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에 "그런다고 가자지구 문제 해결되나"

"직접 관여한 나라들이 해결해야 한다"입장…북미 대화 가능성엔 "외교 밀당 필요해"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사망자가 6만 명이 넘어서는 등 상황이 악화되자 오는 9월 유엔총회에서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겠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지만, 이재명 정부는 이같은 노력으로 가자지구 상황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14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지난달 프랑스가 언급한 이후 서방에서 확산되고 있는 9월 유엔총회에서의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 문제와 관련, 정부 내부에서 논의하고 있냐는 질문에 "일부 유럽 국가들이 '두 국가 해법' 그러더니 이번에는 국가 인정, (이거) 한다고 가자 문제가 해결되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건 좀 더 인류가 양심을 가지고 실질적으로 어떻게 거기서 일어나는 참혹한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거기에 직접 관여된 나라들이 (해결)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방 주요 국가들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국가 인정 선언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중동의 정의롭고 항구적인 평화에 대한 프랑스의 역사적 헌신에 따라, 프랑스는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기로 했다. 오는 9월 열리는 유엔 총회에서 이를 엄숙히 선언할 것"이라고 밝히며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이후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도 지난달 29일 연설에서 조건부이긴 하지만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 가능성을 언급했다. 캐나다 역시 이러한 뜻을 내비친 바 있고 지난 11일 호주 정부는 보도자료 형식의 입장문까지 발표하면서 이에 동참한 상황이다.

유럽 국가들뿐만 아니라 미국의 동맹국인 영국과 캐나다, 호주까지 나서서 이같은 입장을 밝힌 배경에는 그만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인식이 국제사회에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23년 10월 이후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6만 명이 넘는 팔레스타인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이스라엘은 아예 가자지구 점령을 목표로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

카타르 방송 <알자지라>는 13일(현지시간)에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최소 100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로 들어가는 물품을 봉쇄하면서 식량을 구하다가 사망한 사람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방송은 이날 가자시티 북부에서 구호물자를 배급하려던 지원 단체들을 겨냥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최소 12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또 가자지구 남부의 나세르 병원의 상황을 인용해 식량을 찾던 37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당사자인 이스라엘이 식량까지 봉쇄하며 팔레스타인을 사실상 없애려는 시도를 하고 있고 미국은 여기에 동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당사자의 의지만으로는 두 국가 공존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이 문제에 직접 관여된 나라들이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은 자칫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뜻으로 읽힐 수도 있다. 더군다나 이스라엘은 가자 시티를 점령하겠다고 선언하고 실제 행동에 나선 상황이다.

이에 대해 이날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정부가 이스라엘의 가자시티 점령을 용인할 수 있다는 뜻이냐는 질문에 "중동지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같이 노력하지만 직접 당사자들의 노력이 좀 더 필요하겠다는 취지"라며 "이스라엘의 점령을 지지한다는 해석은 맞지 않다"라고 답했다.

앞서 10일 외교부는 이스라엘의 가자 시(Gaza City) 점령 계획 승인에 대해 "가자지구의 상황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에 대해 엄중한 우려를 표명한다"며 "우리 정부는 두 국가 해법을 일관되게 지지해 왔으며 두 국가 해법 실현을 저해하는 모든 조치에 반대한다"라는 내용의 대변인 논평을 밝힌 바 있다.

외교부가 지지하는 '두 국가 해법'이 정확히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이 당국자는 "정부는 오슬로 협정(을 통한)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해 왔고 지금도 그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라고 밝혔다. 오슬로 협정은 1993년 9월 13일 중동평화협약안 서명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이 서로의 생존을 인정하고 이를 통해 각각의 독립국가로 나아가는 발판을 만든 선언이다.

한편 14일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이 본인 명의의 담화를 통해 북미 대화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밝힌 것과 관련, 조현 외교부 장관은 "미국에 가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및 백악관의 여러 참모를 만나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이 필요하고 기대한다고 이야기했다"며 "북한은 미국과 대화한다면 (자신들의 핵 보유를) 받아들이라는 식으로 나올 것이지만 미국은 현재까지 북한이 핵을 보유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서 여러 외교 '밀당'(밀고 당기기)이 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 조현 외교부 장관이 14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내신 기자단 대상 브리핑에서 외교현안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와 관련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핵 군축 협상을 고집하면 그 방향으로 대화가 이뤄질 수 있냐는 질문에 "완벽하게 비핵화를 전제하고 협상을 할 수 없듯이 핵 인정하고 핵군축 협상을 할 수도 없다"며 "어디선가 접점을 찾아서 협상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해 북한의 비핵화만을 고집하지 않은 상태에서 북미가 만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 당국자는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지난 8일 기자들과 만나 주한미군 병력 규모와 관련해 "숫자가 아니라 능력에 대해 생각한다"며 병력 감축을 시사한 데 대해 "크게 주목하지 않는다. 기술이 발전하니까 그렇게 볼 수 있다는 뜻"이라며 "(미국) 상원의원들을 만나 보니 (병력 문제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라고 밝혔다.

제80주년 광복절과 사도광산 노동자들에 대한 추도식 등 한일 간 과거사 문제가 다시 부각될 가능성이 높은 시점에서 이재명 정부가 이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이 당국자는 "과거사 문제는 잊어서는 안되고 일본에 기회 있을 때마다 이야기하고 변화 촉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우리가 경험상, 또 일본을 분석한 여러 책을 읽어봐도 왜 일본이 오늘날 일본인가. 어떤 사회적 유전자,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면 막 다그친다고 변하지 않고, 해달라고 가서 부탁한다고 변할리 없다"라며 "이 문제를 절대 무시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한다는 것이 원칙"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이 당국자는 조현 외교부 장관이 미국이 아닌 일본을 먼저 방문한 데 대해서는 "이재명 대통령의 지침"이었다면서 "이재명 정부에 대한 잘못된 프레임이 있었는데, 이번에 대통령이 일본을 먼저 가고 미국에 가면 미국 내에서 가지고 있던 또는 잘못 입력된 정부에 대한 편견이 일거에 깨끗하게 사라질 것이라고 본다. 그게 실용외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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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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