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의 배달앱 시장에서는 추격전이 벌어졌다. 2위 업체인 쿠팡이츠가 1위 업체인 배달의민족(이하 배민)과의 격차를 좁히기 시작한 것이다. 쿠팡이츠는 1400만 명에 달하는 쿠팡 유료 멤버십 회원에게 묶음 배달의 경우 무제한 무료 배달을 제공하는 공격적인 전략을 사용했다.
그러자 배민도 무료 배달 경쟁에 뛰어들었다. 유료 멤버십을 도입하고, 음식점에 적용하는 중개수수료를 인상하고, 포장 주문도 수수료를 받기 시작했다. 라이더에게 지급하는 배달비마저 삭감했다. 그래도 시장점유율 격차는 올해 중반까지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 지난 4월 쿠팡이츠의 월간 활성 사용자 수는 1044만 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딜리버리히어로의 '아시아 문제'
이런 상황은 배민의 모회사인 딜리버리히어로(Delivery Hero)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통상 딜리버리히어로의 GMV(총 거래액)에서 아시아 지역 GMV는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데, 2024년에는 아시아 지역 GMV의 비중이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얼마 전 딜리버리히어로가 발표한 2025년 1분기(Q1) 실적도 비슷한 양상을 보여준다. 2025년 1분기에 딜리버리히어로는 글로벌 성장세를 유지했으나 아시아 지역 GMV(총 거래액)는 전년 대비 8% 감소했다. 딜리버리히어로의 가장 큰 시장은 한국이므로, 아시아 GMV의 감소에서도 한국 GMV가 핵심일 가능성이 높다.

지난 4월에는 <월스트리트저널>이 딜리버리히어로의 아시아 실적이 좋지 않아서 주가가 떨어졌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어 지난 5월에는 경제전문 매체인 <시킹 알파(Seeking Alpha)>가 딜리버리히어로에 '아시아 문제(Asia problem)'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투자자들은 딜리버리히어로에 아시아 시장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압력을 가하고 있으며, 아시아 시장의 성공은 한국 시장에 달려 있다.
반전의 요인, 한그릇 배달
그런데 올 6월부터 한국 배달앱 시장에서 배민의 점유율이 다시 증가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UBS에서는 이를 두고 "올바른 방향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고 평가했다. 6월 실적이 발표된 직후 딜리버리히어로의 주가도 6퍼센트나 상승했다.
"혼자 먹을 때 난감했는데"…인기 폭발한 '배민 서비스' 뭐길래(25.08.01 한국경제)
"이제 '최소주문금액' 안 따져도 되네?"…배민 '한그릇' 승부수 통했다(25.07.09 서울경제)
"이렇게 싼데 배달비도 '0원'이라고?"…배민, 1인 가구 주문 폭주하자 결국(25.07.29 서울경제)
'한그릇배달' 서비스 시작한 배민… 점주들 "배달 개미지옥 빠지는 꼴"(25.06.16 중부일보)
[단독]배민 이어 쿠팡이츠·요기요도 '한그릇' 마케팅…제2의 무료배달?(25.07.22 머니투데이)
배달의민족, '한그릇' 무료 배달 10월까지 연장…이용자 10배↑(25.07.30 세계일보)
점유율 상승의 비결 중 하나는 배민이 지난 4월 말 처음 출시한 서비스인 '한그릇 배달'이다. 한그릇 배달은 1인 가구를 겨냥한 서비스로서, 처음에는 일시적인 이벤트로 기획되었다가 10월 말까지 연장된 상태다.
먼저 고객의 입장에서 보자. 노동시간이 긴 한국에서 혼자 사는 사람이 귀가하는 길에 식재료를 구입하고 집에 가서 직접 요리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이럴 때 치킨 등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1인분만 무료로 배달받아 손쉽게 즐긴다는 선택지는 매력적이다. 그래서인지 한그릇 배달 서비스는 출시된 지 70여 일 만에 이용자가 100만 명을 넘겼다.
배민의 한그릇 배달 주문 건수가 급증하자 경쟁 업체인 쿠팡이츠와 요기요도 유사한 선택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무료 배달'처럼 '한그릇 배달'도 업계 전반으로 번져가는 것이다. <머니투데이>는 '한그릇 배달'을 '제2의 무료 배달'이라고 불렀고, <세계일보>는 '한그릇'이 "배달 산업의 미래를 보여주는 신호탄"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한그릇 배달은 이벤트
다음으로는 음식점주의 입장을 살펴보자. <서울경제>는 한그릇 배달로 "입점업체도 수익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런 보도에 달리는 댓글의 내용은 긍정적이지 않다. "고스란히 점주들에게 전가하는 거 아닌가?" "결국엔 지원 없앨 것"이라는 댓글들이 보인다. 이게 무슨 말일까?
배민의 '한그릇 배달'은 이벤트의 성격을 띤다. 배민은 한그릇 배달을 이용하는 음식점을 앱 광고에 노출해 주고, 한정적으로 배달비를 1000~1500원 지원해 준다. 또 배달앱 상생협의체가 진행될 무렵 배민은 1만 원 이하 주문에는 중개 수수료를 받지 않겠다고 선심 쓰듯이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음식점주가 배민 한그릇 배달 카테고리에 입점하려면 조건이 있다. 음식을 기존 가격에서 약 20% 할인한 가격으로 판매해야 한다. 쿠팡이츠의 경우 최소주문금액 하향을 요구한다.
1만 원에 팔던 음식을 갑자기 8000원에 판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결국 가격을 미리 올려놓고 1만2000원에서 20%를 할인해서 올리는 일이 벌어진다. <중부일보>가 취재한 자영업자들은 "팔수록 적자라 점주 입장에서는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증언했다. 나중에 가서 배달비 지원마저 끊기면? 한그릇 배달에 대한 고객 수요는 그대로 남는데 음식점주는 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벤트성 배달비 지원이 중단되고 나서도 한그릇 배달이 유지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배달 운임 깎여 폭염 속 주행…라이더 수명도 깎여나간다(25.07.17 경인일보)
"한 그릇 팔아 얼마나 남는다고" 한숨만…심하면 3할까지 떼간다는 수수료(25.07.01 아시아경제)
한그릇 배달은 경쟁이 치열하기로 유명한 한국 배달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출혈경쟁의 성격을 띤다. 그 점에서 배민이 시작한 한그릇 배달은 쿠팡이츠가 먼저 시작했던 무료 배달 경쟁과 본질적으로 같다. 문제는 이 이벤트식 출혈경쟁의 비용을 누가 지불하고 있느냐다. 플랫폼 기업이 그동안 영업이익으로 벌어들인 돈에서 전액 지출하는 걸까? 아니면 음식점주에게서 갖가지 명목으로 돈을 더 받아낸다거나 라이더에게 지급할 배달 운임을 삭감해서 이벤트를 진행하는 걸까? 후자라면 문제가 있다. 이미 지난해 쿠팡이츠와 배민의 무료 배달 경쟁이 벌어지는 동안 라이더들은 배달 운임을 삭감당했다.
배달앱의 라이더 운임 삭감



지난해 말부터 2000원대 운임이 늘어났다고 라이더들은 말한다. <그림 2>와 <그림 3>에 표시된 배달 운임 액수만 봐도 1년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알게 된다. 운임의 하한은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고 상한은 조금 올라갔다. 거리가 먼 주문일 때만 높은 금액이 책정될 테니 하한가가 더 중요하다. 그나마 서울은 배달 운임이 2500원 선에서 시작하지만, 비수도권으로 가면 기적의 1000원대 운임도 등장한다(<그림 4> 참조).
공공연한 운임 삭감도 이뤄졌다. 배민은 올해 4월 1일부터 한집배달 기본 운임을 3000원에서 2500원으로 내렸다(서울 기준). 구교현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에게 라이더 운임 삭감에 대해 물어봤더니 '라이더들의 명세서를 모아서 분석해 본 결과 작년 동기 대비 평균 단가가 20~30% 삭감된 것으로 확인된다"고 답해줬다. 건당 운임이 감소하는 조건에서 라이더들은 수입을 유지하기 위해 더 오랜 시간 일하고 더 위험하게 운전할 수밖에 없다.
배달앱 영업이익은 매년 수천억 원인데 라이더 운임은 점점 내려가는 현실. 라이더도 알고, 자영업자도 알고, 라이더를 겸하는 자영업자는 더 잘 안다. 그러나 언론은 운임 이야기를 거의 안 한다.
<아시아경제>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배달 플랫폼 매출 중 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율"이 24%에 달한다는 통계를 소개했다.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 기사는 "수수료 구성 항목 중에서는 배달수수료가 39.2%로 가장 높았"다면서 마치 라이더에게 지급하는 배달 운임이 자영업자를 힘들게 하는 요인인 것처럼 보도했다.
<아시아경제>만 그런 게 아니다. 언론은 자영업자가 플랫폼에 지불하는 여러 가지 비용을 통으로 묶어서 '수수료'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여기서 '배달수수료'는 플랫폼이 수취하는 다른 수수료와 달리 배달 노동자의 임금, 즉 운임이다.
구조적인 문제
라이더가 폭염 속에서 또는 빗속에서 배달 노동을 하는 장면을 떠올려 보자. 누군가는 그 노동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며, 플랫폼 기업이 자선단체가 아닌 이상 무료 배달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려면 누군가를 쥐어짤 것이다. 지금 같은 구조에서는 결국 무료 배달이나 한그릇 배달은 음식값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소비자에게도 피해로 돌아온다. 이런 구조를 계속 용인할 것인가? 극한의 어려움에 처해 있는 자영업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수수료 상한제 등의 강제성 있는 규제를 시행하고, 배달 운임을 삭감당하는 라이더의 생존권을 위해서는 화물 안전운임제와 비슷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딜리버리히어로 주가를 높이라는 주주들의 압력보다 한국 정부가 배민에 가하는 규제가 더 강하고 확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어느 자영업자가 SNS에 올린 글을 소개한다. "배달의민족 탈퇴 3개월째. 매출 30~50% 감소임에도 직원 월급 및 재료값이 밀리지 않음."(이 사업주는 배민과 쿠팡이츠를 모두 탈퇴했다고 한다.)
※친절한 조언을 해주신 구교현 라이더유니온 위원장님과 유튜버 자영업다이어리님께 감사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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