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5000' 외치는 정부…의료 정책도 투자자 관점에서 추진할까

[시민건강논평] 건강·보건의료 정책의 투기화·금융화는 안 된다

지난주 이재명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안)'이 공개됐다(☞관련자료: 바로가기). 보건의료 분야로는 다음과 같이 4개의 국정과제가 포함되었다. "지속가능한 보건의료체계로 전환", "지역격차 해소, 필수의료 확충, 공공의료 강화", "일차의료 기반의 건강·돌봄으로 국민 건강 증진", "국민 의료비 부담 완화". 과제마다 주목해야 할 점들이 많지만, 일단 지역·필수의료 위기와 관련해 보자면, 지난 정부에서 함구령이 내려지다시피 했던 '공공의료'의 귀환이 눈에 띈다. 실제 정책 내용의 차이는 차치하더라도, "공공의료체계 강화"라는 표현이 등장한 데서 정권 교체에 따른 정책기조의 뚜렷한 변화가 감지된다.

그리고 "공공병원 없는 곳에 지방의료원 신설"이나 지역필수의료기금 신설, 지역의사제 도입, "(가칭)공공의료 사관학교" 설립 등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세부 계획도 제시되었다. 실질적인 국가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정책 의지가 읽힌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다만 문제는 이러한 계획들이 위기 극복에 충분히 효과적인 수준과 방식으로 추진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데 있다. 이는 공공병원을 몇 개 더 지을지, 재정을 얼마나 투입할 것인지 등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없어서가 아니다. 이제 막 '큰 그림'을 선보인 만큼 이런 것은 차차 구체화하면 될 일이다.

이러한 계획들에 물음표가 붙는 까닭은, "체계 강화"를 언급한 것과 달리, 여전히 '패키지(정책 묶음)'형 접근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각 정책 요소가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전체 체계를 재구성할 것인지에 대한 '체계(system)'적 사고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말하는 "체계 강화"는 공공의료기관 간 연계·협력만을 의미할 뿐이다. 공공병원 확충을 비롯해 인력 양성 체계나 재정 구조에 변화를 줄 때, 다른 부분들에는 어떤 조정·개입이 동반되어야 하는지 체계적 관점에서 검토하지 않으면 각 정책의 추진 속도와 강도를 균형있게 조율하기 어려울 것이다. 개별 정책 중심의 접근으로는 그때그때 정세에 휘둘리며 정치적으로 유리하고 실행이 용이한 것만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정부 계획의 실효성과 실행가능성에 의문부호가 붙는 더 큰 이유는 보건의료 바깥에 있다. 우선 그 어느 때보다 악화된 정부의 재정 여력이 큰 걸림돌이다. 문재인 정부 마지막 해(2022년) 396조 원이던 국세수입이 지난해 337조 원으로 크게 감소한 실정으로, 마른 수건을 쥐어짜야 할 판국에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예산 확보가 녹록치 않을 것은 쉽게 예상되는 문제다. 물론 재정 여건만이 전부는 아니다. 재정 상황이 지금보다 좋았던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관련 재정 투입에 소극적이지 않았는가. 이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정말 중요한 국정과제라면 부채를 감수하면서라도 추진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총 123개의 국정과제 중에서 공공의료 강화의 우선순위가 그만큼 높다고 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더욱이 "AI 3대 강국 도약"이나 "코스피 5000 시대 도약"과 같이 이재명 정부가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전략 과제는 공공의료 강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위험성마저 내포하고 있다. 언뜻 무관해 보이는 경제성장 정책인 것 같지만, 이것이 국정운영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에서 보건의료 분야 역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매 정권마다 내세웠던 잠재성장률(3%) 목표야 새롭지 않지만, '코스피 5000 시대'는 나름 의미심장하다. 실제로 이재명 정부는 기업이 주주의 이익 극대화를 최우선 경영 목표로 삼는 '주주자본주의'를 강화하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 7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까지 확대하고, 전자주주총회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등의 방안이 담긴 상법 개정안이 신속하게 국회를 통과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국내 개인 주식 투자자 수가 1400만명을 넘어선 지금, 정부로서는 이들의 눈치를 더 많이 볼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지난해 11월 야당 대표이던 이 대통령이 '소득 있는 곳에 세금도 있어야 한다'는 조세의 기본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폐지에 동의한 것도, 또 최근 국정지지율 하락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주식 양도세 부과 대주주 기준 논란이 꼽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주가지수는 GDP(국내총생산) 못지않게 국가 통치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주주자본주의가 전면화될수록, 한국 경제의 고질적 문제인 재벌 총수들의 전횡을 막는 데 기여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자본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강화하는 일은 여전히 요원할 수밖에 없다.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기업은 주주의 이익을 위해 배당, 자사주 소각, 대규모 정리해고 등 단기 실적 중심의 경영에 치우칠 우려가 있다(☞관련자료 바로가기). 나아가 주주자본주의는 금융화, 투기화를 부추기는 가운데 불안정노동체제와 사회경제적 불평등 역시 심화시킬 수 있다. 현재 주식 보유량이 가장 많은 집단이 '서울 강남구 거주 50대 남자'라고 하지 않는가.

주주자본주의는 이재명 정부의 국정운영 전반에 스며들 것이고, 따라서 보건의료 분야의 정책결정 역시 주식시장 부양정책과 '동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러한 양상은 복지부가 주관하는 국정과제인 "의료AI·제약·바이오헬스 강국 실현"에서 두드러질 것이다. 지난주 발표된 '새정부 경제성장전략'에서도 제시된 바 있는 "바이오산업 혁신을 통한 고부가가치화", "K-디지털헬스케어 수출모델 수립" 등은 차세대 성장 동력 산업 육성이라는 실물경제 차원과 더불어 증시 부양이라는 금융경제 측면에서도 중요한 정책과제로 다뤄질 수밖에 없다.

일반 주식 투자자 사이에서 바이오·디지털헬스 산업은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 등 구조적 요인으로 인해 장기적으로 성장 가능성이 큰 미래지향적 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나 셀트리온 정도를 제외하면 아직 대부분 기업들의 매출 규모나 영업 이익이 미미한 실정으로, 관련 임상시험 결과나 정부 정책 변화, 해외 투자 소식 등에 따라 주가가 급등락하는 양상을 보이곤 한다. 일례로 지난해 2월 전공의 집단 이탈 사태로 비대면진료를 전면 허용한다는 정부 계획이 발표된 직후 관련주들이 상한가를 기록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주식시장을 움직이는 '투기' 메커니즘은 현재의 부채를 모두 청산하고 남을 만큼 미래에 계속해서 가치(부)가 증대될 것이라는 약속과 믿음의 토대에서 작동된다(피에이르브 고메즈(김진식 옮김), <투기자본주의>, 민음사, 2024). 관련 증시를 키우고 싶은 정부로서는 적극적인 규제 완화와 R&D 투자 확대 등을 통해 "의료AI·제약·바이오헬스 강국 실현"이라는 약속이 거짓이 아님을, 즉 투자자들이 미래의 높은 수익성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가질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치려고 할 테다. 투자자들을 실망시키지 않은 것이 정책 목표가 되는 것이다. 이 와중에 금융투기 논리에 편승한 정책결정이 이뤄질 위험성이 높아지리라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하지만 AI를 비롯한 신기술을 활용해 건강 관련 상품을 개발하고 산업화하는 일련의 흐름들은 여러 경로와 기전을 거치며 보편적 건강권 보장을 위협할 것이다. 우리가 의료민영화에 반대하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생명과 건강이 최우선 가치가 되어야 할 자리에 경제적 이윤 추구의 논리가 활개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양질의 의료와 건강관리 서비스가 돌아갈 가능성이 줄어들게 된다.

산업과 비산업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도 쉽지 않다. 국정과제 중 하나인 '비대면진료 확대'를 생각해보자. "의료 취약지 대상 보건소 비대면진료·원격협진 체계 신설"은 의료접근성 격차 해소라는 비산업적 목표를 가진 계획으로 보이지만, 이와 발맞춰 진행될 제도화의 또 다른 결과는 민간 자본으로 형성된 비대면진료 플랫폼 시장의 확장이지 않겠는가. 초진 허용에 대한 의사협회의 반발로 법제화 시도에 제동이 걸리긴 했지만, 산업화와 금융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 그 저지선이 뚫릴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한편 국립대병원 역시 금융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정부는 공공의료 강화를 위해 "국립대병원의 소관을 복지부로 이관하고, 권역 거점병원으로 체계적(으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국립대병원을 금융 투기의 대상으로 포섭하려는 시도가 계속될 것이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는 의료기술의 사업화와 보건의료산업 활성화를 명분으로 국립대병원에 기술지주회사와 자회사 설립을 허용하는 개정안들이 발의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되면 투자자들이 이들 회사를 경유해 사실상 국립대병원에 투자하고 배당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연간 매출이 2조 원이 넘는 서울대병원의 자회사가 상장될 경우 코스피 시총 증가에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병원 운영은 더욱 영리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밖에 공공병원의 신축·이전·증축에 '임대형 민간투자사업(BTL, Build-Transfer-Lease)' 방식을 활용하는 것도 금융화의 일종이다. 이는 민간 기업이 병원을 건축한 다음 소유권을 공공(중앙·지방정부)에 이전하면 공공이 일정 기간 임대료를 내면서 이용하는 방식으로, 최근 설립이 추진 중인 경기도의료원 남양주병원도 BTL 방식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정부의 단기적 재정부담을 완화하고 관련 주식시장 부양에도 일조할 수 있겠지만, 영국 NHS(국민보건서비스)의 'PFI(Private Finance Initiative)' 실패 사례가 보여주듯이(☞관련논문 바로가기) 투자수익률이 우선 될 경우 장기적으로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공공의료 강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게 된 근본 원인, 즉 심층 구조에는 건강과 보건의료를 상품화, 민영화, 산업화, 그리고 금융화하는 '건강 자본주의(health capitalism)'가 자리하고 있다(☞관련논문 바로가기). 공공의료 강화 정책에 스며드는 투기자본주의 논리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그 자체도 목표를 온전히 달성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전체 보건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견인하는 데에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같은 정책이라도 어떤 관점과 가치, 동기를 가지고 구현하는지가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지금 우리 사회가 당면한 보건의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공공성 강화 정책은 투자자 중심 관점이 아닌, 사람 중심 관점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시민건강연구소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시민건강연구소

(사)시민건강연구소는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지향하는 건강과 보건의료 분야의 싱크탱크이자, 진보적 연구자와 활동가를 배출하는 비영리독립연구기관입니다. <프레시안>은 시민건강연구소가 발표하는 '시민건강논평'과 '서리풀 연구通'을 동시 게재합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