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의 시대, 법원의 역할을 묻는다

[시민건강논평] 큰뒷부리도요를 살리는 재판이 돼야 한다

다음 주에는 정부의 기후환경정책에 도전적인 문제의식을 제기한 두 건의 소송에 대한 1심 선고가 예정되어 있다. 하나는 2023년 9월 강원도 삼척 포스코 석탄화력발전소 공사장 입구를 2시간 동안 막아섰던 두 명의 녹색연합 활동가들에 대한 형사재판(10일)이고, 다른 하나는 2022년 9월 새만금신공항반대국민소송인단(이하 국민소송인단)이 국토교통부 장관을 상대로 낸 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 취소 행정소송(11일)이다.

전자는 국가가 기후활동가들에게 부과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과 '기업의 업무방해' 혐의에 대한 재판으로, 그간 정부가 주최하는 공청회 등에서 반대 의사를 밝힌 활동가들을 연행하거나 정부기관 앞에서 천막농성을 한 시민들을 도로법 위반으로 고발했던 조치와 같다. 후자는 국민소송인단이 '법을 동원하는 사회운동전략'인 입법운동과 소송운동 가운데 적극적인 소송 절차를 활용하여 정부의 행정처분을 무효화하려는 것이다(☞참고논문 바로가기).

기후활동가나 국민소송인단이 각각 피고와 원고로 두 재판에 선다는 점은 다르지만, 두 소송 모두 현재 정부의 편향된 산업·개발정책이 '기후재앙의 파국을' 가속하고 있음을 문제삼고 있기 때문에 사법부는 그에 대한 판단을 밝혀야 한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활동가와 시민들이 형사처벌이나 시간과 비용부담을 감수하고 이런 직접행동과 공익소송에 나서는 이유는 단 하나, 지구생태계의 한계라고 생각했던 지구평균기온 1.5도 상승을 이미 넘어서 1.55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얼마나 참혹했는지는 우리가 봄부터 여름까지 나라 안팎에서의 산불과 홍수, 산사태와 가뭄, 폭염과 극한호우에서 목도했다.

지난 8월 30일 정부에서 가뭄이 극심한 강릉지역에 재난사태를 선포하고 인력과 장비 등 재난관리자원을 총동원한 것처럼, 현재의 기후위기는 국정기조는 물론 사회정책 전반과 생산과 소비의 경제체제에도 재난사태에 걸맞는 전면적인 전환과 개입이 요구되는 국면이다. 그럼에도 두 사건이 더 넓은 정치의 장에서 공론화되지 못하고 사법적 판단에 맡겨진 것은 안타까움을 넘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두 건의 재판을 사회운동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선 녹색연합 활동가들에 대한 재판이 기존의 법질서 유지를 명분으로 '사회운동을 제약하고 억압하는 법'의 처분이 되는 경우에는 기후시민운동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다.

한편 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 취소소송은 제도 내에서의 사회변동전략이라는 소송운동의 의의에도 불구하고, 소송은 현행법에 근거하기 때문에 급진적인 의미를 찾기 어렵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게다가 국내 환경관련소송에서 사법제도는 국가권력에 친화적인 판결들을 내리지 않았던가. 시민사회와 정부가 환경보전론 대 개발론으로 다퉜던 대표적인 소송인 새만금간척사업소송(2001), 천성산 터널공사반대 도룡뇽소송(2003), 4대강사업소송(2015) 등은 모두 사법부에서 정부 측의 주장을 인용하고 시민들이 제기한 문제들은 적절한 조치로 해결될 수 있다며 정부에 승소 판결을 내렸었다. 심지어 천성산 도룡뇽소송에서 사법부는 "천성산의 자연환경 파괴와 터널의 안정성 등을 문제 삼는 것은 현행법 체계에서 인정되는 사법적 구제를 초과하는 것”이라 자인하면서도, 소송을 각하하고 행정부에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대신 터널공사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발표했었다.

하지만 일찌기 경험한 적 없는 기후재난에 직면하여 기후대응이라는 국가의 정치적 책무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가 매우 높아진 지금도 사법부는 여전히 같은 입장을 견지할 수 있을까?

2024년 8월 헌법재판소는 '탄소중립기본법'의 일부 조항이 국민의 환경권(헌법 제35조)을 보호하지 못했다며 재판관 전원일치로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하는 기후생태소송들이 진행 중이며, 점점 많은 국가에서 온실가스 감축과 건강한 환경에서 살 권리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명시하고, 기업들에게 그린워싱과 기후피해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고있다(☞관련자료 바로가기).

이런 결정들은 환영할만 하지만 소송의 결과가 기후환경정책이 갖는 정치적인 힘을 한계 짓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어떤 예기치 못한 재해와 위험이 등장할지 충분히 상상할 수 없다. 그러므로 분명한 예방조치는 선제적으로 취해야 할 뿐 아니라, 첨단기술이나 지구공학을 낙관하지 말고 최대주의적 관점에서 안전한 기후∙환경∙에너지 정책 규범을 만들어야 한다.

비폭력 직접행동이건 공익소송이나 입법운동이건 당사자 시민들의 저항과 요구가 기존의 질서를 대체할 새로운 규범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정부가 "앞선 정부에서 정해진 결정이기 때문에 뒤바꿀 수 없는 일”이라고 할 때 이에 동의할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해 충분히 바꿀 수 있는 일”이 되어야 한다고 정치를 강력하게 견인해야 한다.

"우리는 서울행정법원이 기후재난의 시대에 생명과 안전의 편에 서서 낡은 개발주의가 아닌 새로운 시대의 지평을 열 정의로운 판결을 내리길 바랍니다.”

사법부에 전향적 판결이 필요하다는 경각심을 주려는 사람들이 '새, 사람 행진단'을 꾸리고, 서울행정법원의 선고결과를 보기 위해 지난 8월 12일 전주에서 출발하여 서울 양재동까지 250km를 걸어서 올라오고 있는 중이다. '새, 사람 행진단'은 간척사업으로 갑자기 줄어든 서식지 탓에 멸종위기종이 되어버린 큰뒷부리도요를 비롯해 저어새, 검은머리물떼새, 흰발농게 등 수많은 비인간 생명체와 함께 새만금신공항 말고 수라갯벌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외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 취소소송을 맡은 재판부에 새만금개발사업의 현재를 직시해줄 것을 당부한다. 전북이 발전할 것이라며 농업용지에서 산업용지로 이름을 바꿔가며 간척지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었지만 사람이 떠난 빈 땅이 되었고, 새만금호는 생명체가 살 수 없을 정도로 수질이 악화되었다. 반면 그대로 두었다면 수 만명의 사람들이 어업 활동을 하는 삶의 터전이 되고, 남반구와 북반구를 오가는 수많은 철새들의 중간기착지이자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드넓은 탄소흡수원이 되었을 갯벌의 가치를 알아주길 바란다.

아울러 재판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명백히 확인시켜 줄 것을 요청한다. 첫째, 새만금신공항을 건설하기 위해 활주로 13km 반경 내에 국내 최대 가창오리 월동지가 있음에도 국제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5km 기준으로 평가기준을 왜곡해 공항을 조류충돌로부터 안전하다고 거짓말을 한 국토교통부의 잘못을 지적하라. 둘째, 국제공항 기능을 도저히 할 수 없는 규모의 신공항이 결국 미군기지 확장 목적이 아닌지 물어보라. 셋째, 신공항을 짓기 위해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천혜의 갯벌을 파괴하면서 한편에선 인공 매립지에 생태환경단지를 조성하는 모순적인 행태를 폭로하라. 넷째, 하늘과 땅을 경계없이 무리지어 나르는 새들의 서식지를 인간의 힘으로 쉽게 옮기거나 새로 만들어 낼 수 없다는 자연의 이치를 일깨우라.

우리는 사법부가 정부사업의 정당성을 추인하는 절차가 아니라,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로 신뢰받는 결정을 내려주기를 바란다. 아울러 기후재난으로 공동의 터전을 잃고 나면 누구도 홀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무엇보다 생명과 안전, 미래를 지킬 수 있는 판결이 되길 기대한다.

ⓒ시민건강연구소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시민건강연구소

(사)시민건강연구소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의 싱크탱크이자,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비영리독립연구기관입니다. <프레시안>은 시민건강연구소가 발표하는 '시민건강논평'과 '서리풀 연구通'을 동시 게재합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