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과 시간을 통해 만드는 미래복지

[복지국가SOCIETY] 각자도생 시대, 서로 돌보는 사회를 위해

한국 사회는 눈부신 산업화와 정보화를 이룩했지만, 그 이면을 살아가는 개인들은 무한경쟁 속에서 각자도생하고 있다. 이러한 각자도생의 분위기는 개인의 고립을 심화시키며, 경쟁과 고립의 압박은 때로 자신보다 약한 타인을 향한 혐오나 사회 전체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성장하는 극단주의와 각자도생은 우리 사회에 불신과 갈등을 키우고, 수많은 이를 소외시키며,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까지 내몰고 있다.

한편 2024년 겨울, 광장을 가득 채웠던 목소리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인 동시에 서로를 존중하고 포용하는 공동체를 향한 갈망이기도 했다. 동시에 진정한 존중과 포용이 서로에 대한 연대를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현장이었다. 지금 우리에겐 이 갈망과 증거를 바탕으로 일상에서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연대와 존중을 기반으로 한 구체적인 실천이 필요하다. 그리고 실천 중 하나로 사람과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타임뱅크(Time Bank)'가 있다.

디지털 기술과 타임뱅크 플랫폼

타임뱅크는 '모든 사람의 시간은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원칙을 기반으로 한다. 한 개인이 타인을 위해 1시간의 서비스를 제공하면, 미래에 자신이 필요할 때 다른 사람으로부터 1시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 이는 일방적 자선이 아닌 상호 호혜적인 관계를 형성하며, 이러한 경험이 축적될수록 개인 간의 신뢰가 쌓이고 사회적 연대는 자연스럽게 강화된다. 결국 타임뱅크는 단순한 서비스 교환을 넘어 서로를 존중하고 포용하는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 모델이라 할 수 있다.

타임뱅크 개념은 1980년대에 처음 등장했으나,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과 함께 그 잠재력이 본격화되었다. 과거의 수기 장부나 전화 연락 방식은 정교한 디지털 기술로 전환되어 서비스의 연결 과정과 관리 과정이 훨씬 편리해졌다.

대표적인 글로벌 소프트웨어인 '아워월드(hOurworld)'는 전 세계 지역 공동체들이 자체 타임뱅크를 쉽게 구축하고 운영하도록 지원하는 소프트웨어이자 협동조합이다. 이 웹 기반 플랫폼은 회원 관리, 서비스 목록 관리, 시간 기록 및 정산, 회원 간 소통 등 타임뱅크 운영에 필요한 핵심 기능을 제공한다.

또 다른 플랫폼 '타임리퍼블릭(TimeRepublik)'은 소셜 미디어 요소를 결합한 것이 특징이다. 페이스북과 유사한 인터페이스를 통해 사용자들이 자신의 재능과 활동을 공유하고 소통하며 자연스럽게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하도록 유도한다.

국내 타임뱅크 플랫폼의 시도와 발전

국내에서도 주로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한국의 특성에 맞는 타임뱅크가 시도되었다. '서울시간은행'은 서울시가 주도했던 대표적인 사례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시간 나눔을 목표로 했다. 온라인 플랫폼으로 활동을 관리하고 정기적인 오프라인 모임으로 유대감 강화를 도모했다. 현재 공식 운영은 중단되었지만, 그 취지는 각 자치구의 자원봉사 연계 사업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서 타임뱅크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타임뱅크코리아는 '타임클라우드'라는 앱을 만들었다. '타임클라우드'는 위치 기반 서비스(LBS)를 활용해 주변 이웃과 실시간으로 도움을 주고받는 기능을 제공했으며, 상호 평점 및 후기, 본인인증 등 서비스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장치를 도입하기도 했다.

국민대학교는 지역 커뮤니티와 협력하여 '타임페이(Timepey)' 앱을 개발했다. 이는 대학생의 기술 재능과 지역사회의 필요를 결합한 상생 모델로, 학생들이 직접 앱 개발과 운영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블록체인 기술을 타임뱅크에 접목하려는 논의도 활발하다. 블록체인의 분산 원장 기술은 모든 시간 거래 기록을 위·변조가 불가능하도록 투명하게 관리하여 시스템의 신뢰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또한 중앙 관리자 없이 개인 간(P2P)에 시간을 교환하는 탈중앙화 모델 구현도 가능하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처럼 타임뱅크는 현대 기술과 결합하며 끊임없이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새로운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타임뱅크

타임뱅크 모델이 사회 전반으로 확장된다면, 모든 개인이 금융 계좌처럼 타임뱅크 계좌를 보유하는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 개인의 시간과 재능 그리고 서로가 주고 받은 도움은 화폐 자본만큼 중요한 사회적 자산으로 인정받는다. 서로를 대등하게 존중하는 관계 속에서 도움을 주고 받은 경험이 개인의 사회적 자산으로 인정하고 존경하는 사회로 우리는 향해야 하지 않을까?

또한 한 개인이 이룬 삶의 성취는 수많은 사람들의 환대와 도움, 그리고 선조들이 일궈낸 다양한 사회 인프라 위에서 가능하다. 이런 사실을 직접 경험한 개인들이 이웃과 사회에 책임감을 가지고 손을 내밀 때 우리는 그들을 시민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시민을 길러내고, 존중과 연대의 공동체를 향한 다양한 경제사회적 실천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순간이다. 극단주의와 각자도생을 넘어,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한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만드는 다양한 사회적 실천에 나서자. 그리고 타임뱅크가 중요한 실천이 될 수 있다.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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