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국민동의청원은 성사부터가 하늘의 별따기다. 하지만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는 니토덴코에게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 책임을 물으려 청문회 개최를 요구하는 청원을 진행했다. 고공농성의 절박함을 공감하는 시민들은 발 벗고 나서 청원을 모았다. 매주 땡볕 아래로 나갔고, 하루에도 몇 번씩 청원 동의 수를 들여다봤다. 동의 서명이 채워지지 않을까 마음을 졸였지만, 일주일을 앞두고 극적으로 청원이 성사됐다.
박정혜 씨는 글을 기고해 "청원을 모아주신 동지들께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뜨거운 고공에서 동지들 덕분에 버티고 있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직까지 청문회는 감감무소식이다. 청원이 성사된 지 3개월이 가까워지는데 심사는 더디다.
5만 명 넘게 청원해도 바뀌는 게 없다
시민 대다수는 국회 정치에 직접 관여하기 어렵다. 투표를 통해 의사를 표현할 수 있지만, 사람의 성향과 공약만 믿을 뿐 정세에 맞는 구체적인 요구를 하기 어렵다. 정치에서 소외되는 것이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이 점을 보완할 수 있다.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서 청원서를 등록해 100명 이상의 동의를 받는다. 100명을 채워 정상적으로 접수되면 시민들에게 청원이 공개된다. 시민들은 본인인증을 하면 공개된 청원에 동의할 수 있고, 30일 이내에 청원 동의 수가 5만 명이 넘으면 청원이 성사된다. 성사된 청원은 알맞은 상임위원회에 회부된다.
국민동의청원은 시민들의 동의로 국회의 회의 안건을 정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물론 회의가 열렸을 때 이야기이다. 현실에서 국민동의 청원은 심사조차 잘 이뤄지지 않는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는 국민동의청원 159건이 5만 명의 동의를 받아 성사됐지만, 고작 17%만 처리됐다. 임기가 종료되자 5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은 수많은 청원은 그대로 폐기됐다.
22대 국회에서도 5만 명 넘는 동의를 받은 청원들이 대부분 계류 중이다. 24일 기준,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된 국회 청원 185개 중 고작 3건만 처리됐다. 처리 기한을 무기한 연장하며 청원을 심사도 않고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헌법 제26조에는 누구나 국가기관에 청원할 수 있고, 국가는 이를 심사할 의무가 있다는 내용의 '청원권'이 명시되어있다. 심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다.

토론조차 하지 않는 국회동의청원, 조선시대 신문고보다 못하나
청원 제도 자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지적도 이어진다. 아무리 어렵게 청원을 모아도 결국 선택은 의원들의 몫이다. 한자어로 청원은 '청하고 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 귀로는 경청해도 다른 한쪽 귀로는 흘려도 된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국민동의청원이 청원의 형식을 띄더라도 정치적 의사 표현이란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국민동의청원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직접적으로 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이다. 방법이 없으니 청원이라도 해보는 것이다.
모든 청원을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 부적절한 청원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토론조차 부치지 않는 지금의 국회동의청원은 조선시대의 신문고보다 실효성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