '팔란티어'에 대해서 공부한 적이 있다. 출장길에 읽으라며 함께했던 윤성우 선생이 책을 하나 선물해 왔다.

2000년에 번역 출간된 연극에 대한 책이다. 캐나다 캘거리 대학의 명예교수이자 루스 무스 극단의 예술감독인 키스 존스톤의 <즉흥연기>. 순간 '이게 뭐지' 하자 친절한 설명이 이어졌다.

"'팔란티어'의 CEO인 알렉스 카프가 신입 사원들에게 선물하는 책이랍니다. 얼핏 보기에는 컴퓨터과학이나 소프트웨어 개발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책이지만 이 책이 구사하는 즉흥극과 스타트업 창업 또는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경험 사이에는 놀랄만큼 많은 공통점이 있다네요."

그러면서 카프의 저서 <기술공화국 선언> 제11장 번역문까지 건네주었다. (그 사이인 지난달 15일 <기술공화국 선언>이 번역 출간됐다.)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의식은 크게 두 가지.

첫째는 '지위놀이'다. 존스톤은 "좋은 연극이란 인물 간의 지위 관계를 교묘하게 보여 주고 반전시키는 것"이라 설명한다.

그는 수업의 한 형태로 학생들에게 커피숍에서 모임을 갖는 사람들을 관찰하게 한다. "어느 모임에서 누군가가 일어나거나 새로 참석할 때 한 사람 한 사람의 자세가 어떻게 바뀌는가를 유심히 지켜볼 것을 지시한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떠날 때를 보면 남아 있는 사람이 어떻게 자세를 바꾸었는지 알 수 있다. 그의 몸가짐은 상대방에 맞추어 정해 놓았던 것이며 혼자가 된 이제는 주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표시하기 위하여 다시금 자세를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둘째는 '상상력'이다. 존스톤은 "(1) 우리는 자신의 상상력을 꺾는 데 사력을 다하고 있으며 특히나 상상력을 발휘하려고 기를 쓰면 쓸수록 오히려 더 심하다. (2) 상상력의 내용에 우리는 아무 책임이 없다. (3) 우리는 생각을 하도록 교육받아 왔으므로 지금 자신의 '개성'은 자기 본 모습이 아니며 상상력이 진정한 우리 자신이다."

그래서 상상력을 억압하는 학교 교육에 대해 날카롭다. "나는 차츰 어린이가 미성숙한 어른이 아니라 어른이 발육 불능 어린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교육자들한테 이런 생각을 말하면 그들은 화를 냈다."

독일 철학 박사인 알렉스 카프가 왜 이 책에 빠져들었는지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독서의 편벽함을 깨뜨려 준 윤선생에게 감사를.

▲ <즉흥연기> ⓒ지호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최재천

예나 지금이나 독서인을 자처하는 전직 정치인, 현직 변호사(법무법인 헤리티지 대표 변호사)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