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여자보다 27배 더 죽는 사실은 성차별의 결과일까?

[오찬호의 틈새]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 던져야 할 질문

남성을 1로 놓고 여성이 평균적으로 얼마만큼의 급여를 받는지, 정치권력을 지녔는지, 고위직 진출 가능성은 있는지를 따지면 성차별이 드러난다. 이를 남성이 혜택을 받은 증거라 하면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많지만, 여성이 배제되었다고 해석하면 제법 수긍한다. 하지만 왜 남성이 배제된 건 따지지 않느냐는 사람은 언제나 있다. 초등학교 교사들 대부분이 여성이다. 공무원 시험 등 각종 고시 합격생 성비도 이미 여성이 더 많다는 등등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나는 특정 분야에 여성이 더 몰리는 현상을 앞서 언급한 성차별의 결과로 보아야 한다고 답한다. 누구는 고개를 끄덕이고, 누구는 입을 삐죽거린다.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은 너무 선명한 성차별의 현장이다. 교제 살인이라고 알려진 이 비극을 성별 변수 없이 살펴보는 건 불가능하다. 헤어지자고 해서 슬프고 화가 나는 건 성별 차이와 무관할 거다. 하지만 어떤 성별은 더 격분해 상대에게 위해를 가한다. 검색창에 '헤어지자는 말에'를 입력하고 살펴보면 금방 안다. 그 이유로 때린다. 찌른다. 성관계 영상을 유포한다. 상대의 반려견을 학대한다. 심지어 감금한다. 나아가 살해한다. 성별을 어찌 따지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이런 괴기한 반론을 마주할 때가 있다. "왜 산업재해로 죽는 사람의 절대다수가 남자라는 사실은 외면하나요?"

반사적 질문이다. 여기서 반사는 생물학적 감각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문화적 습관이라 함이 마땅하다. 타당하고 논리적이라고 믿는다는 거다. 버릇은 계속 이어진다. 사람을 죽이는 남자가 미친 거지, 왜 모든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하느냐는 말이 여지없이 따라온다. 맞는다고 치자. 그럼 왜 남자가 여자보다 더 미치는 건지를 따져봐야 할 거다. 설마, 호르몬의 남녀차이를 원인으로 짚을 건가? 아니면, 자녀 재생산을 위해 여성 쟁탈전을 벌였던 원시시대의 DNA가 남성들에게 흐르고 있다고 할 건가?

저 두 요인이 미세하게 존재한들, 그걸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이유랍시고 떠들 수 있는가? 아니기에, 성별 고정관념을 짚는 거다. 남자다움, 여자다움, 그리고 이에 기반해 남자가 여자를 바라보는 태도까지 말이다. 왜 논의하고 성찰해야겠는가? 그래야만, 한 명이라도 덜 죽기 때문이다.

▲ 서울의 한 학교 급식실. ⓒ연합뉴스

왜 여성의 산업재해는 기타 등등으로 분류될까

산업재해로 죽는 사람은 남자가 압도적이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023년 한 해에 13만6000명이 일터에서 죽거나 다쳤다고 인정받았다. 실제로는 더 많을 거다. 이중 10만2000명이 남자, 3만4000명이 여자다. 남자가 3배 많다. 사망자는 남자가 1912명, 여자 104명이다. 남자가 18배 더 많다. 이중에 사고사는 812명이다. 남자 783명, 여자 29명이다. 남자가 27배 더 많다. 업무로 인한 질병으로 인한 사망은 1204명이다. 남자 1129명, 여자 75명이다. 남자가 15배 더 많다.

이는 어떻게 분석돼야 할까? 일하다가 사고로 남자가 27배 더 죽는 분명한 사실을, 남성이 여성보다 차별받는 확실한 증거라고 따질수록 사망자가 줄어든다면 그렇게 봄이 마땅하다. 그럴까? 남자처럼 여자도 위험한 일을 해야 하기에 모든 일터의 노동자 성별을 50대 50으로 맞추면 현장에서 떨어져서, 깔려서, 끼여서, 부딪혀서, 물체에 맞아서, 무너져서 죽는 사람의 전체 숫자가 줄어들까? 감전, 폭발, 화재사고는 감소할까?

산재 사망자들은 '사람으로서' 차별받았다. 같은 노동자지만, 건설업 현장의 노동자는 더 위험하다. 건설업이 원래 그런 게 아니라, 위험하니 더 있어야 할 안전장치가 미흡해서다. 비용이 든다는 이유로 말이다. 여성이 아니라, 기업이 하지 않았다. 그 결과다. 같은 노동자지만 광업 현장의 노동자는 위험한 물질에 더 노출된다. 그 일이 원래 진폐증에 잘 걸리는 게 아니라, 위험성이 뻔히 드러났음에도 노동자의 건강을 신경 쓰는 시스템이 촘촘하지 못해서다. 여성이 아니라, 사회가 외면했다. 그 결과다. 그러니 산업재해 통계를 보며 던져야 할 질문은 이런 거다. 왜 화이트칼라보다 블루칼라들이,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더 죽는가? 왜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서, 본청보다 하청에서 더 죽는가? 그래야 구조가 보이고 무엇을 도려내야 하는지 선명해진다.

산업재해에 성차별 변수를 집어넣어야 할 때는, 여성의 죽음을 물을 때다. 여성 취업자 수에 산재 사망으로 인정받는 수치를 단순 대입하면 여성 중 99.99%는 죽음과 관련 없다. 하지만 이상하다. 남성보다 낮은 수치야 이해되지만 지난해 기준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 1300만 명이 무해한 환경에서 살아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안전해서가 아니라, 위험하더라도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여성의 죽음은 산재로 인정받아도 분류조차 명확하지 않다. 산재 업종별 수치를 보면 남성 1912명의 죽음은 건설업 478명(25%), 제조업 449명(23%), 광업 421명(22%), 운송업 189명(10%) 순이다. 80%가 구분된다는 거다. 하지만 여성의 경우 56%가 기타로 분류된다. 산업재해 전체로 보면 남성은 10만2,013명 중 25%가 여성은 3만4,783명 중 무려 79%가 기타 등등이다. (기타 수치에 주목한 건 정지윤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의 다음 글에서 참조했다. "일터의 아픈 몸, 왜 여성의 산재는 드러나지 않는가?"- 오마이뉴스. 2025. 3. 4.)

일을 하다 다치거나 죽는 여성 열에 여덟이 기타 등등이라는 건, 여성이 주로 종사하는 분야의 위험을 인지하는 그물망이 그만큼 촘촘하지 않다는 뜻이다. 음식을 조리할 때 발생하는 유해물질인 조리흄이 급식실에서 대량으로 발생한다는 건 당연한 상식이지만, 그에 따른 예방은 전혀 없었다. 여러 명이 폐암으로 죽고 사회적 문제가 되고 나서야 뒤늦게 전수조사가 이루어지고 환기실 개선이 논의된다. 이것도 지지부진하다. 밥하는 일은 건설현장의 노동과는 다르다고 여긴 결과다. 앞으로 이러한 '새로운' 산업재해는 계속 등장할 것이다.

이를 예방하려면, 산업재해로 인정받는 사람이 늘어나야만 한다. 현재의 시스템이 포착하지 못하는 여성의 산업재해를 찾아내야지만 일터의 안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 지가 보일 거다. 여성의 산재 인정률에 여성이 하는 일은 비교적 안전하다는 편견이 지나치게 개입한 건 아닌지도 따져야 한다.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콜센터 노동자들의 우울증, 요양병원 노동자들에게 흔하고 흔한 근골격계 질환을 그저 직업병 정도로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사회적 성찰이 필요하다. 방치하면 더 죽을 거고, 보살피면 덜 죽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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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찬호

오찬호 작가는 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2년 간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다. 친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사회학적 시선을 바탕으로 일상 속 평범한 사례에 어떤 사회구조가 얽혀있는지를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글을 쓰고 있다. 자기계발 강박이 능력주의로 연결되어 공동체를 어그러트리는 모습을 추적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2013)를 시작으로 대학의 기업화를 비판한 <진격의 대학교>(2015), 경쟁사회의 내면을 파헤친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2018) 등 많은 책을 집필했다. 최근작으로는 <세상 멋져 보이는 것들의 사회학>(2024), <납작한 말들>(202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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