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은 왜? 우리는 왜? 낙인의 정치학

[프레시안 books] <유대인은 왜? 유대주의를 버린 유대인들의 비극>

"처음엔 내가 용의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했지만, 곧 깨달았다. 이곳 미국에서 차별과 억압의 표적이 되는 또 다른 '흑인'은 다름 아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라는 것을." — 시카고 출신 래퍼, 빅 멘사

이 짧은 고백은 『유대인은 왜? ― 유대주의를 버린 유대인들』(세르주 알리미 외 지음, 르몽드코리아)이 던지는 물음의 핵심을 압축한다. 타자의 고통을 마주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발견한다. 억압받는 이들의 얼굴은 서로의 거울이며, 팔레스타인의 절망 속에서 미국 흑인들은 과거 자신의 역사적 상처를 본다. 이 책은 바로 그 '거울의 정치학'을 추적한다.

오래된 박해의 궤적

소피 베시는 「2000년의 고독」이라는 글에서 유대인이 겪은 오랜 박해를 기술한다. 로마 제국과 이집트의 추방, 중세 기독교의 원죄 낙인, 근대 인종주의와 나치의 학살까지 이어지는 긴 박해의 궤적은 유대인을 끊임없이 '타자의 타자'로 내몰았다. 그러나 베시는 동시에 오스만 제국과 아프리카 대륙의 북부 마그레브에서 유대 공동체가 보여준 관용과 공존의 역사를 환기한다. 그는 단순한 피해의 서사가 아니라, 지워진 다성적 현실을 되살린다.

폴 헤인브링크는 '유대-볼셰비즘 신화'의 역사를 파헤친다. 유대인을 공산주의와 동일시한 이 신화는 극우 담론의 핵심이었고, 냉전기 반공주의와 신나치즘, 오늘날 극우 포퓰리즘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재생산되었다. 음모론은 사라지지 않고 시대마다 다른 옷을 입었을 뿐이다.

신화로 세운 국가, 이스라엘의 그림자

쉴로모 산드는 유대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근대 시온주의의 발명품임을 논증한다. 이어 이드잇 제르탈은 홀로코스트 기억이 더 이상 희생자의 추모가 아니라 국가폭력의 정당화 수단으로 변질된 현실을 고발한다. 피해자의 기억이 가해자의 무기로 바뀌는 전도된 장면은, 독자를 섬뜩하게 한다.

팔레스타인 출신이며, 영국 런던대 교수로 재직하는 질베르 아슈카르는 가자지구의 반복된 학살과 관련, 서구 자유주의 국가들이 이스라엘의 범죄에 침묵하거나 오히려 비호하는 현실을 폭로한다. 이스라엘에 대한 정당한 비판마저 곧바로 반유대주의로 낙인찍는 메커니즘은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의식이다.

낙인의 정치와 오늘의 언어

세르주 알리미는 "진실을 말하면 반유대주의자로 낙인찍히는 기술"을 분석한다. 영국 제러미 코빈이 당한 정치적 중상은 그 전형적 사례다. 피에르 랭베르는 언론이 이 낙인을 확대 재생산하는 과정을 짚는다.

아녜스 칼라마르는 표현의 자유와 혐오 발언 규제 사이의 긴장을 다루며, '보호'라는 명분이 어떻게 비판의 억압으로 변질되는지를 지적한다.

그리고 실비 로랑은 흑인 인권운동과 팔레스타인 투쟁을 겹쳐 읽는다. 앤젤라 데이비스, 말콤 X, 제임스 볼드윈, 휴이 뉴턴의 목소리가 팔레스타인의 고통과 공명하며, 빅 멘사의 체험으로 이어진다. 억압받는 집단은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고, 그 공명은 새로운 연대를 잉태한다.

이 책의 책임 편집자 그레고리 르젭스키는 서문에서, 반유대주의적 언행을 일삼던 유럽 극우 정치인들이 이스라엘 우파와 손을 맞잡는 기묘한 동맹을 보여준다. 『유대인은 왜?』는 글을 읽는 내내, 독자들을 불편하게 한다. 그러나 그 불편은 진실을 마주하기 위한 필연적 과정이다. 책을 덮고 나면, "유대인은 왜?"라는 물음은 "우리는 왜?"라는 더 근원적인 물음으로 확장된다. 우리는 왜 타자를 만들고, 왜 증오를 도구로 삼는가. 이 질문 앞에 오래 머물 수 있는 용기를, 이 책은 독자에게 요구한다. 단행본으로 새 출발한 무크계간지 『마니에르 드 부아르』의 첫걸음은 강렬하고도 매혹적이다.

▲<유대인은 왜>, 세르주 알리미.피에르 랭베르 외, 마니에르 드 부와르 펴냄. ⓒ마니에르 드 부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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