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플라스틱 협약 논의가 '미온적 국가'들로 인해 길어지고 있다. 플라스틱 생산 감축 약속에 소극적인 국가들이다. 여기엔 한국도 포함된다. 그러는 사이 지구에서 대량 양산된 플라스틱 쓰레기는 남반구의 가난한 나라로 지금도 수출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올해 내로 탈플라스틱 로드맵을 확정한다. 말레이시아, 케냐, 필리핀의 탈플라스틱 활동가 3명에게 한국이 세계 시민을 향해 가져야 할 윤리를 물었다.
동남아시아는 현재 전 세계 플라스틱 쓰레기(폐기물)의 종착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등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수입하는 주요 국가다. '부유국에서 빈곤국'이라는 일관된 방향성도 형성돼있다. 바젤 액션 네트워크(Basel action network)는 202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출 상위 10개국의 폐플라스틱 수출량 총 410만 톤 중 270만 톤(약 66%)이 '비 OECD' 국가로 들어갔다고 밝혔다.
이 중 최고 수입국이 말레이시아다. 말레이시아는 원래 폐플라스틱을 수입해 왔으나, 2018년 가장 주요한 수입국이던 중국이 폐플라스틱 수입을 전면 중단하며 그 자리를 메웠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말레이시아는 2023년 61만여 톤의 플라스틱 쓰레기를 수입하며 1위를 기록했다. 미국에서 건너간 쓰레기양만 10만 톤이 넘는다.
말레이시아 탈플라스틱 운동가 마게스와리 사가라린감(Mageswari Sangaralingam)은 이를 "쓰레기 식민주의"라고 말했다. 경제학자나 각국 정부는 '폐기물 무역'이라고 표현할지 모르나, 실상은 가난한 나라에 쓰레기를 밀어 넣으며 환경·건강 피해까지 전가하는 인종차별이자 착취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마게스와리는 "부유국들이 자신의 폐기물 처리를 스스로 책임지는 건 당연하다"면서 "그러나 부당한 쓰레기 수출 중단 만으론 플라스틱 오염에 대응하기엔 부족하다. 플라스틱 생산 자체를 줄이는 게 근본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프레시안>은 지난 10일 마게스와리 활동가와 서면 인터뷰를 통해 현재 말레이시아가 처한 위기 상황을 들었다.


플라스틱 과부하 말레이시아, 공중보건 적신호
마게스와리는 "현재 말레이시아의 쓰레기 처리 시스템은 과부하에 놓였다"고 전했다. 말레이시아는 2018년 중국의 쓰레기 수입 중단 이후 해외 쓰레기 밀수, 불법 투기 등의 문제로 심각한 몸살을 앓았다. 2018년 쓰레기 유입량이 급증하며 불법 쓰레기 처리 시설이 우후죽순 늘어났고 국토 곳곳에 거대한 쓰레기 더미도 형성됐다. 이후 규제가 대폭 강화됐으나, 마게스와리는 "쓰레기 밀수·불법 거래는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며 "토양·수질·대기오염, 유해 물질 노출에 따른 각종 질병 등 플라스틱 오염으로 인한 환경 오염과 공중보건 위기가 정말 심각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마게스와리는 또 다른 예로 미세플라스틱 문제를 설명했다. 쓰레기는 시간이 지나면 결국 해수, 담수로 유입되는데, 이때 미세플라스틱으로 분해돼 먹이사슬에 유입되고 결국 인체에도 누적되는 등 인간 사회와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고등어, 꼬막 등 해양 생물을 연구한 결과 개체 90% 이상에서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됐다'는 등의 최근 연구들을 제시하며 말레이시아 시민들의 두려움을 전했다.
마게스와리는 "특히 과도한 포장재나 규제되지 않는 플라스틱 사용 때문에, 쓰레기 관리 인프라가 전혀 없는 농촌 주민들은 강, 해변, '사바(Sabah)'나 '사라왁(Sarawak)' 같은 외딴섬, 국경지역 등에 쓰레기를 투기하거나 태우는 경우가 많다"고도 말했다.
플라스틱 쓰레기 수입 상위 국가엔 네덜란드, 독일 등 유럽 국가들도 포함돼있다. 바젤 행동 네트워크의 2023년 폐플라스틱 수입국 상위 10개 명단을 보면, 1위 말레이시아, 3위 인도네시아를 제외하면 2위, 4위, 5위가 각각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이다.
그러나 마게스와리는 "유럽연합 2023년 보고서에도 'EU 밖으로 나가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EU 내에서 거래되는 쓰레기보다 훨씬 질이 낮다'고 적혀있다"고 말했다. 즉 쉽게 재활용 할 수 있는 플라스틱은 유럽 내에서 주로 거래되고, 재활용이 어려운 쓰레기는 외부로 방출된다는 뜻이다. 동남아시아 국가에 버려지는 폐플라스틱 상당수는 재활용되지 않고 소각되거나 매립지에 방치된다고 알려져 있다.

과잉생산, 과잉소비, 쓰레기는 가난한 나라에
마게스와리는 최근엔 전자 폐기물 속 플라스틱 문제로 씨름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경제학자나 관료들이 국익과 경제적 이익을 이유로 전자 폐기물 수입을 전면 허용해야 한다는 논의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다면 중국은 왜 (전자 폐기물 등 쓰레기) 수입을 금지했고, 왜 금지를 7년이나 유지하고 있겠느냐"라며 "장기적으로는 오염 비용이 이익을 초과한다는 계산을 내렸고, 자국의 폐기물 관리에 투자하는 방향으로 전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말레이시아는 2022년 4억 1100만 킬로그램(kg)의 전자 폐기물을 배출했으며, 2025년에는 2450만 개의 전자폐기물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쓰레기는 '돈'이 아닌 책임이다. 우린 이를 환경에 오염으로 유출하지 말고 책임있게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게스와리가 보여줬던 미세플라스틱 연구 자료엔 미세플라스틱이 주로 섬유 형태로 검출됐다는 결과가 공통적이었다. 즉 섬유 제품이 주요 오염원 중 하나라는 가능성이 시사되고 있었다.
그는 "패스트 패션으로 의류 생산과 소비가 가속화하면서 섬유 폐기물이 증가하고 있다"며 "저품질 의류는 기부나 중고 의류 시장이란 명목으로 남반구(Global South)로 흘러 들어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나에는 매주 약 1500만 벌의 옷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이 중 최대 600만 벌이 폐기물로 처리돼 매립되거나 소각된다"고 지적했다.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도 마찬가지로 겪고 있는 문제다.
그러면서 "자본주의 시스템은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하고 소비자들이 더 많이 사게 유혹하며, 새 제품이 나오면 기존 제품을 버리도록 만든다"며 "패스트 패션, 전자기기, 일회용품 등의 쓰레기가 전례 없이 급증하고, 이에 따라 매년 수백만 톤의 쓰레기가 수송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마게스와리는 "플라스틱 쓰레기 거래를 효과적으로 통제하려면, 근본 원인인 과도한 플라스틱 생산을 해결해야 한다"고 봤다. 이를 전제로 "부유국들은 자국 폐기물 관리와 처리를 책임지고, 환경·사회적으로 건전한 폐기물 관리 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플라스틱 감축 '의무화는 싫다'는 한국 정부
그래서 마게스와리는 지난 8일부터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 플라스틱 협약 제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 속개회의(INC-5.2)에 참관하고 있다. 국제사회에 의무를 부과할 수 있는 협약을 만들어, 각국이 플라스틱 생산을 감축하고 유해 플라스틱 생산을 금지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는 국제 플라스틱 협약을 논의하는 공간이다. 국제 플라스틱 협약은 2022년 5월 유엔환경총회에 참여한 175개국의 만장일치로 성안됐고, 5차 회의에 걸쳐 구체적 내용을 마련키로 약속했다. 지난해 11월까지 5차 회의가 완료됐으나, 일부 문구를 둘러싸고 합의를 이루지 못해 5차의 속개회의(5.2)가 열렸다.
한국 정부는 합의를 이루지 못한 원인 중 하나다. 한국은 플라스틱 감축에 '미온적 국가(Lower ambition countries)'로 분류된다. 미온적 국가 그룹은 협약의 핵심 조항인 '환경과 건강에 위험한 유해 플라스틱 제품을 감축해야 한다'를 두고 의무가 아닌 '적절한 조처를 해야 한다'는 문구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당사국들이 협상 연장을 택해 논의를 재개한 것.
마게스와리는 한국 시민을 향해 "세계 각국, 한국 정부와 시민은 플라스틱 생산·소비·폐기의 결과를 직시해달라"며 "자신의 쓰레기를 다른 나라로 보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줘선 안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제 협약이 없으면 플라스틱 제품과 쓰레기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생태계, 인간 건강과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줄 것"이라며 "우리는 시급히 지구적 플라스틱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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