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나 성인들과 성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 가끔 묻는다. "아기가 어떻게 태어나는지 언제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난자와 정자가 만나 임신이 된다는 생물학적 지식은 누구나 공교육에서 배운다. 문제는 난자와 정자가 어떻게 만나는지의 미스터리다. 손만 잡아도 임신이 되는지, 키스를 해야 하는지 등 온갖 의문 끝에 비로소 사실을 알게 되는, 그 시점과 경위. 사람과 사람 간의 성적 행위에 대해 '진짜' 알게 되는 과정은 여전히 천차만별이다.
기억해보면 나는 중학교 때 가정 선생님을 통해 배웠던 것 같다. 사실 '배운' 것은 아니었다. 난자와 정자가 어떻게 만나는지 학생들이 집요하게 물으니, 선생님이 흘리듯이 한 단어를 교실에 남기고 떠났다. "똑딱단추 같은 거야." 나머지는 학생들의 추측과 상상에 맡겨두고 이후 그 어떤 수업에서도 성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지 않았다.
2025년의 세상은 다를까? 대학생들에게 물어보면 여전히 인류의 탄생은 비밀이거나 금기사항인 것 같다. 거친 조사이긴 하지만, 공식적인 교육을 통해 배웠다는 사람은 절반 수준이고, 대부분 친구를 통해 알게 되거나 영상, 검색을 통해 알았다고 응답한다. 부모가 알려주는 경우도 별로 없다. 아기가 어떻게 태어나는지, 사실은 인간으로서 궁금한 게 당연하고 알아야 하는 이 지식을, 각자 어려서부터 혼자 궁금해하고 추측하다 우연이나 자력으로 배운다.
책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는 난자와 정자가 만나는 과정에 관해 돌려 말하지 않는다. 내가 어떻게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는지 궁금한 아이에게, 아주 친절하게 엄마와 아빠의 몸과 행위를 사실 그대로 보여준다. 음침하고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사랑이 담긴 즐겁고 행복한 일련의 과정으로 묘사한다. 그렇게 배운다. 아, 사람은 이렇게 태어나는구나.
이 책은 1971년 덴마크 작가 페르 홀름 크누센이 지은 책인데, 한국에서는 2020년 여성가족부가 이 책을 성인지 감수성 교육 도서 중 하나로 학교에 배포했다가 회수한 사건이 있었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보수 개신교계가 '조기 성애화' 우려가 있다며 반발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공공도서관에 민원을 넣어 책 폐기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내가 책을 빌렸던 공공도서관에서도 이 책이 사라졌다.

반지성, 반다양성, 반평등을 주장하는 '성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성을 무지의 영역으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침묵하는 다수의 책임도 있을 것이다. "발랑 까졌다"라는 말을 수치스러운 욕으로 배우며 자란 이들에게는 성은 "몰라야 하는 것"이었다. '건전한' 아동·청소년이란 성에 관해 모를뿐더러 궁금해하지도 않아야 하는 존재였다. 이차성징을 겪으며 내 몸과 마음이 변화하고 있는데 그걸 궁금해하지 말라니, 얼마나 무책임한 요구인가.
성인이 되어 이 사실을 깨달았더라도 금기를 깨고 가르치기는 어렵다. 성관계를 통해 자녀를 출산한 부모조차 성에 관해 자녀에게 제대로 말할 수 없다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부끄러워하는 건가 싶다.
더 큰 문제는 의도적으로 무지를 종용하는 사람들이다. 아동청소년을 '우민화'하려고 정부에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이 있다. 얼마 전 극우 단체인 리박스쿨이 학교 현장에 침투한 사실이 알려져 세상을 놀라게 했다. 리박스쿨과 관련 극우 개신교 단체는 동성애 부정, 임신중지 단죄, 차별금지 반대를 '교육' 내용에 주요하게 포함했다. 극우가 동성애 혐오, 반페미니즘, 반평등을 부르짖는 이유가 뭘까? 그들이 말하는 기독교적 질서를 세우기 위함이다. 극우가 꿈꾸는 기독교적 질서란 무엇일까? 인류의 다양성, 자유, 평등이 인정되지 않는, 그들이 해석하는 신이 정한 삶을 사는 세상이다. 성교육은 이런 신정국가를 만들기 위한 최전선에 있다.
그럼 왜 무지하게 만드는가? 사람을 우민화하는 것은 지배를 용이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격언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특히나 교육열이 지나쳐서 문제인 한국 사회에서 이 격언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성에 관해 무지하게 만드는 건, 몸에 대한 타인의 침범에 취약하게 만들겠다는 의도다.
심지어 나의 몸이 내 것이 아니라는 방식의 교육은 사람을 폭력에 무방비한 상태로 만든다. '너의 몸은 신의 것'이라 말한 뒤 종교 지도자가 신의 뜻을 해석한다고 자청해 성폭력을 정당화하는 행태를 우리 사회는 적지 않게 본다.
성교육이란 내가 나의 몸을 알고 나의 몸에 관해 스스로 판단하며 타인의 침범에 대해 통제권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다. 성교육은 인간의 성과 사랑에 관해 분명하고 직접적이며 정확한 지식을 습득하도록, 이를 삶의 일부로 긍정적이고 편안하게 받아들이며 내가 '나'로서 살 수 있도록, 어린 시절부터 배우고 성숙시켜야 할 필수적인 교육이다.
그런 성교육을 '조기 성애화'라니. 이에 반해 무지를 가르치는 교육, 인간의 다양성을 부정하는 교육, 타인에 의한 억압과 지배에 순응하는 인간을 만드는 교육은 애초에 '교육'이 아니다. 반지성, 반다양성, 반평등을 외치는 극우의 '성교육'은 대한민국 헌법이 허용하는 교육이 아니다.

극우 세력으로부터 포괄적 성교육을 구하라
서울시가 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교육현장에서 '포괄적 성교육'과 '섹슈얼리티'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도록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 '연애', '포궁', '성소수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고, 대신 '이성교제', '자궁', '사회적 소수자 및 약자'라고 부르라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런 지침의 배경에 극우 개신교의 개입이 있었다. 인간의 성적 다양성을 지우고 자연스러운 성적 감정과 욕망을 외면해 몸을 도구화시키는 반인권적 요구를 서울시가 받아들인 것이다.
성과 종교가 일체화됐던 역사가 있다. 종교가 사회를 지배하던 서구 중세 시대가 있고, 아직도 종교가 절대권력을 가지는 일부 국가가 있기도 하다. 종교가 정치를 지배하는 국가는 합리성에 기초한 민주주의가 불가능하다. 초현실적 존재인 신에게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고, 신의 뜻을 해석하는 권력을 일부가 독점함으로써, 지배 세력이 누구든 마음대로 단죄하고 처벌하며 통제하는 국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신정국가에서 성은 일상을 통제하는 주요 수단으로 등장한다. 동성애 처벌의 역사도 그렇게 중세시대 종교적 교리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하지만 신을 빌미로 인간을 억압하는 국가를 용인하지 않는 방향으로 인류 역사는 발전해 왔다. 오히려 세계의 종교인들은 1948년 채택된 세계인권선언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해 모든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인류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데에 보편적 가치가 있다고 의견을 모았다.
종교적 이유로 성소수자를 단죄했던 국가들은 과거를 반성하며 인간의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인간의 섹슈얼리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사람 간 경계를 존중하고 소통할 줄 아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노력해 왔다.
서울시가 금지어로 언급한 '포괄적 성교육(comprehensive sex education)'은 그렇게 발전한 교육이다. 포괄적 성교육의 효과는 이미 세계적으로 수많은 연구를 통해 검증됐다. 골드파브와 리버만은 지난 30년간 포괄적 성교육의 효과를 검증한 논문 39편을 통해 포괄적 성교육이 성적 다양성에 대한 포용성을 높이며, 괴롭힘과 폭력을 줄이고, 건강한 관계 형성과 정서적 발달에 도움을 주고, 미디어 리터러시를 향상시킨다고 분석했다.
성교육은 어린 나이에 시작할수록 효과적이다. 어릴 때 섹슈얼리티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다면, 건강한 섹슈얼리티 형성에 필요한 지식, 태도, 기술을 오랜 시간 발달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아동이 자신의 몸에 대해 주체적이고 긍정적이면서도 다양한 타인을 포용할 줄 아는 행복한 시민으로서 살아가도록 하는 것, 2025년을 살아가는 이 시대에 그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다.
극우는 역사적 왜곡과 폭력적 선동으로만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게 아니다. 극우는 성에 관해 인류가 발전시켜 온 지성을 부정하고, 동료 구성원의 다양성을 부정하고, 자유롭게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부정함으로써 사회를 억압한다. 극우는 지금도 성을 이유로 누군가를 단죄함으로써 사회에 공포를 심고 수치감을 주며 사람을 취약하게 만든다. 이런 극우에 서울시가 동조했다니 개탄스럽다. 극우로부터 포괄적 성교육을, 우리의 민주주의를 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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