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봉꾼이자 강간범이었던 베스트셀러 작가 조지 오웰

[프레시안 books] 애나 펀더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동물농장>의 작가 조지 오웰의 생애는 성폭력과 외도가 늘 함께 했다. 그는 결혼 후에도 다른 여성들과의 성관계를 멈추지 않았다. 그중엔 아내의 친구도 있었다. 강제로 이뤄지거나 시도된 사건도 여러 건이다. 1945년 그는 아내가 투병 중이고 갓난아이까지 있었음에도 갑작스레 프랑스로 출국했고, 돈이 부족했던 아내는 값싼 수술을 받던 중 홀로 사망했다. 조지 오웰은 사별 직후 몇 달 동안에도 최소 4명의 여성을 "덮친 다음 청혼"했다.

그의 아내 '아일린'은 조지 오웰의 작업에 유기적으로 결합했고, 특히 <동물농장>의 주요 기획 아이디어까지 제공했음에도, 오웰의 책에 아일린이란 이름은 제대로 등장하지 않는다. 스페인 내전에 참여한 아일린의 정당활동과 투쟁은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남편에게 차와 초콜릿을 보내주는' 존재 정도로만 그려진다. 조지 오웰은 아일린이 그의 원고를 교정·교열하고 편집했으며, 글에 대해 조언까지 한 사실을 드러낸 적이 없다.

작가 애나 펀더가 쓴 책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생각의힘, 2025)에 나오는 내용이다. 작가는 조지 오웰의 기록, 그의 생애를 조명한 모든 전기 기록, 그와 아일린의 지인들의 증언, 현장 취재, 그리고 아일린이 친한 친구에게 보낸 여섯 통의 편지 등을 종합해 '지워진 아내' 아일린의 흔적을 복구했다. 작가는 "왜 여성의 노고는 이렇게 지워져야 하느냐"를 물으며 이를 통해 가부장제를 비판한다.

조지 오웰은 '협업자' 아일린을 왜 지웠나

"조지는 그 문제(스페인 내전)에 대한 책을 다 써가고 있고, 난 그 사람 원고를 타자로 쳐주는데, 원고 뒷면에 내가 손으로 잔뜩 적어놓은 수정 사항을 읽을 수가 없어서 그 사람은 항상 내게 다시 물어봐야 해. (중략) 내가 단 하루라도 자리를 비울 수 있을지 모르겠어. 책 작업은 늦어지고 있고 최종 원고 타자 작업은 아직 시작도 안 했거든.” (1938년 1월 1일 아일린이 친구 노라에게 보낸 편지 중)

1938년 4월 발간된 책 <카탈로니아 찬가>엔 아일린의 노동이 빼곡히 담겼다. 아일린은 1937년 2월, 조지 오웰이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기 위해 바르셀로나로 떠난 지 8개월 후 같은 이유로 스페인으로 향했다. 남편과 함께 영국에 귀환하기 전까지 4개월 간 ILP(영국 독립노동당) 스페인 지부에서 병참 업무와 선전 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는 동안 아일린은 조지 오웰이 병참에서 작성한 모든 메모를 편지로 전달받고 그걸 타자기로 타이핑해뒀다.

그러나 조지 오웰의 전기 작가들은 아일린의 정치 활동을 무시했다. "자원봉사자로 일하기 위해서"라거나 "남편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게 차, 초콜릿, 시가 등을 구해 보내주는 일일 거라 생각해서" 혹은 "그저 오웰 가까이에 있고 싶어서"라는 서술이 전부다. 조지 오웰의 책도 마찬가지다. 아일린은 스탈린 치하 비밀경찰들의 감시를 받았고 반역 혐의로 기소까지 됐다. 작가는 묻는다.

"아일린은 정당 본부에서 일했고, 전선으로 오웰을 찾아갔고, 부상 당한 그를 돌봤고, 그의 원고를 맥네어에게 건네줌으로써 그것을 지켜냈고, (동지들의) 여권들을 지켜냈고, 호텔에서 체포될 게 거의 확실했던 오웰을 구해냈으며, 어떻게든 비자를 받아 그들 모두를 구해냈다. 그러고도 아일린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략) 오웰은 '내 아내'란 표현을 37회 사용한다. 나는 그제야 깨닫는다. 아일린의 이름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표지. ⓒ생각의힘

동물농장에 가득 배인 아일린의 생각

아일린은 그 전부터 오웰의 원고 작업을 계속해 왔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의 최종 교열을 끝내고 출판사에 송고한 이도 아일린이다. 더 중요한 건 "조지 오웰이 자기 삶을 스스로 관리했다면 결코 가질 수 없었을 만큼 많은 시간"을 아일린이 제공해 준 점이다. 아일린은 에이전트와의 소통 등 조지 오웰 원고 작업에 필요한 모든 서신 업무를 처리했고, 가축·밭 일과 가사 노동을 전담했다.

"돼지들은 '파일', '보고서', '의사록', '각서'라고 불리는 수수께끼 같은 것들을 만들어내는 데 매일 엄청난 노동력을 쏟아야 했다. 그것들은 커다란 종이였는데, 글로 빽빽하게 채워져야 했고, 그렇게 채워지자마자 불태워졌다."(<동물농장> 중)

아일린은 1940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신설된 정보부 검열과에서 일하며 당시 수입이 없던 오웰을 대신해 생계를 책임졌다. 전쟁에 관한 뉴스를 검열해 내보내고 언론 보도된 내용을 검열하는 일이었다. 작가는 이 당시 아일린이 오웰의 <동물농장>과 <1984> 작업에 큰 영향을 끼쳤을 거라 분석한다. <동물농장>에 나오는 돼지처럼, 아일린의 별명도 돼지였다.

동물농장의 기획도 아일린에게서 처음 나왔다. 아일린은 친구들과 함께 모인 자리에서, 스탈린 비판 에세이를 쓰려고 했던 오웰에게 '이야기를 장편소설로, 내가 매우 좋아하고 한때는 직접 써보고 싶었던 동물이 나오는 우화로 써보라'고 제안했다. 그리곤 "매일 저녁 오웰은 아일린에게 그날 쓴 부분을 읽어주고, 그들은 함께 의견을 주고받았다."

이는 소수의 전기작가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한 작가는 "아일린과 오웰이 침대에 누운 채 한 장면, 한 장면을 이야기하며 함께 웃었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동물농장>이 그 가벼운 터치와 절제력에 있어 그토록 완벽한(거의 '오웰답지 않은') 이야기라면, 그 공의 일부는 아일린과의 대화에서 받은 영향, 아일린의 명석하고 위트있는 지성에 돌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작가는 오웰이 <1984>에 대해서도 "아일린이 썼던 시처럼" 책 제목을 바꿨다고 지적한다. 시를 좋아했던 아일린은 오웰보다 앞선 1934년 〈세기말, 1984〉라는 시를 발표했다. ‘텔레파시'로 사람들이 세뇌되는 디스토피아가 그려진 시다. 아일린은 옥스퍼드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영문학을 공부한 수재였다. 이후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심리학 석사과정을 밟다 조지 오웰을 만나 결혼했고, 이후 학위를 마치고자 했던 꿈을 이루지 못했다.

끝없는 외도, 성폭력... "성별 앞에서 멈추는 통찰력"

책엔 조지 오웰의 외도와 성폭행 혹은 성폭행 시도가 수시로 등장한다. 오웰이 강제로 입맞춤이나 성관계를 시도했다는 피해 증언도 수시로 인용된다. 한 피해 여성이 '몸부림을 치며 그만하라고 소리치는데도 스커트를 찢고 어깨와 왼쪽 엉덩이에 심하게 멍이 들게 했다'며 오웰의 강간 시도에 충격과 혐오감을 드러낸 글이 남아 있다. 오웰이 결혼 후에도 이전에 알던 여성에게 구애해 아일린이 분노하던 모습을 기억하는 지인도 있다.

오웰은 아일린이 2차 대전 중 오빠를 잃고 깊은 상심에 빠졌을 때도 외도했다. 그가 <BBC>에서 일했던 동안 최소 5명의 여성과 연애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중 한 당사자는 오웰이 "(자신에게) 너무 빠진 나머지 '아일린을 떠나겠다'는 말까지 했다"고 밝혔다. 이후 편집자로 이직한 직장에서도 한 여성 비서와 사귀었다. 어떤 여성들은 아일린에게 직접 '오웰이 나에게 관심이 없다'며 울면서 하소연해 아일린을 당황케 만들기도 했다.

아일린은 1945년 39살에 사망했다. 자궁 출혈과 극심한 빈혈로 오래 투병을 해온 터였다. 최소 한 달간의 입원과 수혈을 한 후 자궁적출 수술을 받아야 했던 아일린은 돈이 없어 결국 저렴한 수술 병원을 찾았다. 그리곤 그 시골 병원에서 수술을 받다 죽었다. 당시 오웰은 종전 취재 의뢰를 받고 프랑스로 건너간 터였다. 아일린은 1살 난 아기를 혼자 키우고 있었다. 작가는 오웰이 아일린이 건강악화와 과로로 고통스러워했단 걸 알면서도 갑작스레 프랑스로 떠났다고 꼬집었다.

조지 오웰은 "능동태를 쓸 수 있는 곳에 절대 수동태를 쓰지 마라"란 말을 남겼다. 글을 명확하게 쓰고 주어를 분명히 드러내란 의미다. 책의 우상희 편집자는 "오웰 자신이 아일린의 공로를 수동태로 덜어내고, '아내'라는 언급으로 이름을 대신했다"며 "전기 작가들은 시간 순서를 조작하고 아예 진실을 날조해 아일린의 존재 자체를 지우기에 이른다. 그렇게 '20세기의 위대한 작가'를 창조한다"고 소개 자료에서 지적한다.

작가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연유도 "왜 우리는 아일린을 알지 못했을까"라는 질문을 갖게 되면서다. 조지 오웰의 애독자였던 작가는 "식민지 권력의 탐욕스러움을 꿰뚫어 보는 그의 통찰력은 결코 성별 간의 관계로는 확장되지 않았다"며 "한 번에 몇 루피씩 주고 젊은 여자들을 사면서도 여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지했다"고 지적한다.

다만 작가는 "오웰의 작품은 나에게 소중하고, 지금 시대에도 중요한 텍스트"라며 "나는 오웰을, 아니 다른 누구도 '취소'하고 싶지 않다"고 밝힌다. 그는 "오웰이 만들어낸 '이중사고'(모순된 신념을 동시에 받아들이고 진실로 믿음) 개념은 중요한 진실을 드러낸다"며 "가부장제는 한 남자가 여자들에게 심한 행동을 하고도 여전히 고상한 인간으로 여겨질 수 있게 허락해 주는 '이중사고'의 예다"라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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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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