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어른' 자립준비청년을 아시나요?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기를…

열여덟, 갑자기 어른이 되어야 하는 나이

우리 사회에는 만 18세가 되자마자 갑자기 '어른'이 되어야 하는 청년들이 있다. 바로 '자립준비청년'이다. 아동복지시설(아동양육시설, 공동생활가정)이나 가정위탁에서 보호받다가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경우를 말한다.

2022년도부터 원하는 경우 만 24세까지 연장이 가능하지만, 이것도 임시방편일 뿐이다. 대부분의 또래가 부모의 보살핌 속에서 대학 진학이나 취업을 준비할 때, 자립준비청년은 주거부터 생계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가야 한다.

나아지지만 아직은 어려운 현실

현재 서울에 거주하는 자립준비청년은 1509명(2024년 5월 말 기준)이며, 매년 150명(평균) 정도가 사회로 나오고 있다. 최근 5년간 전국에서 보호 종료된 자립준비청년은 9970명으로 해마다 2000여 명이 원가정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사회로 나오는 상황이다.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2023 자립지원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상황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주요지표(삶의 만족도, 자살생각 유경험률, 대학 진학률, 취업자 비율, 평균 소득)가 전반적으로 개선된 것으로 측정되었다. 자립준비청년의 대학 진학률은 69.7%로 2020년(62.7%)보다 7%p 상승했고, 취업자 비율(고용률)은 52.4%로 2020년(42.2%)에 비해 10.2%p 상승했다.

그러나 여전히 우려스러운 지표도 있다. '최근 1년간 심각하게 자살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에 응답한 비율이 18.3%나 됐으며, 주된 이유로 우울증 등 정신과적 문제(30.7%), 경제적 문제(28.7%), 가정 생활 문제(12.3%) 등이 나타났다. 또한 2021년 기준 보호 종료 이후 5년 이내의 자립준비청년 1만1397명 중 20.2%에 달하는 2299명이 연락 두절 상태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자립준비청년들이 겪는 구체적 어려움들은 일반 청년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주거 불안정이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다. 보증금을 마련하기 어려워 고시원이나 원룸을 전전하며, 때로는 노숙을 경험하기도 한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대학 진학률(69.7%)이 전국 평균(72.8%)보다 낮고, 학업 중단 이유로도 '경제적 어려움(27.9%)'이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무엇보다 '관계의 빈곤'이 가장 큰 어려움이다. 아플 때 함께 병원에 가줄 사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조언을 구할 어른, 명절에 함께 보낼 가족이 없는 현실은 자립준비청년을 더욱 고립시킨다.

▲ 지난 2022년 11월 보건복지부의 자립준비청년 지원 보완대책 발표 모습. ⓒ연합뉴스

늘어나는 정책 지원

다행히 정부와 지자체는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지원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경제적 지원의 대폭 확대가 가장 눈에 띈다. 2024년부터 자립수당이 월 50만 원으로 인상되어 보호종료 후 5년간 지급되고, 자립정착금은 전국 17개 시·도에서 1000만 원 이상 지급하고 있다. 특히 서울시는 올해부터 전국 최초로 자립정착금을 2000만 원으로 상향했고, 2025년부터는 보호종료 5년 이내 자립준비청년에게 주거비를 월 최대 20만 원까지 신규 지원 예정이다.

제도적 개선도 존재한다. 2024년에는 두 가지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첫째, 지원 대상이 확대됐다. 기존에는 18세 이후 보호가 끝난 경우만 해당했지만, 이제는 15세 이후부터 적용된다. 18세 이전에 청소년쉼터나 다른 시설로 이동하거나 여러 사정으로 조기에 보호가 종료된 청년들의 지원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조정되었다.

둘째, 자립준비청년이 희망할 경우에 대학 재학 또는 진학 준비, 직업 교육·훈련, 경제·심리·주거의 어려움, 장애·질병, 지적 능력 등의 사유로 만 24세까지 위탁가정 또는 아동복지시설에서 다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재보호제도'가 시행되었다.

예를 들어 인천시는 LH와 협약을 맺고 자립준비청년 전용 15개실을 무상 제공하고 있으며, 경기도는 공공임대주택 임대보증금을 전액 지원하고, 전남도는 전남여성단체협의회와의 업무협약을 체결해 자립준비청년과 여성단체 회원 간 1대1 멘토-멘티를 맺어 안부묻기, 반찬나눔, 가정방문 등을 통해 교류하는 '청년 잘 지내니?'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한 사각지대

지원이 확대되고 있지만 여전히 해결이 필요한 과제들이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연락 두절자'이다. 자립준비청년 5명 중 1명(20.2%)이 연락이 닿지 않는 상황으로 인해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주거지가 불안정하거나 개인정보 변경을 제때 신고하지 않아 발생하는 사례가 많다. 특히 사회적응에 실패하고 고립·은둔 상태에 빠진 자립준비청년들은 더욱 찾기 어려워 지원의 사각지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제도적 사각지대도 여전히 존재한다. 청소년쉼터를 나온 청소년들이나 자립지원관을 이용했던 청년들은 아동복지시설 출신이 아니어서 자립준비청년 지원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행히 15세 이후 보호종료자까지 지원 대상이 확대되어 이런 사각지대가 일부 해소되었지만, 여전히 복잡한 신청 절차와 정보 부족으로 실제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정신건강 지원의 공백도 여전하다. 높은 자살생각률(18.3%)에도 불구하고 전문적인 심리상담이나 정신건강 서비스에 접근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취업 지원의 한계도 있다. 자립준비청년들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취업지원은 일 경험 기회 제공(24.2%), 고용지원금(18.5%), 진로탐색 기회 제공(17.1%) 순이었지만, 실제 고용률(52.4%)은 여전히 전체 청년 고용률(61.3%)보다 낮은 수준이다.

지지받는 자립

만 18세에 갑자기 어른이 되어야 하는 자립준비청년들이 진정한 자립을 이뤄내기에는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 개인의 노력과 사회의 도움이 만나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지원 제도가 아무리 좋아져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다. 병원에 함께 가줄 사람, 고민을 털어놓을 어른, 명절에 만날 가족이 없는 현실이다. 이런 일상의 빈자리는 정책만으로는 메울 수 없기에 사회 전체의 관심과 따뜻한 손길이 절실하다.

보건복지부 김상희 인구아동정책관의 말처럼 "자립준비청년은 위탁가정이나 시설을 한번 나오면 가족이나 지인이 없어 외롭고 막막한 상황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는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

자립준비청년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설 수 있도록 노력하되, 사회가 함께 도와준다면 그것이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자립이다. 성공적인 자립은 개인의 성취를 넘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따뜻한 곳인지를 보여주는 모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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