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 수리공에서 세계사 바꾼 남자
제임스 와트(James Watt, 1736~1819)라는 이름을 들으면 "아, 전력 단위 그거?" 하고 넘어가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 양반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말 타고 출근하고, 공장 대신 집에서 물레 돌리며 실 뽑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와트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출신으로, 처음엔 대학에서 과학기구나 고치는 '수리공'으로 일했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보며 "저 친구 평생 나사나 조이겠네" 했을 테지만, 인생이란 게 어찌 될지 모르는 법. 1764년, 그는 토머스 뉴커먼(Thomas Newcomen, 1664~1729)이 만든 낡아빠진 증기기관을 수리하다가 "이거 왜 이렇게 비효율적이지?"라며 의문을 품는다.
주전자 보고 깨달음? 그건 낭만주의자들의 지어낸 이야기
흔히 "와트가 주전자에서 김 나오는 걸 보고 증기기관을 발명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완전히 거짓말이다. 이건 나중에 낭만주의 시대 사람들이 천재의 탄생을 극적으로 포장하려고 만든 꾸며낸 이야기일 뿐이다.
실제로 와트는 뉴커먼 기관의 치명적 약점을 냉철하게 분석했다. 당시 증기기관은 실린더를 계속 데웠다 식혔다 반복해야 했는데, 이게 석탄을 미친 듯이 잡아먹었다. 와트의 해결책은 단순하지만 천재적이었다: "따로 식히면 되잖아?"
1769년, 그는 '분리 응축기'라는 장치를 특허 받았다. 이게 뭐냐면, 증기를 식히는 공간을 따로 만들어서 본체는 항상 뜨겁게, 냉각은 딴 데서 하는 것이다. 효율이 무려 75%나 올랐다. 석탄 값이 4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사업가 만나니까 인생 달라지더라
하지만 천재도 돈이 없으면 허공에 외치는 것과 같다. 와트는 초기 투자자 존 로벅(John Roebuck, 1718~1794)이 파산하면서 곤경에 처했다. 그때 나타난 게 매튜 볼턴(Matthew Boulton, 1728~1809)이라는 버밍엄의 사업가다.
볼턴은 와트를 보자마자 "이 친구, 돈 된다!"를 직감했다. 1775년, 둘은 '볼턴 앤 와트' 회사를 차렸고, 의회를 로비해서 특허를 25년 연장 받았다. 권력과 자본의 결합이 혁신을 만든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물론 나중에 이 특허독점 때문에 다른 발명가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기다려야 했지만 말이다.
광산에서 공장까지, 세상을 바꾸다
와트의 증기기관은 처음엔 광산에서 물 퍼내는 데 쓰였다. 그런데 1781년, 그는 왕복운동을 회전운동으로 바꾸는 '유성 기어 장치'를 개발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펌프질만 하던 기계가 이제 톱니바퀴를 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방적공장, 제철소, 제분소... 온갖 곳에서 와트의 증기기관이 돌아갔다. 사람 힘으로 하루 종일 해야 할 일을 기계가 몇 시간 만에 해치웠다. 자본가들은 환호했고, 노동자들은... 글쎄, 그들의 심정은 복잡했을 것이다.
산업혁명의 심장부에서
와트의 증기기관은 산업혁명의 심장이었다. 영국은 세계최초의 공업국가가 됐고, 맨체스터와 버밍엄 같은 공업도시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증기기관차, 증기선이 등장하면서 사람과 물자가 전에 없이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공장의 매연이 하늘을 뒤덮었고, 노동자들은 하루 14시간씩 기계 앞에 묶여 있었다. 아동노동이 만연했고, 도시빈민가는 질병의 온상이 됐다. 와트는 기술자였지, 사회운동가는 아니었다. 그의 발명이 만든 세상의 어두운 면은 나중에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1870) 같은 작가들이 고발해야 했다.
마력으로 말의 자존심을 짓밟다
와트는 자기 기계의 성능을 설명하려고 '마력(馬力)'이라는 단위를 만들었다. 말 한 마리가 할 수 있는 일을 기준으로 삼은 건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게 말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우리 기계는 말 50마리 힘이에요!" 이렇게 광고하니, 사람들이 "그럼 말 50마리 먹일 필요가 없네?" 하고 기계를 사버렸다.
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증기기관은 동물의 시대를 끝내고 기계의 시대를 열었다. 와트 본인도 자기가 얼마나 큰 변화를 일으켰는지 다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특허 괴물 논란도 있었다
와트는 기술자로서는 훌륭했지만, 특허 전쟁에서는 꽤 독한 면을 보였다. 25년 연장된 특허를 방패삼아 다른 발명가들의 개량을 막아섰다. 조나단 혼블로워(Jonathan Hornblower, 1753~1815) 같은 발명가는 복합 증기기관을 만들었다가 와트의 소송에 걸려 파산했다.
혁신가가 나중에 혁신을 막는 자가 되는 아이러니. 1800년 특허가 만료되자마자 리처드 트레비식(Richard Trevithick, 1771~1833) 같은 후배들이 고압 증기기관을 개발하며 기술이 한 단계 더 도약했다. 와트가 일찍 물러났다면 역사가 더 빨랐을지도 모른다.
이름이 단위가 된 남자
1819년, 와트는 83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882년, 국제 전기학회는 전력의 단위를 '와트(Watt)'로 정했다. 전구 60와트, 전자레인지 1000와트... 우리는 매일 그의 이름을 쓰면서도 그게 누군지 잘 모른다.
한 수리공의 호기심이 증기기관을 고쳤고, 증기기관이 공장을 돌렸고, 공장이 세상을 바꿨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산업사회의 뿌리가 여기 있다. 와트가 없었다면? 아마 우리는 지금도 농경사회에서 해 뜨면 일어나 해 지면 자는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게 더 행복한 삶이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와트의 증기기관은 우리에게 풍요를 줬지만, 동시에 환경오염, 노동착취, 자본주의의 모순이라는 숙제도 함께 안겨줬다.
역사는 전진했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 전진이 올바른 방향이었는지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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