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유족이 곡기를 끊어야 하나

[인권의 바람] 괴롭힘을 강화하는 프리랜서 비정규직 백화점, 방송국을 바꿔야 한다

"오요안나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 또래에요. 세월호 참사도 그렇고 이태원 참사 때 너무 슬퍼했어요. 원래는 그날 이태원에 갈 계획이었는데 일정이 바뀌었다고 하더라고요."

지난 9일 상암동 문화방송(MBC) 본사 앞에 차린 고(故) 오요안나 씨의 분향소 앞에서 어머니 장연미 씨는 세월호 유가족 전인숙 씨에게 말을 건넸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고 임경빈 씨는 97년생으로 오요안나 씨와 나이가 비슷하다. 두 유가족은 왜 세상은 젊은 세대들을 살기 어렵게 하는지 모르겠다며 이야기를 나눴다. 세월호 참사에서 우연히 살아남은 사람이 다시 이태원 참사에서 죽고, 이태원 참사에서 살아남은 이는 일터에서 죽는 현실이다. 참사가 일상인 사회, 비정규직이 더 많은 세상에서 누군가의 죽음은 나의 죽음일 수 있기에 우리는 오요안나 씨의 죽음을 사회적 죽음이라고 부른다.

오는 15일은 오요안나 씨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죽은 지 1년 되는 날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MBC는 공식적인 사과도, 재발방지 대책을 포함한 유족의 요구에도 응답하고 있지 않다. MBC 앞에 분향소를 차리고 유가족이 단식에 들어간 이유다.

▲피차몬 여판통 유엔(UN)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 위원장이 10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앞 고(故) 오요안나 기상캐스터의 어머니가 단식 농성 중인 현장을 찾아 고인을 추모하며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괴롭힘조차 프리랜서라 인정할 수 없다고?

장 씨가 딸의 죽음이 직장 내 괴롭힘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세상을 떠난 지 3개월 지난 고인의 핸드폰에 쓰인 글과 녹음을 보면서였다. 그는 딸이 입사 후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선배 때문에 힘들다고 했을 때도 참으라고 타일렀으나 이렇게 세상을 떠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유족은 회사와 고용노동부에 진상조사를 요구했으나 돌아온 것은 프리랜서라 해당되지 않는다는 허망한 답이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는 오 씨가 프리랜서라 MBC 정규직의 구체적 지휘·감독 없이 업무에 상당한 재량을 갖고 자율적으로 하고 있다며, 노동자가 아니라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규율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고인은 계약만 프리랜서일 뿐, 실제로는 MBC의 요구와 지시에 따라 기상캐스터로 일했다. 그의 노동시간은 고정적으로 정해져 있었으며 근무일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지 않았고 정규직인 파트장이 기상캐스터의 원고를 검토하는 등의 지휘, 감독이 있었다.

고인의 어머니 장연미 씨는 오요안나 씨가 "2000대 1의 경쟁을 뚫고 MBC의 기상캐스터가 됐을 때 비정규직 프리랜서인 줄 몰랐다"고 했다. 공채로 뽑혀서 같은 일을 하고 있을 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처우는 달랐다. 프리랜서 특수고용노동자인 오 씨의 월급은 건당 계약이라 최저임금에도 못미쳤다.

오 씨를 비롯한 프리랜서 계약직들은 더 적은 급여를 받으며 정규직과 회사의 지시와 눈치를 받으며 일하고 있다. 대부분의 프리랜서, 특수고용노동자들이 그렇듯 4대 보험도 없다. 산업안전법 상의 보호대상에서도 빠져있다.

방송국은 수많은 비정규직 프리랜서가 있는 차별의 공간이다. 언론단체 엔딩크레딧이 2023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방송 비정규직의 '폭행·폭언' 경험은 33.3%로 직장갑질119가 조사한 직장인 괴롭힘 경험의 2배(17.2%)에 가깝다. '따돌림·차별'도 39.8%로 직장인 평균(15.4%)에 비해 2.6배 높았다. 위계와 차별이 많은 조직일수록 상급자나 권한이 많은 사람들이 괴롭힘을 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고용 형태에 따른 위계를 양산하고 있는 방송국의 고용 행태가 문제다. 오 씨가 겪은 괴롭힘은 프리랜서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는 방송국이 만든 구조적 괴롭힘이다. 즉, 고인의 죽음은 구조적 괴롭힘에 의한 죽음이다.

▲19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MBC 기상캐스터였던 고(故) 오요안나씨 특별감독결과 규탄 기자회견에서 오씨의 어머니 장연미 씨가 발언하다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직도 유족이 곡기를 끊어야 하나

장 씨는 말한다. "우리 딸은 살고 싶고, 일을 잘 하고 싶어서 발버둥치면서 노력했다"고. 힘들다고 하길래 그만두라고 했는데도 "꿈이 있어서 끝까지 하겠다" 했다고. 그런 고인이 극단적 선택을 했을 때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임에도 회사는 아직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MBC는 오요안나가 죽은 후 부고조차 내지 않았다고 한다.

유가족의 요구는 명확하다. MBC의 공식 사과와 재발 방지 입장 표명, 명예사원증 수여 등 명예 회복과 유족에 대한 예우, MBC 내 비정규직 프리랜서 규모 및 실태 전수조사와 기상캐스터 정규직 전환 등 방송국 내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등이다. 회사는 아무 답이 없다. 이에 장 씨는 과거 큰 사고를 당해 아픈 몸이지만 단식에 들어갔다.

단식 경험이 여러 번 있는 세월호 유가족 전인숙 씨가 장연미 씨의 등을 어루만진다. 분향소에 앉아 있는 장 씨는 분향소 앞에 보이는 딸이 살던 오피스텔 쪽을 바라보며 다짐하듯 말한다.

"꼭 이길 거라 생각해요. 정당한 요구니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12년째. 그런데 아직도 유족들이 굶고 삭발하고 거리에서 한뎃잠을 자야 하는가. 더구나 2025년은 윤석열의 반인권적 친위쿠데타를 물리친 해가 아닌가. 씁쓸해진다.

곧 1주년이 다가온다. MBC는 결자해지의 자세로 서둘러 유족의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프리랜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도 개정하고, 노조법도 개정하고, 방송국에서 더 이상 프리랜서 비정규직을 쉽게 쓰지 않도록 규제하고 관리, 감독해야 한다. 그 첫발은 MBC가 프리랜서로 있는 기상캐스터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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